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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8~11일, 시카고에서 열린 제87회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History of Medicine(AAHM), 즉 미국의사학회의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AAHM은 1925년에 창설된 역사학자, 의사, 간호사, 기록보관자, 큐레이터, 사서 등 의사학 관련 연구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단체이며 의사학의 연구 및 학습, 저술 등을 촉진하고 장려하는 데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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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HM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미국 내에서 의사학이 어떻게 자리잡았는지를 알 수 있다. 1925년 5월 5일 워싱턴 D.C.에서 의학의 역사 및 서지학적 측면에 관심이 있었던 몇몇의 의사들에 의해 작은 미팅이 있었고, 이들은 그들 스스로 1921년에 창설되었던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History of Medicine(ISHM)의 미국 부서를 조직하였으며,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1928년, 이들은 ISHM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AAHM을 꾸리게 된다. AAHM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38년, Henry Sigerist에 의해서였다. Henry Sigerist는 1932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의사학교실 (the Institute of the History of Medicine)의 수장이 되었던 의사학자로, 미국에서 첫 번째로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의사학을 가르쳤던 인물이다. 또한 그는 the Bulletin of the History of Medicine이라는 AAHM 및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의사학교실의 공식 저널을 창간하기도 하였다.


AAHM은 세계2차대전 당시에는 개최되지 못하였지만, 이를 제외하고서는 매년 학술대회를 이어왔으며, 회원 수도 그에 따라 늘어나 1950년 25회 학술대회 당시에는 578명, 1975년의 50회 학술대회 당시에는 988명의 회원 수로 학회의 규모가 점차 확장되었다. 근래에는 1000여명 이상의 회원 수를 토대로 매년 학술대회에는 400~450명 정도의 회원들이 참석하고 있으며, 또한 ISHM과의 연계도 지속하여 ISHM 주최의 학술대회에도 AAHM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의 AAHM 학술대회는 총 4일간 열렸는데 이 가운데 첫 날의 투어 및 리셉션을 제외하고, 본격적인 발표는 3일간 이루어졌다. 총 52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173건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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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부분은 정식 발표를 위한 세션 이외에도 Luncheon Session을 구성하여, 점심을 먹으면서도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의를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이었다. 점심 시간에 구성된 세션은 다음과 같은 주제 등을 다루고 있었다.


- Blogging the History of Medicine
- When Good People Do Bad Things: Can History Intervene?
- Rival Siblings or Conjoined Twins?: Revisiting the Debate between Medical and Disability Historian
- Negotiating Access to Patient Related Materials: A Conversation between Archivists and Historians
- Medical History and Medical Anthropology
- Silos or Synergies: Considering the History of Interprofessional Education and Practice in The United States


제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새로운 정보나 관심을 환기할 만할 주제를 공유하고, 연구자들 간의 다양한 네트워킹를 장려하는 세션들이 구성되었다. 자칫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학회 과정 중 보다 편한 주제를 통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학회 진행에 활기를 더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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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AAHM의 총 52개의 세션들은 의사학 관련 넓은 범주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사학회라고 하여 미국 및 서구 의학의 역사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의학까지도 다루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미국 내부의 의사학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가지 주제가 다루어졌지만, Race and Healthcare in U.S. History, Race and Identity in 20th Century Medical Practice와 같은 인종 및 인권과 관련한 세션들이 인상 깊었다. 백인 뿐 아니라 흑인, 히스패닉,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있으며, 수많은 인권과 관련한 이슈들을 겪어왔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다양한 쟁점들을 겪고 있는 국가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관련 사항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되짚어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게 생각되었다. 또한 Probing the Limits of ‘Method’ in the History of the Neurosciences, Vaccination and its Discontents, Neurology, Psychiatry, and the Family, Affects of Surgery 등과 같이 서양의 근대의학사를 보다 집중적으로 다루는 세션들도 흥미로웠다. 서양에서 진행되었던 근대 의학으로의 전환에 대한 연구들은 한의학 전공자인 필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의 의학의 경우와 비교 고찰하게끔 만들고는 한다. “어떠한 배경과 흐름이 근대의학을 탄생시켰으며, 이는 한의학의 경우와 어떻게 다를까?” “한의학이 근대의학과 다른 측면이 있다면, 현대 의학 안에서 한의학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한의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현대 의학의 하나로써 효과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한의학 또한 근대 이후 다양한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의계 내부에서도 서양의 근대의학사를 고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AAHM 학회 안에서도 이러한 필자의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세션들이 존재하였다. 사실 AAHM 안에서 동아시아 관련 연구가 얼마나 있을지에 대해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다수의 연구들이 발표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Rethinking Hotness and Coldness of Drugs: A Cross-Cultural Conversation, Problematizing the Categories of Medicine and Religion in Pre-modern Asia, Bodies and the Medical Gaze 등의 세션에서 동아시아 의학 관련 발표들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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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의학 관련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서구의 형성된 의사학 연구방법론이 동아시아 전통의학이라는 컨텐츠와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AAHM에서 이루어진 동아시아 의학 관련 발표들이 동아시아 의학을 임상의학으로써 전공한 연구자들에 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간혹 충분히 전통의학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 관련 연구가 비교적 활성화 된 반면 한국과 관련한 연구는 아직은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앞으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통해 동아시아 의학의 가치를 밝히고, 한국 한의학과 관련한 연구들도 활발히 소개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이 외에도 2014 AAHM 학회에서는 The Transformative Role of Images: Anatomy, Surgery, Pathology, Taking Note: Technologies of Representation in Medicine, Medical History in Other Venues: Theater, Festivals, Blogs, Digital Games, and More 등과 같이 의학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을 다룬 세션, Global Ecologies of One Health, New Geographies of Public Health 등 지형학적 측면과 관련한 공공 보건 관련 이슈 등을 다룬 세션 등 흥미로운 발표들을 다수 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참석한 2014 AAHM에서 과거에 참석했던 동아시아 의사학 관련 학회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먼저 매우 다양한 연구들이 함께 발표되고 논의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서양뿐만 아니라 남미,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의 여러 주제들이 함께 논의되었다. 또한 다양한 연구 주제들이 각각 분리되어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관점을 공유할 경우 한 세션으로 엮여 상호간의 비교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Body Image”라는 세션에서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경우가 함께 다루어졌으며, 또한 “Rethinking Hotness and Coldness of Drugs: A Cross-Cultural Conversation”이라는 세션에서는 일본, 이스라엘, 중국, 그리스, 호주의 경우가 비교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한의학과 관련한 연구는 반드시 동아시아 의학의 범주 안에 머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세계적 범주의 의사학 관련 연구들과 함께 교류할 때, 한의학이 가진 학술적 가치를 보다 잘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현재 어떠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여야 하며, 그 연구를 위한 연구방법론은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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