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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COEX에서 16회 International Congress of Oriental Medicine(국제동양의학회, 이하 ICOM)을 개최했었다.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나 2014년 11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17회 ICOM이 개최되었다. 16회 ICOM 때 생각보다 유럽, 미국, 호주 쪽에서도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 특히 유럽지역에서 보험으로 인정되는 나라가 늘고 있고 이용하는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국제적인 변화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때의 인상 깊었던 몇몇 발표들 덕에 17회 ICOM이 대만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을 결정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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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M은 1976년 10월에 서울에서 시작된 대회로 38년째를 맞이하는 상당히 유서 깊은 학술대회다. 게다가 규모도 큰 대회답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plenary lecture 외 실제 발표들은 4개의 parallel session들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 명의 참관기로는 이 대회에서 나온 주제들이나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전에 감안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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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 Lun-Chien의 Mordenization and Clinical Application of TCM Diagnosis라는 세션에서는 현재 대만에서 연구하고 있는 설진기, 맥진기, 성음분석기 등 측정기기에 대한 것을 소개했고, 그 중 설진 기술은 3D로 혀의 상태를 다시 맵핑해서 보여주는 그래픽 기술과 더불어 혀의 상태들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기술을 보여줬다.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에서 이들을 아예 자동화시켜 환자가 한 번 오면 차례대로 측정 장치에 따라 검사를 진행하게 하는 건강검진 플랫폼으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던 이 세션은 현재 원격진료, 한방건강검진 등의 이슈가 제기되고 있는 한국에도 상당히 의미 있는 발표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건강검진을 각 병원이 도입하려고 하는 준비 단계인데 반해 대만은 이미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좀 더 빠르게 이 시장을 공략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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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Standardization에 관련한 세션에서는 3명의 발표가 있었는데 모두 소개할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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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침회대학(HKBU) 중의약학원 교수인 Zhao Zhongzhen은 특히 짜임새가 높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왔는데, 목통과 방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 기원과 약재의 표준화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목통과 방기로 유통되는 약재들의 상업명과 학명을 제시하고 그중에 신장 독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aristolochic acid를 포함한 관목통과 광방기를 별도로 분류하여 보여 주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이 아닌 상업명과 학명에 따른 별도의 구분과 표준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홍콩이 현재까지 해온 표준화 작업 성과들을 보여주었다. 홍콩의 Bank of China에는 중약센터를 별도로 두어 약재별 표준 샘플들을 보관하고 있고, 약재를 구분하기 위한 관능검사, 실험실 검사, 조직학적 검사 등의 방법과 특징을 언급하며 이들이 홍콩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출간되어 있다는 것과 이미 200여 종에 대한 6권의 표준 자료집(HKCMM standards)으로 출판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울러 우리나라 식약처의 한약재 관리 규정과 기준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홍콩이 새로 준비하고 있는 표준화 작업의 규모는 결코 적지 않았다. 본초강목 프로젝트로 명명된 한약재 표준화 작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로 보인다. 홍콩은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한약재가 거래되는 중간 관문이라는 점에서 홍콩의 약재에 대한 표준화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약재가 많은 한국의 입장에서도 이 프로젝트로 인한 변화는 필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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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중의 중국의약대학 Chang Yuan-Shiun은 Quality Control of TCM Herbs and Herbal Preparations in Taiwan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는데, 대만의 건강보험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 대만의 건강보험은 우리나라의 거의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고 우리나라가 한방의료를 보장하는 것처럼 중의에 대한 부분을 보장하고 있으며, 중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보험 급여의 6.64%에 해당한다고 한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301종의 한약을 1,403톤 사용하였다고 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만큼 사용된 한약은 모두 통계로 조사된다는 장점이 있다. 관련한 발표 역시 ICOM의 다른 세션에서 언급되는 등 대만의 건강보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들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국도 한약에 대한 보험이 광범위하게 적용하게 되면 통계를 바탕으로 한약 표준화가 좀 더 가속화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통계를 생산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의 보험 적용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대만의 현황들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Chang Yuan-Shiun은 Taiwan FDA에서 약재를 감별하는 기술들을 소개했는데, 도감이라는 것은 동일했지만 도감에서 기원이 다른 약재를 한눈에 놓고 서로 비교하여 보여주는 디자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좀 더 직관적인 방법으로 자료를 만들고 교육하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좀 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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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립자이대학교 교수인 Chen Lih-Geeng은 Trend in Quality Control of Traditional Herbal Mdicines and The Preparation Method for Herbal Marker Substances라는 주제로 앞으로 한약재 표준화 기술은 다성분을 정량화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리라는 것과 1H-NMR and DOSY NMR 같은 기술들이 향후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최근 한약재 관련 논문에서 기본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HPLC 다성분 프로파일 등에 관련된 기술들을 비교해서 설명해주어 개인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새롭게 도입되고 있는 기술로 언급하고 있는 1H-NMR spectroscopy는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처럼 구조가 비슷한 분자들도 세밀하게 구분할 정도로 뛰어난 해상력이 주목 받고 있다.  그리고 DOSY NMR의 경우에는 뇌졸중의 MRI에서 많이 사용되는 DWI 영상 기술과 유사하게 분자들이 확산되는 것을 추적하는 기술이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분자가 검출된다는 수준에서 혼합물 내의 분자들이 온도나 다른 조건들에서의 동태와 전하까지도 추적할 수 있다는 특징들까지 알 수 있다. 아직 내가 봤던 논문들에선 이런 기술들이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논문들이 이런 방법으로 한약재를 구분하는 쪽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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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진행된 세션들은 조금은 관심사와 다른 주제들이 많아서 조금은 더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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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 양명대학교 Chen Fang-Pey 교수는 The Core Patten of Chinese Herbal Medicines for Osteoarthritis in Taiwan from Nationla Health Insurance Research라는 주제로 발표했는데,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에서 많이 사용하는 처방이나 단미 등을 추출해낼 수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데이터베이스 구성을 ICD 기준으로만 해서 변증에 대한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고, 2007년 별도의 연구에서 인용한 변증의 비율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대만의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에는 변증 관련 코딩이 따로 없는 듯하고, 이 부분에서 실제 변증에 따라 처방이 되었는지, 변증과 무관하게 특정 처방이 특정 질환에 처방되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에서 빅데이터로 의료를 분석하는 것의 한계를 본 듯하다. 만약 변증과 처방에 관련된 연구를 하려면 변증 코딩 부분을 감안하여 설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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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이혜정(Hyejung Lee) 교수는 The Recent Fusion Research Model of Acupuncture in Korea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는데, AMSRC의 연구 성과들과 함께 향후 Neurodegenerative disease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임을 제시하였다. 특히 연구 성과 중에서 요즘 특히 주목받고 있는 Parkinson disease에 관한 침 연구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파킨슨병과 관련된 각 기전을 분해하듯 조직학적 결과, 시냅스 후 변화, 행동실험, fMRI, transcriptomics, proteomics, catecholoamine 등 전방위적인 침의 효과에 관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아쉬웠던 것은 다른 연구자들도 연구 결과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질문했지만 개별 연구를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질문들이었고, 각 파트별 연구자가 참석하지 않은 관계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침 연구가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받을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였다. ICOM이 끝나고 나서 한국한의학연구원장에 선임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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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궁메모리얼병원 침구외상의학과 Shiue Horng-Sheng 교수는 Microarray Analysis of the Effect in Patients Treated with Acupuncture for Allergic Rhinitis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관심 있는 질환은 아니었지만, 연구 방법으로 microarray analysis를 이용했다는 것 때문에 듣게 되었는데, 사실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충분하게 이해를 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침 치료를 시행했을 때 gene expression profile들을 기준으로 그룹을 둘로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체질이나 변증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침 치료로 활성화되거나 억제되는 반응들이 그룹에 따라 거의 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상이하게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염증 조절 기전에서 주로 Th1 cell과 관련되어 서로 길항하는 분자들의 조절을 통해 어떤 balance를 회복하게 하여 염증을 조절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가설을 내리고 있었다. 아직 완벽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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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오후 세션 중에는 특별히 관심 가는 것이 없어서 포스터 발표들을 훑어 보다 우연히 들어간 세션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 보스턴의 Tufts 대학 의대, Tufts Medical Center의 Wang Chenchen 교수의 Tai Chi and Chronic Pain이라는 세션이었는데 태극권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의도하고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섬유근통증후군에서 사용하는 FIQ score, 관절염에 사용하는 WOMAC pain scale 등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 그래프를 보여주었고, 요통,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려주었다. 다만 적용 대상이 세션 타이틀처럼 주로 통증이었고 그래서 환자의 주관적 지표들과 설문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통증 조절 모델에서 충분히 정신적인 부분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 언급되었고, 환자들의 사례나 인터뷰 동영상은 상당히 신뢰가 가는 내용이어서 태극권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다만, 다른 운동이 아니라 반드시 태극권이어야만 할까라는 부분의 의문을 해소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운동요법이든 이 정도로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태극권이든 아니든 충분히 임상에서의 적용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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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M에서 진행했던 멀티 세션이 동시에 4개로 5타임이나 되었다는 점에서 이 후기가 ICOM을 대표하기는 어렵고 특히 임상 연구나 EBM 관련한 세션은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과소평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터 발표로 많은 임상 보고와 문헌 연구, 의사학적 연구를 비롯해 교육의 차이 같은 부분들까지 다양한 부분이 보고되기도 했다. 게다가 여성 질환이나 종양 질환 같은 특별한 질환 관련한 세션까지도 진행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들었던 세션들은 그렇게 인기가 좋은 세션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대신 임상적인 질환 관련 논문은 상당히 잘 출판되기도 하는 반면에 이런 주제들은 특별한 학회가 아니고선 잘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ICOM은 꽤 좋은 기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폐막식 때 다음 ICOM은 2016년 일본 오키나와로 확정, 발표되었다.


학회 진행에서 아쉬웠던 점은 일요일에 비해 월요일에는 아무래도 참가자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4개나 되는 세션을 운영해서 그런지 각 세션에 따라 사람이 적은 곳은 지나치게 적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일부 연자들은 통역이 제공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발표하지 않고 모국어로 발표하기도 해서 황당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들었던 것 중 한 발표는 한국 연자가 한국어로 발표했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한 세션에선 중국어로 발표한 연자도 있었다고 한다. 모국어로 발표할 경우엔 통역 여부 등을 사전에 조율하거나, 토론은 어렵더라도 발표는 충분하게 서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영어 스크립트를 준비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부 연자들의 준비 부족과 수준 미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외에도 협회에서 사전에 토요일 3시부터 등록 가능하다고 공지했지만 실제로는 토요일에 5시 20분은 돼서야 등록이 가능했고, Program and Abstract 책자에서도 5시로 쓰여있었다. 책이 출판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왜 사전에 알 수 있었을 등록 시간이 안내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Certification도 사전에 신청했지만 명단에서 누락되었는지 일요일에는 제대로 발급되지 않아 월요일에서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협회도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협회의 문제인지 ICOM 주최 측의 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션들의 질이 높았던 만큼 이런 사소한 부분들에서 완성도가 낮아 깔끔하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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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