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인선
[Ph.D. Life in Germany!]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경혈학을 전공하고 현재 독일 Tübingen 대학에서 뇌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박사 생활과 저의 연구 분야에 관해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의사 이인선 프로필

Ph.D. in Germany

 

안녕하세요.
두 번째 글에서는 독일의 Ph.D. 생활 전반에 관해 다루고자 합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제가 경험한 것들을 소개하는 글이 될 것이며, 독자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단,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감이므로 독일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거나 잘못된 사실이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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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의 박사과정 학생


독일에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지내다 보면 그 신분의 애매함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독일의 박사과정은 학생마다 그 소속이나 성격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Tübingen 대학의 Department of Internal Medicine 학과에 소속된 박사과정 학생이면서, Graduate Training Centre of Neuroscience에도 소속이 되어 있고, 실제 연구 수행은 Tübingen 대학 병원의 MEG center와 Max Planck Institute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마다 취득해야 하는 credit (학점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학회 참석, 발표, spring/summer school 등으로도 취득 가능함)도 모두 달라, 심지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장학금으로 학위를 진행하는 학생과 지도교수가 연구비에서 지급하는 인건비를 받으며 일하는 학생도 구분이 가능합니다. 이런 경우 비자 (학생 비자 혹은 취업 비자)와 세금 문제가 달라집니다.

때로는 이러한 다양성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데, 가장 헷갈리는 부분은 학생으로 ‘등록 (matriculation)’하는지 여부였습니다. 박사과정 학생은 공식적으로 대학에 등록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잘 이해되지 않는 제도이지만 인건비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 학생으로 등록하여 혜택 (학생 할인, 교통비 지원 등)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학생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학생증과 matriculation number 없이 박사과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행정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비서가 랩에 1~2명은 반드시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박사과정 학생의 업무


현재의 지도교수와 처음 만나서 인터뷰를 할 때, 저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연구비를 받아 일을 하면서 어떤 결과물을 내야 하나요?”
이에 대한 교수의 답변은 “그런 것은 없다. 연구를 하면 된다.” 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상당히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박사과정 학생은 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그것은 오직 ‘박사 학위 연구’입니다. 독일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이 다른 학생의 연구를 돕거나 행정 일을 하는 상황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다른 연구원의 연구를 돕는 때가 종종 있는데, 절대로 누군가 저에게 일을 시키는 형태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교수도 Postdoc 선배도 정중히 부탁하고, 저 또한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거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 학생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부터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의 연구 주제와 방향, 방법도 모두 학생 주도적으로 이뤄집니다. 교수는 학생을 ‘지도’만 하고, 대부분의 과정을 학생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소속된 랩마다 다르지만, 출퇴근 시간과 수업/연구/회의 등에 투자하는 시간도 거의 대부분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편입니다. 이렇듯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만큼 학생도 본인의 연구에 더 많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는 동시에 학위 과정이 길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3. 독일에서 공부 시작하기


위의 글을 읽으시고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면, 일단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한 다음 본인을 지도할 교수를 찾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교수에 따라 학위 과정 전반의 상황이 크게 달라져 대학의 이름이나 학과보다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관련 논문을 계속 읽다 보면 함께 연구하고 싶은 랩이나 교수가 있을 것이고, 그중 본인의 연구에 관심을 갖는 곳을 분명히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주변의 아는 사람을 통하여 정보를 얻거나 researchgate (https://www.researchgate.net/jobs), research-in-germany (http://www.research-in-germany.org/en) 등의 홈페이지에서도 관련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일단 지도교수가 정해지게 되면, 대학이나 학위 과정의 종류에 따라 입학 절차가 진행될 것입니다. 독일 사람들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많은 서류와 인고의 시간 (독일의 행정 처리는 아주 느린 편입니다)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이니 교수가 정해진 이후에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4. 일상생활


어떻게 보면 연구 관련 활동 외의 일상생활이 유학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데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은 대체로 저녁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때문에, 유학생들은 자칫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한인 커뮤니티나 유학생 모임, 동료들과의 모임 등이 큰 힘이 되곤 합니다. 흔히 독일 사람들과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는데,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쌀쌀맞거나 냉정하게 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으니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좋은 친구가 되어 있을 겁니다.

저는 매일 직접 밥을 해먹는데 식비가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독일의 장바구니 물가는 싼 편입니다. 같은 종류의 물건도 아주 싼 가격부터 비싼 물건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형편과 상황에 맞춰 장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케밥이나 간단한 피자, 샐러드가 아닌 경우의 외식은 꽤 비싼 편입니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여행을 다니거나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것도 유학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됩니다. 저도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도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승마, 댄스,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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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이었지만 독일 박사과정 생활의 대략적인 느낌은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독일, 그리고 독일 사람들의 장단점과 배울만한 점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한의사 이인선의 Ph.D. Life in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