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지혁
[미국 통합의료연구소]

한국 한의학의 보건의료적 가치를 동시대적, 세계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혁신하고, 이와 관련하여 한의사들이 미래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의사 박지혁 프로필

SIO (통합종양학회)에서 만난 사람들

 

제가 SIO (Society for Integrative Oncology)를 처음 알게 된 때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10월 한국 제천에서 ‘2010 제천 국제 한방 바이오 엑스포 학술대회’의 일환으로 ‘국제 통합종양 학술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동서의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이었는데, 지도교수님이신 대한암한의학회장 김성훈 교수님께서 참석을 추천하셔서 학회 현장에 직접 가보게 되었습니다. 동서의학과의 설립 배경과 통합의학이 추구하는 바는 매우 밀접합니다. 동서의학대학원에서 저는 깊이 있는 종양학 공부를 위하여 병리학 교수이자 경희대학교 암예방소재개발연구센터장이신 지도교수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던 터라, 국제 통합종양 학술대회는 저에게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통합종양학 분야의 명망 있는 해외 연구자와 의료인들을 처음 만나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임상에서 암환자들을 보면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의 통합종양학’이라는 번역서를 종종 참고하였는데, 제천 학회에서 말로만 듣던 세계 최고의 암센터인 뉴욕 MSKCC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의 통합의학센터 의사 (MD) 개리 등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통합의학적 진료에 대한 실제 내용을 선생님으로부터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차기 SIO 회장이었던 선생님은 곧 뉴욕에서 개최될 SIO 국제 컨퍼런스에 오면 좋을 것이라고 저에게 소개해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뉴욕에 방문한다면 MSKCC를 견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이 순간은 제가 뉴욕에 조만간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몇 달 후 2011년 초에, 저는 처음으로 뉴욕을 방문하여 선생님을 다시 만나 MSKCC를 견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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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무렵에는 이미 MSKCC 등 다수의 미국 대형 종합병원 및 유명 암센터들에서부터 의사들을 중심으로 암과 같은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에게 개별적이고 전인적인 통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침 연구를 비롯한 훌륭한 임상연구 논문들도 점차 많이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이러한 사실을 접하고는 상당히 의아하고도 놀랍게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2000년 즈음만 해도 미국에서 보완대체의학 (CAM)의 이름으로 보조적인 웰니스 치료술 정도로 여겨지던 많은 한의 치료기술들이 어느새 미국에서 통합의학의 프레임에 수용되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종합병원급 의료체계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었으며, 근거기반 연구의 대상으로서 비로소 제대로 다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임상 및 연구환경이 한국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다면 한의학을 비롯한 한국 의학계의 발전에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의료계의 지독한 갈등상황과는 정반대로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통합의학의 프레임에서 한의학과 관련된 진료 내용을 오히려 잘 이해하고 있고, 이를 미국 의학계 특히 종양학계의 신개념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 저에겐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비록 의료전달의 체계는 미국과 한국이 서로 다르지만, 통합의학센터에서 미국 의사들이 환자에게 시행하고 있는 통합의학적 진료는 사실상 한국의 한의사들이 한방병원이나 큰 규모의 한의원에서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는 실질적인 내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 의료나 사회의 어떤 특성으로 인해 이러한 발전적인 상황이 가능한지가 매우 궁금하였고, 그래서 미국 진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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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하여, 근거기반의 종합적인 통합의료를 발전시키자’는 것이 SIO가 내세우는 사명입니다. SIO는 매년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데, 저는 2014년에는 텍사스 주의 휴스턴, 2015년에는 매사추세스 주의 보스턴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각각 엠디앤더슨, 하버드 다나파버 암센터에서 주관한 컨퍼런스라서, 강연이 끝난 뒤 암센터 내 통합의학센터에서 근무하는 의료인들의 설명을 들으며 병원 전체를 둘러보는 견학도 가능하였습니다. SIO는 다양한 통합의학적 치료법들에 대한 근거의 공유를 중시하여,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전 세계의 다학제 연구발표 및 교육을 시행합니다. 종양생물학의 기초연구에서부터 현재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통합암치료에 관한 임상연구까지, 최신의 연구결과를 다루는 종합적인 강연이 컨퍼런스 기간 동안 매우 밀도 있게 진행됩니다. 또 유익한 점은, 통합의학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직접 만나 현재 진행 중인 연구나 임상실제에 대해 듣고, 질문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SIO 홈페이지 (integrativeonc.org) 에 따르면, 2014년에는 17개국에서 300여 명, 2015년에는 19개국에서 350여 명 이상의 의료인, 연구자, 치료사, 환자조력자, 암환자 등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SIO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만 떠올려 봐도, 한의사, 중의사, 의사 (MD), 정골의학의사 (DO), 동양의학의사 (DOM) 및 Acupuncturist (L.Ac.), 자연의학의사 (ND), 카이로프락터 (DC), 물리치료사 (DPT), 간호사 (RN), 마사지 테라피스트 (LMT), 명상지도, 운동요법, 심리상담, 영양 및 식이지도 전문가 등 다양한 의료 관련 직종뿐 아니라, 통합암센터의 운영을 담당하는 MBA 출신 경영회계 실무자, 병원행정직들도 참석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SIO의 컨퍼런스는 통합암치료에 관하여 폭넓고 깊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2014년 휴스턴 컨퍼런스에서는 개인맞춤형 암치료의 최신 연구동향과 이에 관련된 통합암치료에 대한 다학제적 접근의 연구들이 발표되었고, 유방암에 대한 근거기반 통합암치료 가이드라인이 최초로 발표된 것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2015년 보스턴 컨퍼런스에서는 기존의 다학제적 접근은 물론이고, 특히 첫날에 Joint Conference Day라고 하여 (하버드 오셔 통합의학센터 주관) SIO와 두 개의 타 학회 (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 Fascia Research Society)가 통합암치료와 관련하여 서로 겹치는 분야의 연구 내용을 공유한 후 모든 발표자들이 한자리에서 공개 질의응답 및 토론을 하여 진정한 다학회적 교류의 획기적인 장면을 연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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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 컨퍼런스에서는 선택적으로 실용적인 Workshop도 진행합니다. 2014년 휴스턴에서 저는 통합암센터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강의와 토론에 참석하여 미국 내 유명 통합의학센터들의 경영구조와 현황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보스턴에서는 하버드 다나파버 암센터의 통합의학센터인 자킴센터에서 활동 중인 중의사 웨이동 루 선생님이 ‘Oncology Acupuncture (종양침구학)’라는 이름으로 개발한 암환자 대상 임상 및 연구용 침 치료기술 프로토콜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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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종합병원급 암센터에서 제공하는 통합의료 서비스는 통합암센터의 숫자와 통합의학적 치료 서비스 종류의 측면에서 명백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SIO에서 언급되는 통합종양학 분야의 연구경향도 바뀌어 가고 있는데, 통합의학적 치료가 암환자에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요즘은 기존 암치료에 통합의학적 치료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지, 어떤 치료모델이어야 환자를 위한 의료전달과 센터운영이 원활한지에 대해서도 담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SIO는 전 세계 통합의학계에서 가장 활발한 종양학 분야의 주요 학술단체입니다. 저는 SIO와 같은 학회활동을 통하여 최신 학술정보를 업데이트하는 한편, Integrative Medicine Physician으로서 한의사와 관련될 수 있는 미국의 다양한 의료직종 및 단체들과 통합의학계에서 교류하거나 협력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다학제적 통합의료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에 필수적일 것입니다.



© 한의사 박지혁의 미국 통합의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