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타닐 - 기적의 진통제는 어쩌다 죽음의 마약이 되었나

코카인이나 헤로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펜타닐

합법적인 의약품인 펜타닐은 왜 가장 위험한 불법 마약이 되었나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수술 환자에서 심한 통증을 억제할 목적으로 개발된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에 달하는 약효를 보이며,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적은 양인 2mg만 투여해도 치명적이다. 따라서 펜타닐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규제 약물이지만, 오늘날 이 약물은 불법으로 제조되어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밀매업자들은 약효를 높이기 위해 다른 약물에도 펜타닐을 몰래 ‘혼합’한다. 그 결과 많은 펜타닐 피해자는 자신이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 다른 약물, 혹은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펜타닐에 중독되고, 펜타닐이 너무 많이 섞이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렇게 치명적인 펜타닐이 급속히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간 사용하면 지속해서 쾌감을 주지 못하고 금단 증상을 완화할 뿐인 다른 약물과 달리, 강력한 약효를 지닌 펜타닐은 계속해서 쾌감을 준다. 바로 이것이 많은 중독자들이 펜타닐에 끌리는 이유다. 딜러의 입장에서도 펜타닐은 더 저렴하고 소량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은밀하게 거래할 수 있다. 헤로인의 경우, 원료가 되는 양귀비의 꽃을 피우는 데 약 3개월이 걸리는 데다 양귀비 밭이 눈에 띄기에 법 집행 기관의 표적이 되기 쉽다. 또 헤로인을 정제한 다음에도 경비가 삼엄한 국경을 넘어 부피가 큰 물건을 운반해야 하는 추가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하지만 펜타닐은 중국 실험실에서 제조되어 저렴하게 유통되며, 부피가 작아서 미국으로 반입하기가 훨씬 쉽다.


새롭게 등장한 마약 거래 시장 다크 웹

펜타닐 시장에 진입한 멕시코 카르텔


과거에는 불법 마약을 구하려면 길거리에서 딜러와 만나 은밀하게 돈과 마약을 교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크 웹에 접속하기만 하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마약을 ‘주문’할 수 있다. 여기에 빠르게 적응한 마약 딜러들은 부유한 국제 마약상이 되었고, 디지털 기술에 능통한 10대 청소년들은 강력한 마약을 우편으로 집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불법 펜타닐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에서 우편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다. 멕시코 카르텔은 미국인 마약 소비자들의 현금을 등에 업고, 뉴욕,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미국 내 대도시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전구체 화학 물질을 공급받은 후 헤로인을 비롯한 다른 약물과 혼합하는데, 숟가락으로 덜어서 섞는 조잡한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순수 펜타닐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용량에 대한 정보 부족이 펜타닐 과다 복용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있는 이유다.


전 세계 펜타닐의 공급처, 중국


중국은 헤로인이나 메스암페타민 50g만 소지해도 사형을 선고할 정도로 마약에 대해 엄격한 나라다. 하지만 중국에서 수요가 있는 마약과는 전쟁을 벌여왔지만, 중국 내 수요가 없는 펜타닐에 대한 단속은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서양에서 불법인 많은 약물이 중국에서는 여전히 합법이기 때문에 중국의 화학 기업은 펜타닐 관련 제품을 생산해 수출한다. 이들은 대개 공개적으로 운영되며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자국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에 세제 혜택, 보조금 등을 제공해 왔는데, 이러한 인센티브는 펜타닐 관련 제품을 수출하는 회사로도 흘러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내각 회의에서 중국에서 수출하는 펜타닐이 자국민을 죽이고 있으며, 이는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선언했다. 신 아편전쟁으로 표현되는 미중 간의 갈등이 악화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5월 모든 펜타닐 유사체 판매를 금지했지만, 이는 자국 내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국제 거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펜타닐 전구체가 중국에서는 여전히 합법이라는 점을 볼 때 중국 정부가 이 막중한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2016년에 이미 UN 마약 청정국 기준 수치(인구 10만 명당 20명)를 넘어섰고, 마약사범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전국 27개의 하수처리장을 조사한 결과 모든 곳에서 마약이 검출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10~20대 젊은 층에서 마약류 남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에는 50명이 넘는 중고등학생들이 병원을 돌며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이를 흡입하거나 판매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효성 있는 마약 예방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이 이들의 호기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기우이며, 이들은 이미 SNS에서 마약에 대한 정보를 접할 만큼 접한 상황이다.


중독자가 법에 저촉되었을 때 치료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인 약물치료법원 (Drug Court)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법원이 판결과 선고뿐 아니라 피고인의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고인이 약물치료 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는 의지가 있고 그럴 만한 정신적 상태인지를 따져 재판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마약 중독자 치료 기관의 확충과 지원 역시 절실하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보호기관은 전국에 21개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중독자를 치료하는 곳은 두 곳에 불과하다. 마약 투약이 범죄인 것은 맞지만 그 원인은 중독이기 때문에 재범을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치료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