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는 윤리적인가

내 탓인가, 뇌 탓인가? 뇌과학, 인간 본성의 비밀을 말하다


마이클 가자니가는 뇌 영상을 통한 마음의 기능을 탐구하는 인지신경과학이라는 제2세대의 인지과학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뇌과학자다. 그는 로저 스페리와 함께 분할 뇌 실험을 이끈 장본인으로, 또한 단순히 뇌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뇌의 사회적․법적․철학적 함의에 대해 심리학자, 법학자, 철학자들과 함께 국가 프로젝트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경윤리 분야와 관련한 조언과 정책 입안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이 책은 마이클 가자니가의 대표 저작으로, 신경과학 연구자들뿐 아니라 철학자, 정치인, 사회학자들에게도 필독서로 자리매김한 책이다. 기존의 수많은 뇌과학 관련 책들이 대부분 뇌의 구조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집중한 반면, 이 책은 이처럼 발전한 뇌과학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탐구한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뇌와 관련한 기묘한 이야기 내지는 뇌 활용 학습법에만 집중되어 있는 국내의 뇌과학 관련 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영역인 신경윤리학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은 특히 현대의 뇌과학적․신경학적 성과와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윤리적․철학적 함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뇌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새로운 정의, 뇌 기능을 향상하는 데 있어서 환경 요소와 유전 요소의 중요성, 뇌 영상을 통한 거짓말 탐지기 (뇌 지문)의 한계와 프라이버시 문제, 인지 능력 향상 약물의 윤리적 문제, 뇌 영상을 통한 범죄자 판결 기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신경윤리적 쟁점을 다룬다.


왜 과학의 발전을 두려워하는가!


마이클 가자니가는 인류의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두려움과 공포를 꼽는다.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그는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이 과학과 관련 없는 이유로 기각되거나 무시당하는 경험을 했다. 즉 생명윤리위원회 소속의 종교인, 정치인, 철학자 등이 과학적 발견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만들어 낼 것으로 생각할 때 느끼는 과학에 대한 공포가 과학 연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노화 연구자의 연구 목표가 영생이라거나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잠재적 인간성을 파괴하거나 히틀러식 우생학을 부활시킬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고작 300년이다. 변화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화성인을 상상할 수 있지만, 윤리학자들이 화성에 착륙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핵폭탄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만든다. SF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부정적 사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도덕감이 그것을 제어할 것이고, 그 이전에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보편 윤리가 그러한 행동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나의 의지인가, 뇌의 의지인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나의 의지인가, 나의 뇌의 의지인가. 최근 두뇌의 행동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범죄자들의 뇌 구조 및 이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즉 누군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자유의지가 발현된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의 뇌와 과거 경험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결과인가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런 논쟁을 촉발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뇌는 마음을 결정하는 물리적 실체이며, 물리 세계의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뇌가 내린 결정과 그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그저 물리 세계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잘못인가, 그의 뇌의 잘못인가?


1848년 미국의 피니어스 게이지는 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폭발 사고로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했음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전두엽 부위가 손상되었고, 그 후 정상적인 전두엽이 가지는 억제 메커니즘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그는 본래의 침착하고 상냥한 성격을 잃고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연구진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있는 21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이들의 뇌가 대조 집단의 뇌에 비해 회색질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었고, 뇌의 전전두 부위의 자동적 활동량이 감소되어 있음을 보았다. 즉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범죄자의 뇌와 정상인의 뇌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뇌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동의 책임을 뇌에게 물을 수는 없다. 책임이라는 것은 뇌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의 문제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다. 저자는 뇌의 상태와 인간됨은 완전히 독립된 개념이며, 도덕적 책임은 뇌의 상태에서 나오지만, 뇌와 동일시될 수는 없고, 책임은 뇌와 구별되는 인간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뇌 안에 각인된 보편 윤리는 있는가


맹자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측은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2300년이 지난 1996년 지아코모 리조라티는 인간에게는 타인의 감정 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거울 뉴런이 있음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트머스 대학교의 존 란제타 교수는 신생아는 태어난 첫날 다른 신생아의 통증에 반응하여 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에게는 다른 이들의 감정 상태를 공감하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이때 그 감정은 측은일 수도 있고, 분노, 기쁨, 슬픔 등 다양하다.


감정 처리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들은 어떤 도덕적 판단을 할 때는 활성화되지만 또 다른 도덕적 판단을 할 때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행동의 동기가 되는 도덕 감정은 섹스, 식탐, 목마름 등과 같은 기본 충동을 조절하는 뇌 줄기와 대뇌변연계 축에 의해 주로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 이론과 관련되어 처리되는 곳은 거울 뉴런, 안와 전두피질, 편도의 내측 구조, 그리고 위관자고랑으로 알려져 있다. 추상적인 도덕적 추론은 뇌의 여러 시스템을 동시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 윤리라는 것도 존재할까? 아직 그와 관련된 신경 메커니즘이 밝혀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보편 윤리는 가능하며, 그와 관련된 메커니즘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윤리 감각에 따라 인류는 과학의 발전이 더 나쁜 길을 향해 가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