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인선
[Ph.D. Life in Germany!]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경혈학을 전공하고 현재 독일 Tübingen 대학에서 뇌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박사 생활과 저의 연구 분야에 관해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의사 이인선 프로필

독일과 독일 사람들

 

안녕하세요.
독일은 중부 유럽으로 분류되며,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약 8천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덴마크,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수도는 베를린이고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의 정치·외교·경제 상황이나 지리적 위치상 독일이 유럽 연합 (EU)의 중심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복잡한 상황에 대한 소개보다 독일이라는 나라와 독일 사람들에게 느낀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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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독일에 왔을 때 저를 당황시켰던 것은 ‘오래되고 느린 시스템’과 ‘변화를 싫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연구실이나 집에서 번호키나 카드키 대신 무거운 자물쇠와 열쇠를 사용하고 홈페이지 비밀번호를 바꾸는 일조차 온라인상으로 불가능해서 우편으로 처리하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보안 때문이라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생소했습니다. 전자 비자 카드, 의료 보험 카드, 기차표를 할인받을 수 있는 Bahncard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원 합격증서와 학생증 그리고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를 받을 때도 모두 우편으로 전달받았습니다. 독일 대학의 행정 체계 역시 아직도 오래된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어 수강 신청이나 성적표 등을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없는 대학도 있으니, 제가 느낀 황당함을 여러분도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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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규칙을 따르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슈가 바로 최근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장거리 여행 버스입니다. 몇 년 전까지 버스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은 비행기나 느리고 낡고 비싼 기차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최근에 와서 같은 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끼리 싸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대절해주는 회사가 젊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에 관련 제도가 아주 천천히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용 버스 회사가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독일 국민들이 크게 불만이 없었다는 사실은 제게 더 이상 놀랄 거리도 아니었습니다.

한 번 정해진 일을 잘 바꾸려고 하지 않거나, 조금 늦더라도 안전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모습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설계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서 모든 계획을 몇 번씩 검토하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받는 과정이 굉장히 길고 느리게 진행돼서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연구윤리위원회나 연구재단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숫자 하나를 변경하는 일에 2~3주가 걸리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행정실과 사무실의 문이 닳도록 들락거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신중함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실제 실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나 위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기는 합니다. 또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구에 투자했고, 얼마나 많은 논문을 출판했느냐보다 결과적으로 얼마만큼 제대로 된 연구를 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자주 봐왔습니다.

독일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가정적인 성격입니다. 일과 회사보다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 사람들은 근무 시간에 열심히,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마친 후 정시에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 시간을 보냅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정원에서 바베큐를 하거나 부부가 퇴근 후 함께 장을 보고 들어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일에도 사회가 많은 책임을 나누고 있습니다. 임신, 출산과 관련된 휴직 및 복직의 법적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고, 독일 시민권이 없는 아이에게도 매달 일정한 양육 보조금이 지급됩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 중 한 사람이 반드시 일을 쉬어야 하는 것을 강제하고 있는 회사도 있으며, 어디를 가든 수유 시설을 비롯한 아이를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또 이를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기르고 훈육할 때는 정해진 발달 단계를 따라가기보다 아이의 요구에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토론하는 연습을 통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토론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하니, 이런 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많이 배우고 닮아가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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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안전지향적이고 보수적이며 이성적인 독일 사람들. 그렇다면 외국인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태도는 어떨까요? 이는 분명 쉽게 말하기 어려운 주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지역과 도시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난민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이에 따라 여론이 급격하게 바뀔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어떤 지역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거리 행진이 있을 때 그 옆 길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에 반대하는 거리 행진이 있기도 한 나라가 독일이라는 것입니다.

외국인을 접해본 경험이 적어서, 혹은 어떤 편견이 있어서 외국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들로 대부분 외국인과 교류하는 데 익숙하고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아주 가끔은 제가 ‘너 진짜 독일 사람 같지 않다’고 하면 본인도 그렇다고 인정할 정도로 개방적이고 친근한 성격의 독일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독일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바로 친구가 되는 성격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의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주말에 함께 근교로 놀러 가기도 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는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박사 학위 연구를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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