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K-방역의 그늘에서 재난의 비용을 치러야 했던 것은 누구였던가?

여섯 연구자가 기록한 팬데믹 속 차별의 시간

전 세계 최저 수준의 사망률, 시민의 참여가 만든 K-방역

그러나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2019년 12월 31일, 원인불명의 폐렴이 발발한 지는 3년 반, WHO가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선포한 2020년 1월 30일로부터는 약 3년 4개월 만의 일이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는 고통과 슬픔, 비극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한국은 빠른 초기 대응과 확진자에 대한 의료적‧사회적 지원을 통해 ‘성공적인’ 방역을 이루어낸 것으로 호평받았다. 세계가 주목한 ‘K-방역’이다. 실제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서 팬데믹에 큰 영향을 받은 국가 20개국을 선정하여 비교 연구를 한 결과, 한국은 코로나19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과 치명률(확진자 100명당 사망자 수), 어느 쪽에 있어서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가장 사망률과 치명률이 높은 페루는 물론이고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낮은 수치다.


누구도 이 성과를 폄하할 수는 없다. 한국은 3년이 넘는 기간 내내 적극적이고 빠른 대응을 통해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수많은 불확실성과 제한된 자원 속에서 정부와 의료진, 시민들이 한데 동참함으로써 가능했던 성과다. 그렇다면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된 지금, 우리는 지난 성공을 자축하는 것으로 이 재난을 마감해버리면 되는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는 무엇일까. 지난 3년의 시간을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 집중하여 ‘성공적인 방역’이라고만 기억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러한 방식의 기억은 지난 3년 동안 각자의 사회적 자리에서 팬데믹을 차별적으로 경험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고,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위험을 가장 먼저 자신의 몸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배우고 변화해야 하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김승섭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각자 다른 취약계층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연구자들을 모았다. 여성, 아동,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민이다. 이들은 재난이 덮쳐오기 전에도 이미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처해 있던 이들이다. 그러나 기존에 이들이 겪고 있던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가 재난을 만나는 순간, 그 상호작용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으나, 그 말은 절반만 맞았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우리는 진공의 실험실 속에서 바이러스와 접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마주했던 팬데믹의 모습은 정말 모두 같았을까? 김승섭 교수를 위시한 여섯 연구자가 이 책을 통해서 묻고, 다시 답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한국 사회에서 만들어진 재난

사회적 약자 각자가 마주해야 했던 팬데믹의 얼굴들


K-방역의 국가적 성공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주민에게 자신들이 국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시킨 시간이었다. 이주민들은 위험한 저임금 노동과 재생산을 담당해 줄 이주노동자로, 결혼이주여성으로 호명되어 한국으로 왔지만, 재난을 겪는 내내 배제당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감염보다 추방이 두려운 그들에게 코로나19 시기 전달된 메시지는 극히 명료했다. 필요하니 여기 남아라, 하지만 알아서 살아남아라.


아동 인권은 후퇴했다. 방역 과정에서 아동의 존재는 잊히거나 뒤로 밀려났다. 방역 정책은 진행 과정에서 아동의 발달과정에 따른 취약성과 신체적·정신적·심리적·정서적 변화가 가파르게 나타나는 시기인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 아동의 삶은 오로지 성인을 기준으로 집행되는 방역 정책에 일방적으로 욱여 넣어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학업과 사회적 경험이 모두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자원에 따라 아동의 경험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그로 인한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고된 시간을 보냈다. 돌봄 노동자를 비롯한 보건의료 인력 중 다수가 여성이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직에서 관리자가 아닌 일선 실무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의 의견을 조직의 방역 대책에 반영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필요 최소한의 안전 장비조차 없이 소독과 같은 방역 업무를 추가로 담당해야만 했다. 여성이 더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업이 팬데믹으로 인해 크게 위축되었고, 여성의 실업률은 급증했다. 보육 시설과 학교가 종종 문을 닫는 상황에서 집에 머무는 아이들을 돌보는 부담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가정 내 돌봄과 안전의 책임을 지는 여성 노동자들이 고용시장에서 이탈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는 시기에도 계속해서 발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팬데믹을 거치며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이 더 높은 직장에서 일했으며 소득이 감소하거나 실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확진자와 접촉할 경우 자가 격리를 포함한 감염관리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건강 악화나 실업 역시 개별 노동자가 책임져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유급 백신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직장 방역의 핵심 요소였던 아플 때 쉴 권리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비장애 중심주의는 방역 과정에서도 드러났고, 그로 인해 팬데믹 시기 장애인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예방적 코호트 격리 시행 시설로 지정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거주인 대다수에게 먹고 씻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활동만이 허용되었고 인적 교류를 포함한 기본권이 박탈되었다. 심지어 실제 감염은 통제받았던 장애인이 아니라 출퇴근하던 시설의 노동자에 의해서 전파되었으며, 이러한 격리 정책이 아무런 정당성도 실효성도 없음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코호트 격리 조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코로나19 확진이 되거나 감염이 의심되어 자가 격리 또는 재택 치료를 해야 했던 중증 장애인은 일상생활을 모두 홀로 수행하는 불가능한 생활을 해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장장애인의 코로나19 치명률은 비장애인 대비 8.8배라는 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순수하게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한국 사회의 만남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등의 취약계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가부장제, 연령 차별, 비정규직 차별, 비장애 중심주의, 인종 차별 등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 위에서 살아왔으며, 그 열악하고 위험한 삶의 조건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재생산되고 또 증폭되었다. 이들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 위기 등, 팬데믹이 초래한 어려움을 견디기 위한 사회적 자원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했고, 조직의 의사결정과정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방역과 관련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길이 없었다.


함께하는 시민이고자 했으나 결코 국민일 수는 없었던 이들

코로나19 팬데믹 3년, 울리지 못한 목소리를 그러모으다


당연한 일이었다. 영주권자는 국민이 아니었으니까. 팬데믹 초기,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이라는 혐오 표현으로 불리던 때, 여러 다중이용시설에서 ‘외국인 출입 금지’ 내지는 ‘중국인 출입 금지’ 팻말이 내걸렸다. 이주민들은 여기에서 차별에 대응하기보다는 가능한 ‘외국인’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숨을 죽여야 했다.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혹시라도 외국인이라는 것이 티가 날까 두려워 병문안을 오겠다는 친지를 극구 말려야만 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국민이 먼저였으니까. 정부가 제공하는 안내 문자나 방역 수칙 등의 정보는 한국어로만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주민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는 이미 진작에 지침이 바뀌고 난 다음이기 일쑤였다. 지금 시점의 방역 수칙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던 이주민들은 언제 자기도 모르는 새 방역 수칙을 어겨 추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사람보다 국민이 먼저였으니까.


2023년 6월 29일, 한국 법무부는 투자이민제도의 기준 금액을 일반 투자 기준 5억에서 15억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국적 문턱은 높다. 이주민 대다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학력, 연령, 소득 등이 귀화의 조건으로 걸려 있다. 그런 와중에 비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 의무조차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모습은 무엇인지, 이주민의 얼굴을 통해 다시 한번 묻는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