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벗, 약초 - 이야기로 배우는 우리 본초학

왜 다시 ‘약초’인가?


옛날에는 식물이 병마로부터 고통받는 민초들의 구원자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 의학은 식물을 치료에 이용했다. 곡식과 가축, 그리고 병 치료에 사용된 식물은 사실상 인류 문명을 지탱해 준 밑바탕이라 할 수 있다. 감기약부터 항암제까지 모두 거대 제약회사의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도 식물은 여전히 인간의 고마운 치료자다. 천연 물질에서 개발 아이디어를 얻은 아스피린이나 타미플루 등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식물이 지닌 치유 능력은 계속해서 현대의약학의 주요 연구 주제다.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항생제, 백신, 항암제, 영양제 등 질병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각종 놀라운 신무기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성과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전통 사회가 축적해 온 경험과 지혜가 그 안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고 있다. 오랜 시간 인류의 생명을 지켜 준, 자연이 값 없이 내어 준 다양한 ‘약초’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우리 주변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것도 방관하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의학도 아직 확실한 독감 치료제를 갖지 못했고, 악성 종양 앞에서는 여전히 무력하다. 항생제가 5세대까지 개발되었다지만, 여전히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게다가 각종 바이러스나 세균이 일으키는 새로운 전염병이 언제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팬데믹 시대를 경험하며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옛사람들이 기대어 살았던 ‘자연의 힘’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화학 약물에 의존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다른 생명들처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면역력을 기르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천연물 약재 (본초, 本草)의 힘에 기대려 한다. 제도권 의학이 수행하는 연구과 신약 개발도 쉼 없이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천연물 약재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다양한 대안의학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46종의 약초는 약용식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삼은 물론, 민들레· 질경이·쇠비름처럼 ‘잡초’로 불리는 풀에서부터 작약이나 능소화처럼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는 식물까지 모두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식물들이다. 본초에 관심을 가지고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는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약초에 얽힌 다채로운 의미를 역사・인문학적으로 그리고 전통 한의학적으로, 때로는 현대의학의 프리즘으로 풀어낸다. 약초에 관한 흥미로운 옛이야기는 물론 천연물 생약에 관한 최신 의약학 정보까지, 흥미로운 약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곁의 약초를 더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고, 건강한 삶을 향한 올바른 양생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이야기’인가?


옛날 사람들은 의원을 만나기도, 제대로 된 약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몸이 아픈데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약초 이야기는 아쉬운 대로 도움이 되었다. 약초 전설이나 민담이 다소 과장되어 있기도 하고, 약초의 효능에 관한 쓸모 있는 정보가 담겨 있지 않기도 하지만, 이렇게 돌고 도는 약초 이야기 안에는 꽤 쓸모 있는 지식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약으로 쓰인 식물을 둘러싼 온갖 인간관계와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얽혀 있다. 질병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그 질병은 구체적인 맥락을 통해서만 원인과 결과는 물론, 숨은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이야기 행위를 의료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보는 ‘서사 (중심)의학 (Narration-(Based)Medicine)’의 원초적인 모습을 약초에 관한 우리의 옛이야기에서 찾는다.


현대의학 만능주의와 팬데믹 시대를 경험하며 우리는 ‘질병과 건강’의 근본적인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이 책은 이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저 옛날 산과 들로 약초를 찾아 헤맨 조상들을 찾아간다. 옛 조상들의 이야기에는 소중한 가족과 이웃을 살리고 싶은 그들의 소망과 비원, 소박한 현실 인식, 이웃과 생명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소환해 사라져 가는 약초들을 오늘날의 실정에 맞게 되살리려 한다. 들판의 이름 모를 풀들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수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많은 풀을 황토염색 광목 위에 살려낸 손채수 작가의 생명력 넘치는 약초 그림은 약초를 새로운 시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대지의 여신 지모(地母)가 우리에게 내려 준 선물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 보는 기분으로 46종의 약초 이야기와 선사시대 암벽화와 암각화의 색채와 형상을 닮은 그림을 만나다 보면 식물을 생명을 살리는 또 다른 생명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