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주가 폭락 사태를 파헤쳐보자

한미약품 사태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공시 시스템과 주식거래 시스템을 보여준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번 사태는 공시 제도의 허점과 공매도 제도 실효성 논란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결국 한미약품 주가 폭락 사태로 피해를 입은 것은 또 개인이다. 

9월 30일 오전 9시부터 9시 29분(기술반환 공시 시점)까지 약 30여분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9월 29일 오전 7시 한미약품 (457,000원▼ 14,000 -2.97%)은 미국 제넨텍사(社)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피부암 치료 신약에 대한 1조원대 기술 수출 계약을 최종 승인했다'는 내용이었다. 한미약품은 이날 장마감 후인 4시 35분 이 내용을 공시했다. 


3시간여가 채 되지 않아 한미약품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사로부터 작년 7월 기술 이전한 폐암 치료 신약 '올무티닙(HM61713)'의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을 통보받았다. 한미약품이 만든 표적 항암제 임상시험 도중 부작용이 발생해 시험에 참가한 2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은 해당 내용을 다음날인 30일 오전 9시29분에서야 뒤늦게 공시했다. 개장 후 5% 이상 급등했던 한미약품 주가는 18% 넘게 폭락했고 주말 휴일 뒤인 4일에도 7.28% 넘게 하락해 마감했다. 30일 개장 직후 주식을 산 투자자라면 최대 30% 이상의 손실을 본 셈이다. 반대로 해당 사실을 먼저 인지한 투자자는 29분간 손실을 회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 사건으로 한미약품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일각에선 한미약품 오너 측이 늑장 공시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투자자들은 "한미약품은 악재 정보를 호재 공시보다 먼저 냈어야 했다"며 "아니면 동시에 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 자본시장조사단, 한미약품 현장조사...휴대폰 증거 확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한미약품이 악재성 공시를 내기 전인 약 30분 사이에 시장교란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사안이 중대하면 영장을 청구해 한미약품 압수수색에 나설 계획이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이날 "기초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어제 한미약품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며 "현장조사에서 회사 관계자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통화 및 메신저 내용 등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내부자 거래 가능성이다. 한미약품의 악재성 공시 전 공매도 거래대금은 320억2600만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관투자자들이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 취소됐다는 악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공매도에 나섰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공시 여부가 사전에 유출됐다면 이는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식약처의 연루 가능성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식약처가 약물의 부작용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배링거인겔하임의 개발 포기 통보가 오고 나서야 투약 중단을 뒤늦게 권고하는 등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4월 부작용 사례를 발견한 후 6월과 9월에도 부작용 사례를 식약처에 보고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특히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는 달리 식약처 직원들은 중요한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주식 거래 신고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식약처 직원들이 올무니팁 임상실험에서 사망사건도 있었고 안좋은 결과도 나올 것이라는 것은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희 식약처 대변인실 사무관은 "식약처 직원 주식거래는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주식 투자를 했는지 관련 자료가 없다"며 "유사업종 내 투자금지 규제도 없다"고 말했다. 



◆ 외국인 공매도 세력, 한미약품보다 먼저 미공개 정보 접했을 수도 


한미약품에 기술반환 통보를 한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누군가가, 또는 측근이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제3자에게 미리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약품의 지난달 30일 공매도 수량은 10만4327주로 한미약품이 상장된 2010년 7월 이후 사상 최대치였다. 올해 하루 평균 공매도 수량은 4850주였다. 공매도 금액도 616억원에 달했다. 


특히 이중 9시부터 9시29분 사이에 이뤄진 공매도 수량은 30일 하루의 절반인 5만471주(320억원)이다. 전날인 29일 하루 총 공매도 수량(7658주)의 7배에 달하는 공매도가 30분동안 이뤄진 셈이다. 금융당국이 미공개 정보를 악재 공시 전 먼저 알게 된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표면상 공매도 주요 세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공매도 잔고공시를 보면 한미약품에 대한 0.5% 이상 공매도 잔고를 보유한 투자자는 모건스탠리와 UBS다. 한미약품이 해당 사실을 알기 전 이미 이들이 해당 정보를 먼저 접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조선비즈는 베링거인겔하임 본사에 이같은 의혹에 대해 질의했으나 아직까지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한국 지사가 아니라 독일 본사와 한미약품측이 직접 체결한 것이라 알고 있는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거래소 고위관계자는 "공시 직전 공매도를 포함한 계좌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를 조사 중"이라며 "이전에는 매도하지 않다가 급하게 팔려고 했거나 갑자기 현재가와 다른 하한가로 매도주문을 내놓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 계좌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 조사단은 휴대폰 등 증거물 분석을 통해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될 때 검찰에 사건을 신속히 넘기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차명계좌 등을 사용했을 가능성, 만약 외국인이 연루돼 있다면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자조단 관계자는 "(외국인이 해외에서 먼저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