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논문 제1저자 문제에 관하여

1. 우선 고등학생이 논문 저자가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글을 보는 페친들 중에서도 한 다리만 건너면 관련자가 허다하다. 물론 전체 고등학생 중에서는 극히 일부이지만 우리나라 전체에 한두 건 있는 경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2. 고등학생이 논문 쓰는 경우는 대부분 과고 영재고의 R&E 프로그램이며 이를 흉내 내어 외고나 자사고 등에서 소논문 활동을 통해 논문을 쓰는 경우도 제법 된다.


3. 위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지도교수를 구하는 일이다. R&E라 하더라도 교수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 보니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학생의 부모가 교수인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일부 경우엔 교수인 학부모가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자녀와 개인적으로, 혹은 친구 몇몇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4. 논문게재가 R&E 프로그램의 성과가 되다 보니 과기부/연구재단이 이를 장려하게 되고, 외국 유학의 경우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고 국내 대학도 최근에는 자소서에 못 쓰도록 하고 있지만, 그전에는 입시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될 일은 없으니 역시 자연스럽게 활동의 목표가 논문 작성이 되었다.


5. 이공계 출신은 잘 알겠지만, 아무리 허접한 논문이라도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사실 고등학생끼리의 활동을 통해서는 성과 발표회는 가질 수 있어도 논문이 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고 따라서 이론 배경, 통계 검증 등등 고등학생이 하기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부터 연구윤리에 어긋나기 시작한다.


6. 수십 건의 케이스를 보았지만 정말 학생이 주도하고 지도교수는 가이드만 하고 투고 과정만 도와주는 경우는 백 건 중 한두 건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최악의 케이스는 실험실에 출입해서 구경만 하는 경우이고, 대부분은 시키는 대로 단순 측정하거나 장치 구동, 아니면 데이터 정리나 실험도구 청소 정도... 정말로 brilliant 해서 논문의 초안이라도 쓸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한두 명 있긴 했다).


7. 주제를 잘 잡고 실험이 잘 끝나서 논문까지 이어질 경우, 제1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의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아니면 주야로 몰두해서 대부분의 데이터를 만들어내거나... 따라서 R&E 혹은 유사 활동을 통해 고등학생이 저자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세컨드나 그 뒤 저자가 된다. 학생을 제1저자 심지어 교신저자로 한 경우는 살펴보면 대부분 윤리적으로 어긋난 경우였고 그렇지않은 경우에도 정말 저자가 될 만큼의 기여가 있는지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8. 논문이 직접 당해 입시에 사용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연구윤리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외부 연구비로 수행되는 경우 계약 위반의 소지가 있고 무엇보다 교수가 지도하는 석박사대학원생, 그리고 정당한 기여를 한 연구원의 공을 뺏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