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의 혁명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나?


<희망의 혁명> 초판 서문에서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이 1968년 미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쓰였다고 밝힌다. 이 책의 바탕은 미국 정치에 대한 프롬의 깊은 관심이다. 또한 이 책의 씨앗이 된 것은 1967~1968년 미국 반전운동의 물결을 타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유진 매카시 (Eugene Joseph McCarthy)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을 향한 프롬의 열렬한 지지였다. 매카시의 윤리적인 정치관과 반전을 지지하는 세계관에서 미국 사회의 개혁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 프롬은 ‘정치적 대안에 관한 메모 (Memo on Political Alternatives)’라는 글을 썼다. 비록 1968년, 매카시의 대통령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프롬의 그 긴 메모는 <희망의 혁명>이라는 책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 교차로에 서 있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하나의 길은 인간이 핵 전쟁으로 파괴되지는 않더라도 기계 속 힘없는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완전 기계화 사회로 이어지고, 또 다른 길은 인본주의와 희망의 르네상스, 인간의 행복에 복무하기 위해 기술이 존재하는 사회로 이어진다. 이 책은 우리가 처한 딜레마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줄 의도로 썼으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호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비합리성과 혐오가 아니라 이성과 생명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도움이 있으면 필요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썼다. (5쪽, ‘초판 서문’ 중에서)


프롬이 말한 두 가지 다른 미래 중에 그가 지지하고 꿈꾸는 인류의 미래는 물론 후자다. 그러나 프롬이 진단하고 분석한 현실의 흐름은 전자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프롬은 인간이 기술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현상을 경고하면서 자신의 해법을 제시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 권고하고 독려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직도 많은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프롬은 생명이 처한 위험을 온전히 인식할 때 우리가 비로소 이 잠재력을 동원해서 사회 구조에 과감한 변화를 가져올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믿었다.


초판이 출간되고 2년 만에 쓴 개정판 서문에서 프롬은 한층 더 강한 확신과 간절함을 담아 말한다. 현재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리 성공 가능성이 미약할지라도 생명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퍼센트나 확률을 두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프롬의 이러한 강력한 호소는 5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발달한 기술로 인간이 생활 전반에서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우리는 20세기에 안고 있던 문제들의 해답을 찾지 못한 채 21세기를 맞이했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고 치열한 경쟁의 신냉전 시대로 들어섰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전 지구적인 생명의 위기는 무분별한 기술의 발달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다 기술을 제어할 고삐를 놓쳐버린 인간이 자초한 것임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위기에서 벗어날 해법의 실마리는 ‘인간’에서 찾아야 한다는 20세기 대표 지성 에리히 프롬의 주장은 더욱 유의미하고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프롬의 예언자적 면모가 탁월하게 드러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고, 지금의 이 위기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술이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의 교차로에 선 인류, 우리는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희망의 혁명>이 출간된 지 5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프롬이 예견한 두 가지 다른 모습의 사회 중 어느 쪽에 가까운 사회에 살고 있을까? <희망의 혁명>은 50여 년의 시간적 간극에도 낡았다거나 시대적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프롬이 이 책에서 진단하고 우려했던 점차 기계화되는 사회, 인간의 두뇌보다 더 정밀하고 더 빠르게 작동하는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면서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고 부차적 존재로 전락하는 ‘사이버네이션’의 상황은 그 범위가 넓어지고 정도가 심해졌을 뿐 프롬이 예견한 그대로다. 몇몇 거대 기업과 관료주의적 체계로 운영되는 기관이 전체 사회를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예견 또한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은 다를지라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초거대 IT 기업이 전 세계 경제와 인류의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결정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신에게, 과학에, 기술에 주도권을 넘겨온 과정을 짚어내는 프롬의 통찰력과 예지력이 놀랍기만 하다. 그의 예견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게임인 체스와 바둑에서 이미 인공지능에 백기를 든 인간은 인간을 파괴하는 살상과 전쟁에 AI 기술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그 생사여탈의 판단까지도 AI에 맡기려 하고 있다. 인류는 프롬이 우려했던 상황, 인간이 기계에 모든 주도권을 넘겨주고 의존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완전 기계화 사회로 이미 들어선 것은 아닐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프롬의 책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회적 유효성과 설득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시시콜콜하게 따지기보다 인간 사회라는 큰 그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사회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는 희망, 인간, 인간화, 기술의 본질을 탐구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희망 (hope)’을 정의하면서 프롬은 희망이 소망 또는 욕망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희망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검토한다. 또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기다림과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희망을 구분하면서 희망이 신념, 불굴의 용기와 동반해 어떻게 생명과 성장으로 나아가는지 설명한다. ‘희망’에 관해 정의한 2장에서 압권은 가장 마지막에 다룬 ‘산산이 부서진 희망’이다. 희망, 신념, 불굴의 용기가 생명에 수반되는 것이라면 왜 수많은 인간이 희망을 잃고 노예같이 의존하는 삶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프롬은 이러한 상실의 가능성이 인간의 본질이라면서 파괴적 폭력으로 좌절을 경험하면 인간의 마음은 완고해지고, 절망에 빠지지만 그런데도 절망을 직시하고 이해함으로써 다시 희망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6장에서 우리 모두가 인간적인 기술을 향해 나아가기를 권고하고 독려한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