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자의 고등학생 딸이 냈었다는 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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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후보자 검증이 의외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관 후보자 검증 때문에 과학 기사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고등학생이 인턴 2주일을 하고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제1저자가 되었다고 한다. 논문에 이름 한번 실려 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생 한 명이 정식 실험실 생활도 아닌 인턴 생활을 달랑 2주일 하고 논문의 제1저자가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이공계 대학원생들, 그리고 오늘도 논문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에게는 허탈감과 자괴감이 몰려오는 소식이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이 주요 친구인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사건을 성토하는 포스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버지의 입김으로 고등학생 딸이 논문의 제1저자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똘똘해 보이는 고등학생을 논문 제1저자로 만들어 주고 나서 봤더니 우연찮게 아버지가 대학교수였던 것인지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 가려낼 일이겠지만, 과학도로서 해당 논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한번 문제의 그 논문을 직접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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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patholtm.org/m/journal/view.php?doi=10.4132/KoreanJPathol.2009.43.4.306


일단 논문은 대한병리학회에서 출간하는 대한 병리학회지 (Korean Journal of Pathology)에 2009년 실렸다. 이 저널은 영문으로 발행되는 국내 학술지이며, 임팩트 팩터 (IF)는 자체 홈페이지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2012년 기준 0.714이다. IF로 저널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지만, 연구자들이 여기저기서 받아주지 않은 논문들의 최종 보루인 것처럼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플로스 원 (Plos One)이라는 저널의 IF가 2.776임은 참고하면 좋겠다.


논문이 2008년 11월에 접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실험에 사용된 환자들의 샘플은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단국대 병원에서 채취되었다고 한다. 샘플을 4년이나 묵힌 뒤 실험한 것인지, 아니면 4년이나 지난 데이터로 논문을 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영어의 압박으로 얼핏 보면 대단히 어려워 보이는 논문이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어려울 거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이 쓴 논문 아닌가) 분만 전후의 신생아들 중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HIE)라는 복잡한 이름의 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이 있다. 이 병에 걸린 아기들은 뇌의 혈류에 문제가 발생하며 니트릭 옥사이드 합성 효소 (NOS)의 활성이 증가된다는 보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연구진은 이 NOS에 어떤 변이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라는 게 이 논문의 간단한 내용이다.


그런데 사용한 방법이 좀 가관이다. 저 유전자의 일부분을 PCR을 통해 증폭한 뒤, 이를 두 개의 제한효소로 잘라서 그 길이를 잼으로써 변이를 확인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PCR-RFLP라는 실험이다. 이렇게 약자로 쓰니 대단한 실험인 것 같지만 RFLP라는 기술은 80년대에 많이 쓰이던 기술이다. 효소로 DNA가 잘리나 안 잘리나를 확인해서 달라진 길이를 통해 변이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PCR이 대중화된 것이 90년대 초반이니 많이 봐줘도 90년대에나 쓰던 기술이다. 저 증폭된 DNA의 길이를 확인하는데 사용한 기술 (아크릴아마이드 젤)이 조금 독특한데, 기술적으로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쓸 이유가 없고 훨씬 쉽고 경제적이며 정확한 다른 방법이 있어서 요즈음은 잘 안 쓰일 뿐이다. 필자 아주 독특한 이유로 저 젤판을 무수히 만들어 동위원소 써 가며 분석해 본 적이 있지만 정말 누가 또 하라고 하면 그 사람과 인연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논문이 출간된 2009년도에는 이미 훨씬 많은 유전자 변이를 훨씬 정확한 방법으로 꽤 저렴한 가격에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와 있던 시절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KTX가 깔려 있는 시대에 소달구지 타고 부산 간 모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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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대학원생이 이런 실험 기법으로 논문을 내겠다고 한다면? 교수님께 등짝 스매싱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학술지 등재는커녕 석사 학위 논문으로 내도 욕먹을 수준이다.


기존 언론의 보도들만 접하였을 때에는 고등학생이 학술지 등재 논문의 제1저자가 되었다는 표면적인 사실에 가장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논문을 읽고 난 이 시점에서는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눈에 들어온다.


1.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논문도 받아주는 저널이 있단 말인가.


이 논문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고등학생 수준의 논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학술지라면 당연히 리뷰어들이 존재할 것이고, 편집장이 존재할 것인데, 그런 필터링 하나 없이 어떻게 이런 논문이 학술지에까지 출판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과연 이 저널에는 부족한 논문에 대한 리젝 버튼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 받아주는 바다같이 깊고 넓은 포용력을 지닌 대인배 저널인 것인가. 논문 내기 생각보다 쉽다.


2. 이런 수준의 논문에도 이름을 넣고 싶어 하는 연구자들이 있단 말인가.


내가 연구자라면 이런 논문에는 이름을 넣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논문에 제1저자로 고등학생을 내세운 것은 고등학생이 똘똘해서가 아니라 논문의 내용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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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6명 중 문제의 고등학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대학교수라고 한다.


3. 게다가 이 논문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과학 연구 진흥 기금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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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뒷골이 당겨 오기 시작한다. 그냥 대략적으로 드는 생각인데, 저 변이를 확인하는데 들어간 실험 비용이었으면 2008년 당시 기술로도 수만 개 정도의 변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피 같은 세금이 이런 허무한 연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과학계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라고 싸우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어이없는 실험을 하고 논문을 내는 데 돈을 쓰고 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들이 많은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장관 후보자가 이 논문의 교신저자와 매우 친한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었거나, 혹은 대가성의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한, 고등학생이 제1저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교신저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교신저자가 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론


총체적 난국이다. 처음에는 한 장관 후보자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나온 편법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과학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 각종 학회, 그 학회들에서 무분별하게 만들어 내어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도 없이 등재비만 내면 실어주는 각종 학술지, 논문에 한 숟가락 얹어 자기 이력서에 논문 한 줄이라도 더 넣어 보려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


아울러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공적인 신분 세습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사가 되는 것이고, 과학은 그 과정을 위한 발판 정도로 사용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모든 사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한 엘리트 가정의 자녀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건전하고 상식적이어야 할 과학적 발견 검증의 장이 여러 개인들의 이력서 채우기 소재로 사용된 것이다.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푸는 선행학습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그 절정에 달한 것이 고등학생 논문들의 학술지 등재라는 괴랄한 형태로 한국에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두 다 과학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에 서식하는 기생충 같다.


장관 후보자 한 명 낙마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과학계, 그리고 우리 사회의 치부를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여 씁쓸하다.



출처: http://thesciencelife.com/archives/3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