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의사 김승남 프로필

#13. 유전법칙 속에서 찾아보는 기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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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란 무엇일까요?


기氣운이 없다.
기氣절했다 (기가 끊어졌다).
활기氣차네~!기氣가 차서 원..
기氣분이 어때?
훈훈한 열기氣가 느껴진다.
감기氣때문에 죄송해요..
공기氣
대기氣
절기氣
등.
 
너무나도 많이 쓰이고 있는 동양철학이자 의학적 개념, 기氣.
수많은 근현대학자들은 기(氣)의 실체 및 개념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고,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현상적으로, 미시적으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기(氣)의 개념들은 다른 개념, 물질, 현상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관련 분야만 해도, 심리학, 병리학, 물리학, 기상학 등).
그나마 ENERGY로 개념화 시켜보려 했지만, 어디 ENERGY로 모든 기운이 설명이 되나요 (감기만 해도).


결국에는 철학적으로 유사한 일련의 동정, 변화, 역(易)의 개념을 '기(氣)'로 칭해 왔고, 각각의 기는 하나의 어떤 객관적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그게 다일까요?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개념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미시적으로 캐지 않고, 자연과학 속에서 현상을 찾고, 법칙을 찾는, 유전학적 관점입니다.


생명의 유전자중에는, CONSERVED GENE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어떤 역할을 하는 특정 유전자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종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즉, 통시적인 관점에서 같은 조상을 갖고 있을 확률을 보여주는 ‘같은’ 유전자들을 칭하는 것인데요.
일례를 들면, 여왕벌의 페로몬은, 벌 뿐 아니라 사회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곤충 집단들 사이에서도 같은 패턴으로 유전자가 발견됩니다. 다른 종이지만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드는 이것은, 결국 먼 옛날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 받은 ‘공통의 재산’인 것이지요.
하지만, CONSERVE GENE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후손들이 같은 패턴으로 그 유전자를 활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후손들은 후생유전학적으로 여러 유전자 후보들을 활용하고 환경과 부대끼며 적응하면서, 다음 생에 유리할 유전자를 남기도록 노력합니다. 결국 이 유전자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생명들이 환경과 부대끼며 적응한 생명 역사의 흔적인 셈이지요.


생명은 자신의 행동이나 생활 패턴에 환경의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고, 그 흔적은 다시 환경과 치고받으며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명이 여러 번 변화하는 환경에 도전하고 오랜 시간 동안 적응하는 과정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많은 생명 종들의 유전자 부분에서 공통된 패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흐르는 물 밑에서 발견된 박테리아의 유전자 속에서도, 뜨거운 온천의 박테리아 유전자 속에서도, 울창한 아마존의 나무 유전자 속에서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나 읽고 있는 여러분의 유전자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해와 달은 뜨고 지고,
바람이 높은 압력에서 낮은 압력으로 흐르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당기면 풀어지고, 밀면 뭉쳐지고,
모여 있는 곳에선 흐름이 발생하고,
흐름이 생기면 줄기가 나타나고,


이러한 자연현상들은,


추우면 따뜻함을 좇고, 온도를 조절하며, 흐름에 맡겨 움직이고, 화가 나면 폭발하고, 두려우면 피하고, 적은 곳으로 흘려보내고, 뭉치면 불편함을 느껴 스트레스 받아 괴로워하는 등.
그에 적응한 모든 생명들의 현상 속에 공통된 무엇인가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하지만 기(氣)라고 부르던 수많은 현상들은,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주고받으며 익힌, 자연현상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은, 한의학을 떠나, 조상들이 발견한 자연 속에서의 공통된 법칙이었지요.
기(氣)의 현상들은 거시적인 관점으로 모든 생명현상이나 자연현상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자연현상, 생명현상에도 나타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
자연‘법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氣)라는 개념은 단순히 추상, 철학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을 미시적인 접근이 아닌,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생명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미시적인 현상으로 접근하면 그 의미가 굉장히 좁게 느껴지고, 단순히 철학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제는 자연의 거시적인 시각으로, 과학도 접근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氣)가 무엇인지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생명현상에서 그동안 한의학의 용어로 기(氣)라고 불러오던 개념이 당연히 발견될 것이고 (그것들이 모두 다 다른 개념을 지칭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도 한의학적 시각,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밝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각을 크게 갖고 현상을 바라보는 것.
원래부터 한의학이 갖고 있던 장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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