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의사 김승남 프로필

#17. 생체의 리듬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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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것 중에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빌헬름 플리스(Wilhelm Fliess)라는 독일의 의사에 의해 19세기에 발견되어 만들어진 이론이지요. 플리스는 환자의 기록들 사이에서 일련의 주기(태어남에서 죽음에까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각각 남자의 상태는 23일, 여자의 상태는 28일을 주기로 등락을 반복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남자 환자들의 상태는 신체질환이 많았고, 여자 환자들의 상태는 감정적인 문제로 인한 질환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되어 신체 리듬, 감정 리듬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이후 20여 년 뒤, 오스트리아의 알프레드 텔처(Alfred Teltscher)라는 인스브룩 공과대학 교수가 자신의 학생들 성적이 좋은 날, 나쁜 날의 리듬패턴을 분석하여, 지성적인 상태가 33일을 주기로 등락한다는 지성 리듬을 추가해 현재 알려진 형태의 바이오리듬을 완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바이오리듬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반세기 뒤, 미국의 조지 톰맨(George S. Thommen)이라는 사람에 의해서입니다. 톰맨은, 위의 등락이론을 Sine 곡선의 주기로 연결시켜, 태어난 날을 모든 지수의 0으로 각각의 지수들이 23, 28, 33일을 주기로 흘러가는 곡선으로 시각화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의 현재 상태를 판단할 수 있게 하여 바이오리듬을 대중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되지요.


바이오리듬은 그 뒤로도 반세기를 거치면서 위의 세 가지 지수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심리학, 경제학, 경영, 정치 등등)의 많은 사람에 의해 주창, 변경되며 다양한 변종들이 생겨납니다. (10여 가지의 지표를 매일매일 분석해주는 바이오리듬 이론이 주창되기도 했습니다.)


바이오리듬의 이런 간편함과 명료함, 그리고 생체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업화로의 치중과 무분별한 확산으로 인해, 맹신과 대중적인 문제까지도 야기하게 되었지요.
우리나라는 이제는 좀 시들해진 면이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바이오리듬을 맹신하고 매일매일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사회활동을 꺼리거나 자신의 미래를 의지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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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과학계에서는 이러한 바이오리듬의 근원적인 이론을 발견하고자 많은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나거나 근거 없음으로 판정 되었고, 과학계에서 바이오리듬은 거의 사장되는 분위기로 인식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바이오리듬과는 별개로 생체에는 다양한 리듬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호르몬의 주기가 대표적이지요. 사람들이 위의 바이오리듬을 당시 큰 지지를 받으며 맹신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감정지수’가 28일 주기로 흘러간다는 것인데, 이것이 여성들의 생리주기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생리주기와 일치한다는 것은, ‘생식’ 주기에 연관된 수많은 호르몬의 주기가28일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고, 호르몬 분비가 어떻게 감정에 영향을 주느냐는 현재에도 신경생리학, 심리학분야에서 밝혀 나가고 있지요.
물론 그것이 태어났을 때부터 28일을 주기로 그리고 Sine 주기로 흐르며 감정상태의 기복을 결정한다는 바이오리듬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전에 비해 조금 인기가 식긴 했지만, 최신 과학계의 인기 있는 연구분야 중 생체시계 리듬이 있습니다.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으로 불리는 이 연구분야는,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가 가진 ‘하루’ 주기 리듬에 대한 이론을 밝혀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루 주기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거의 모든 우리의 생활은, 하루 주기의 반복입니다. 규칙적으로 잠은 매일 자야 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도 매일 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배변 활동도 중요하지요. 체온 조절은 어떤가요? 밤에 몸이 따뜻해지고 낮에 몸이 식는 것은 낮과 밤의 미세한 온도차이에 적응하기 위함이지요. 거의 모든 생체활동이 일주기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주기 리듬 연구는 왜 생명체가 일주기로 이러한 활동들을 하게 적응되어 왔고, 그것이 유전됐으며, 그와 관련된 뇌의 영역, 호르몬, 유전자 및 질병 상태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생명체의 활동들…. 한의학적 이론으로 보았을 때 이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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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으로 넘어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소문素門>의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편에는 남자와 여자의 인생 주기를 팔 년과 칠 년의 주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편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의 몸과 마음가짐의 변화를 자연에 더불어 얘기했습니다.


또한, <영추靈樞>의 위기행衛氣行편 등 많은 내경의 편들에서, 인체 내의 흐르는, 혹은 외부의 운기에 따라 변하는 생체의 시스템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길게 생각하더라도 신양腎陽기의 흥망성쇠가 우리의 삶의 대운을 결정짓는 큰 흐름의 주기가 되듯이, 생체의 주기는 한의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사상입니다.
사람의 한의학적 진단, 치료의 발달을 위해서 우리는 이제 바이오리듬? 더 나아가 우리 생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다양한 리듬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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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기 리듬을 선도하는 학자 중에 록펠러대학의 마이클 영(Michael W. Young) 교수의 세미나를 여러 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재밌는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직은 가설이지만, 생명체가 일주기를 갖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생명체가 고도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공생’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원시지구에 태양에너지를 근원으로 둔 유기체와 엔트로피 차로 발생하는 에너지에 근원을 둔 유기체가 살고 있었는데, 더욱 효율적인 생명활동을 위하여 하나의 생명체로 합쳐져(공생하며)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 이후 그 생명체는 낮과 밤을 모두 활동할 수 있게 되어 더욱 효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 낮과 밤의 다른 호르몬 활동 등의 증거라는 것이죠. 생명체 내의 미토콘드리아의 존재, 낮과 밤의 다른 성장패턴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바이오리듬,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를 왈가왈부하기에 앞서, 생명체에 있어서 23일, 28일, 33일, 1년, 7년, 8년 등등.. 이러한 주기들이 왜 존재하는지 밝혀내는 것,
한의학이 할 수 있는 큰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워어어얼화아아수우목금퇼로 반복되는 우리 생체리듬은 과학적으로 밝혀질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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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