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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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람을 알기 위해 동물을 연구한다

 

시원해진 걸 보니 가을이구나 싶었는데, 어느덧 쌀쌀해지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가을을 넘어 겨울에 진입한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에게 늦가을에서 초겨울은, 한 해의 연구들을 마무리해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매년 그 해의 가장 영예로운 사람을 선정하는 노벨상 시상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동물실험을 통해 뇌의 해마 부위에서 위치와 방향을 인식하게 하는 격자 세포(GRID CELL)를 발견하고 연구한 공로로, 존 오키프(John O’Keefe)교수와 모저(Moser) 부부교수에게 각각  주어졌습니다. 꾸준히 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그 공로로 인해 세계적인 상을 받는다는 건 매우 영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의 꿈이지요. 언젠가 한의학 연구자가 인류에 대한 기여로 노벨상을 받게 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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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이기도 했던, 동물실험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인류의 의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아직도 우리 몸이 태어나 분화되어가는 발생(DEVELOPMENT)과 죽어가는 노화(AGING) 연구는 전 세계 수많은 학자들이 온 인생을 바쳐 진행하고 있음에도 답을 알기가 묘연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읽고, 사고하는 뇌의 활동마저도, 가설이 있을 뿐 정확한 기전을 알 수는 없죠.


왜 그럴까요?


우선 사람은, 과학적 호기심에 의한 실험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서, 사람의 생로병사를 알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생로병사를 가한다는 건 큰 논란거리이죠. 이 때문에 의학, 생명과학의 연구는 윤리위원회의 통제가 굉장히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궁금함에 전쟁의 힘을 빌어 인륜을 져 버린 과거의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훗날 어떤 기반이 되었든 절대 옹호되어선 안 되고,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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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유만으로도 사람의 연구는 불가능하다 여길 수 있지만, 신체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의 연구라도 사람의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근거가 되어줄 일차정보, 생명과학적 진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피험자의 혈액에서 특정 성분이 검출되었고, 그 사람에게서 스트레스성 행동이 발견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특정 성분이 그 사람에게서 스트레스성 행동을 일으킨 것일까요?
실제 중세시대에서 근대까지만 해도 놀랍게도 이런 결론이 쉽게 도출되었습니다. 마녀사냥과 같은 인류의 불행을 초래하는 근거로 삼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충분히 과학적인 성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성분과 스트레스성 행동 사이에 관련성을 도출할만한 충분한 과학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러한 일차정보의 부족함을 ‘실험 모델’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서 메우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얘기에서 사람에 대한 연구는 의학연구 중에서도 동물실험에 대해 더 집중하겠습니다.)


실험 모델이란, 사람에게 만약 일정하게 일어나는 조건이 있다면, 그 조건을 재현한 실험체를 만들어 사람에게 일어날 일을 예측해 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위의 예시에서 사람에게 직접 성분을 주사해볼 수는 없겠지만, 실험동물을 이용해 성분을 주사하고, 동물의 스트레스 정도를 평가해 볼 순 있겠지요.
만약, 그 성분의 주사가 모든 실험 모델에서 스트레스성 행동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 성분이 스트레스성 행동을 사람에게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제 과학은 많은 일차적 정보들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일차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없을까요?


아닙니다. 현재진행형인 현대 과학계의 딜레마는, 실험 모델이 과연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조건을 반영할 수 있느냐입니다.
일례로, 파킨슨병을 들 수 있습니다. 파킨슨병은 유전적,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뇌의 도파민 세포가 파괴되어 나타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뇌의 도파민 세포를 파괴하거나 유전적인 요소를 변이시키거나 환경적인 조건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동물 모델을 연구하더라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질병 상황이 똑같이 재현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2013년 아일랜드에서 열린 파킨슨병 관련 세미나에서는, 컬럼비아대학의 PRZEDBORSKI 교수의 주도하에 파킨슨병 동물 모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토론장이 열리기도 했었지요. 2014년 한인 과학자 세미나에서, 파킨슨병 동물 모델을 오래 연구해 온 한인 과학자인 컬럼비아대학의 강운중 교수님의 대답에서도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필자) “많은 연구자들은 파킨슨병을 연구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해 신경만 파괴하기도 하고, 뇌 부위를 절단하거나 유전자 변이 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 모델에서는 치료 효과를 보이는 약물이라고 해도 다른 모델에서는 전혀 변화가 없기도 합니다. 파킨슨병 모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 “파킨슨병 연구에서 그 상황은 큰 어려움입니다. 현재 과학계는 사람이 앓는 질병을 똑같이 앓고 있는 동물을 연구하는 거라기보다는, 질병에 걸린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 나타나는 동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모델은 동물일 뿐이지 결국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는 비난도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필요 없는 연구에 더 이상 동물을 희생하지 말라는 동물윤리운동단체도 있지요. 우리가 사람을 모르는 만큼, 우리는 동물에 대해서도 모른다면 애초부터 어려운 상황이겠죠.
하지만, 열심히 과학계가 노력하고 있는 덕분에 실험동물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쥐, 원숭이, 닭이나 초파리, 지렁이 등의 유전체지도와 단백질, 장기의 생리 병리, 특정 유전자의 변이 정도 등등 이들과 사람과의 차이, 공통점, 예측 가능한 변수를 연구함으로써 간극은 많이 메워졌고, 인류는 자신들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은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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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동물 모델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동물의 행동패턴으로 사람의 행동결론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고, 동물에게 일어나는 병리기전이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거나, 동물에게 안전한 것이 사람에게는 위험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과학에 있어 일차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실험 모델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 개발되고 있습니다.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들도 필요하겠지요.


최근 동물 모델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한의학적 지식은 실험 모델이 결론에 있어 중요한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절한 실험 모델이 아니라고 해서 인체에 일어나는 한의학 현상을 과학적 사고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현대의 의학으로써는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가 위험하다는 것을 중세-근대시대를 거쳐오면서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선 실험 모델의 검증이 꼭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한의학 연구를 위한 실험 모델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한의학적 결론을 도출하기에 좋은 모델인지, 이로 인해 나오는 결론은 과연 합리적인 사실인지, 한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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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