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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2015 SAR (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학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학회는 “Reaching across Disciplines to Broaden the Acupuncture Research Network”라는 주제로 Society for Integrative Oncology (SIO) 그리고 Fascia Research Society (FRS)와 함께 개최되었습니다. 올해 ICMART 2015, ICCMR 2015과 같은 한의학 관련 학회에는 참석을 했었지만 침 관련 국제학회에는 첫 참석이었습니다. 최근 이상훈 교수님 연구팀과 함께 심혈관 질환 침 치료에 대한 기전, 임상연구를 진행하면서 궁금했거나 잘 풀리지 않았던 점들이 많았었는데, 마침 2015 SAR에 심혈관 질환 침 치료 분야에 독보적인 지위를 쌓은 Longhurst 교수의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이번 학회를 Longhurst 교수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자는 희망을 안고 같은 연구팀에 소속된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이승민 선생님과 함께 2015 SAR에 참석하였습니다.


첫날은 Preconference workshop이었습니다. 오전에는 ‘Comparative Effectiveness Research on Acupuncture: Observational Data, Trials and Systematic Reviews’라는 주제로 Claudia Witt와 Jeffery Dusek이 진행한 워크숍에 참여하였는데 Jeffery Dusek의 발표는 저에게 이번 학회에서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줬던 강연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저의 흥미를 끌었는지는 이 글 마지막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ICCMR2015을 통해 처음 강연을 접했던 Claudia Witt는 이번에도 예의 그 명료한 말투로 Effectiveness와 Efficacy study를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습을 하였습니다. 환자 풀이 적은 경우, effectiveness 연구는 피험자들의 특성이 이질적이어서 표준편차가 커지고 샘플수도 커지기 때문에 efficacy 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는 점도 강조하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Measurement Tools in Acupuncture Research: The Interplay of Ideas, Hypotheses and Scientific Knowledge’라는 제목의 침 연구에서 활용 가능한 기기에 대한 Preconference 워크숍에 참석하였습니다. Helene langevin은 득기를 하면 어떤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관해 초음파를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줬는데, 상하방향으로 침을 움직임에도 먼 곳의 결합조직이 좌우방향으로 움직이는 영상은 많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유발하였습니다. 주먹을 쥐고 펼 때는 신경이 많이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득기감을 못 느끼는 반면, 침 치료를 하고 염전을 하면 신경이 약간만 움직여도 득기감을 느끼게 되는데 무엇이 이런 차이를 유발하는지 본인도 좀 더 연구를 지속해야 하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뒤를 이어 Vitaly Napadow는 Powerlab을 이용해서 심전도, 호흡, 피부전도도 등의 생체신호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시연하였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Powerlab을 이용한 연구방법을 가르쳐 줬던 이정찬 박사님이 시연의 보조를 맡고 있는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생체정보 측정의 디테일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전체적인 소개를 위한 시간이다 보니 심도 있는 내용은 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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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점심은 ‘Directions for Acupuncture Research at the 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Health, NIH’라는 주제로 Wen Chen 박사가 2017-2022 NIH 침 연구 과제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앞으로 어떤 침 연구 분야가 주요 이슈가 될 것인지 예측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CCIH의 침 연구 과제에서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주제는
1) 침 진통에 관한 기초/임상연구를 통해 생물학적 매커니즘을 밝혀내고 needling에 의한 특이적 효과와 환자-시술자 간의 상호작용, 환자의 기대, 플라시보, self-empowerment effect 등에 의한 비특이적 효과를 구분해 내는 연구
2) 정량적 감각 측정방법 (Quantitative sensory testing)을 이용하여 전침의 통증관리 효과를 밝혀내는 임상연구
3) 통증 질환에서 전침 임상연구의 효과와 안전성을 밝혀내는 프로토콜의 개발
4) 침을 이용하여 expectancy, context, placebo 등의 주제에 대해서 탐구하는 기초/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증 관리에 expectancy, context, placebo 등이 사용될 수 있는지 타진하는 연구 등이었습니다.


소개가 끝나고 왜 매커니즘 연구로 방향을 선회하였는지에 대해 질문한 연구자가 있었는데 여러 침 임상연구에 투자를 했지만 효과가 없거나 매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아서 직접 매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답변했고 이는 제게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이러한 매커니즘 연구를 바탕으로 향후 어떻게 침 시술 효과를 높일 것인지, 어떤 시술을 같이해야 침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환자들에게 효과가 가장 높을 것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NIH 침 연구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Responder를 밝혀내기 위한 예측 모델 구축을 위한 연구는 multiscale이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는데 인구사회학적, 환경적 특성뿐 아니라 뉴로이미징, 유전적 특성, 분자생물학적 특성, personality 등을 함께 고려하여 어떤 사람이 침 치료에 반응하는지 statistical modeling 전문가와 함께 예측 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침 연구만이 대상은 아니었지만, Stimulation Peripheral Activity to Relieve Conditions (SPARC)라는 제목으로 자율신경계 자극을 통해 질병 상태를 호전시키고자 하는 시도도 NIH에서 주목하고 있는 주제로 침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과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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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 오후의 Plenary session은 가장 기다리던 Longhurst 교수의 강연이었습니다. 학회 출발하기 전부터 Longhurst 교수의 발표를 듣고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 물어보고 추후에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Longhurst 교수팀의 기초, 임상, 리뷰 논문들을 상당 부분 봤기 때문에 30분 남짓한 짧은 발표 중에서 완전히 새로운 내용들은 많지 않았지만, 이제 은퇴를 앞둔 노교수가 수십 년간 한 주제에 대한 연구결과를 압축해서 보여준 발표는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Plenary session 발표가 끝나고 Longhurst 교수에게 내년 한국 방문에 대해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 궁금했던 것들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Longhurst 교수팀의 연구 방식에 대해서는 학회에 참석한 연구자들 내에서도 찬반이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침 치료는 임상에서 Add-on therapy 위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임상연구는 고혈압약을 끊고 수행하거나, 한의학 이론에 입각해 individualized therapy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실험을 통해 입증된 혈위만을 임상시험에 사용하는 등의 부분에 대해, 특히 동아시아 쪽 침 연구자들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구에서 제시한 침 치료 임상연구 방법론을 좇아왔던 fast follower의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방법론을 세우고 질문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니 그에 따라 생기는 필연적인 갈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SIO와 함께하는 세션이었고 특히나 오후에는 평소 종양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세션들이 대부분이어서 전시된 포스터만 잠시 둘러본 후 짬을 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터너의 그림이 있는 보스턴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저녁에는 바로 옆에 있는 Dana-Farber 암센터 견학을 갈 수 있었는데 암센터 규모는 정말 컸지만, 이곳 역시 침 치료 진료실은 치료실 두 개에 인력도 5명뿐이었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암 환자 진료에서 통합의학을 내걸고 앞서가는 그룹이 될 수 있다’는 같이 갔던 박지혁 선생님의 말이 와 닿았었습니다. 종양 분야는 제가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Dana-farber 암센터 견학을 마치자 통합의학 종양진료는 외국에서도 이제 막 태동기라 한국 한의사들도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선도그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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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회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저의 관심을 많이 끌었던 것은 이제 침 연구 분야에도 전자의무기록을 이용하여 많은 환자의 치료 데이터를 후향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첫날 Preconference workshop에서 Penny George Institute for Health and Healing에 근무하고 있는 Jeffery Dusek의 발표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설계된 전자의무기록을 이용하여 수만 건의 환자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질환에 침 치료가 효과적인지, 효과적이라면 어떤 방식의 침 치료가 어떤 사람에게 효과적인지에 관해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에 자극받았습니다. 우리도 전자의무기록을 도입해서 데이터를 축적해가는 것을 더 늦출 수 없을 듯합니다.


특히 요즘의 저의 흥미를 끌고 있는 주제는 한의치료의 Responder/non-responder입니다. 최근 2년간 몇 건의 침 임상시험을 수행하거나 설계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임상시험은 과도한 노동집약적 과제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도 침 임상시험을 하는 짬짬이 쓰고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모든 질환에 침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어느 질환에까지 침 임상시험을 수행해야 하고,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최근 의학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불어닥치고 있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예측분석 열풍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갖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의 임상 환경은 서구의 그것과 달라서 특정한 Inclusion criteria나 치료법을 적용한 특정 디자인의 침 임상시험이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임상에서 한의사들이 그 질환에 침 치료를 안 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임상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방식의 침 치료가 효과 있는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각각의 연구질문마다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잘 설계된 전자의무기록을 바탕으로 후향적인 자료분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Jeffery Dusek이 소개한 Bravenet이나 PRIMIER 같은 다기관 Integrative Medicine registry study가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직은 그들의 연구가 주로 통증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환자의 Baseline characteristic과 치료 혈위 및 PI-NRS, Perceived stress scale (PSS) 등의 Patient reported data를 기반으로 한 치료 전후 Outcome 추적자료들이 잘 기록되어 있어 어떤 질환에 어떤 치료법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 효과적인지 분석을 해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심혈관 질환 분야에서도 Jeffery Dusek의 연구팀은 2014 BMC CAM에 57,000명의 심혈관 질환 입원환자 중 6,589명의 Integrative medicine 치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통증과 불안이 각각 46.5%, 54.8% 감소했다는 결과를 보고한 바 있습니다. 특히 한약 치료에서 Responder/non-responder를 구별해내기 위해서는 초진 단계의 침 치료에서 보다 더 잘 짜여진 한의 설문지가 탑재된 전자의무기록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한약의 반응군/비반응군을 도출하기 위한 후향적 연구에서 가장 먼저 해결이 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한의 임상연구 (임상시험이 아닌)의 미래는 전자의무기록을 이용한 대규모 자료의 후향적 분석이 될 텐데 이에 관해 논의를 하다 보면 항상 돌고 돌아 잘 짜여진 EMR이 없다는 문제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한의계에서 이에 관해 연구를 하는 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같이 연구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공항에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첫날 채윤병 교수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예전에 채 교수님께서 하버드에 오셨을 때 언젠가 한번은 꼭 여기서 발표를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결국 그것을 이루게 되셨다고. 언젠가 SAR학회에 우리 연구팀원들, 교수님들과 같이 세션을 구성해서 심혈관 질환 침 치료에 관한 실험연구, 중개연구, 임상연구, 체계적 문헌고찰, 질적연구, 경제성평가, Responder에 대한 후향적 분석까지 발표하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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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