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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이 20번째 글이 되었습니다. 그간 많지 않은 기고 글들을 통해 제가 현재 연구하고 있는 발생유전학 분야와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렸습니다. 모델링과 유전법칙(7편)부터 후생유전학(2편), 성별의 발생(5편), 뇌의 발생(6편), 얼굴의 형성(8편), 좌우편차의 발생(16편), 축의 발생(19편)까지..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은, 손발(이른바 사지)의 형성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전에 앨런 튜링이라는 과학자에 대해 조금 언급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앨런 튜링(1912~1954)은,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입니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특히 앨런 튜링은 컴퓨터과학, 암호학, 논리학 등에 정통했던 천재 수학자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Hut 8팀의 수장을 맡아, 이니그마 암호 해독기인 Bombe, 전쟁 후엔 ACE라는 컴퓨터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천재 수학자의 사망에는 여러 음모론이 있는데, 그중에는 천재를 제거하기 위한 국가들의 모함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었고(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 1954년 감옥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사망한 채 발견됩니다. 그는 2009년에 이르러서야 명예가 회복되었고, 2013년에 와서야 엘리자베스 여왕 2세에 의해 사면됩니다.

앨런 튜링은 수학& 컴퓨터과학 분야에 있어서 튜링 기계, 튜링 테스트, 인공지능 컴퓨터 등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삶은 Breaking the Code(브로드웨이 쇼, 1988), Breaking the Code: About the Life & Times of Alan Turing(BBC 드라마, 1996) , Codebreaker(다큐멘터리, 2011-2012)로 제작되었고, 최근 개봉한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영화로도 재조명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자 하는 앨런 튜링의 업적은 수학/컴퓨터가 아닌 말년에 했던 생물학 분야입니다. 사실 튜링의 생물학 연구는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죽기 직전까지의 기간 동안 이루어졌고, 한 편의 논문을 세상에 남깁니다 [1].

튜링이 관심이 있던 분야는 발생학 중에서도 형태의 발생, MORPHOGENESIS라는 분야로 당시만 해도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던 분야입니다. 튜링은, 우리 몸의 발생이 일정한 화학물질(현재는 유전법칙으로 밝혀진)의 패턴화를 이루면서 형성된다는 개념을 도입한 내용의 Pattern formation을 발표했고, 놀랍게도 그 후 60년이 지난 최근에 와서야 그 내용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2-5].

그 대표로 2014년 Science 잡지에 나온 유전자 발현 분석을 통해 사지 발달에 존재하는 튜링 패턴을 보여준 논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4,5]. 저자들은 발생학에서 사지 발생에 영향을 주는 요소라 밝혀진 유전자들 가운데 Sox9, Bmp, Wnt 세 개의 유전자 패턴을 분석하였습니다.

이 유전자들은 Sox9 유전자를 중심으로 사지의 맹아상태(limb bud)에서 각각의 발현에 영향을 끼치며 다섯 손가락을 형성해 가게 되는데, 일정한 패턴을 이루면서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입니다. 

그 패턴도 무작위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서로의 영향에 따라 정확한 수학적 원칙으로 파형을 형성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튜링의 패턴 발생 가설은, 형태가 생성되는 데에 있어서 일정한 물리적, 화학적 요소들이 상호 패턴을 이루면서 영향을 주어 이러한 형태를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가설에만 그치게 되었지만, 발생 시기에 따른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게 된 최근에는 그 가설을 검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60년 전의 한 과학자에 의해 추정된 발생학의 수학적 원리는 현대과학기술이 발전된 최근에야 빛을 발하게 되었지요. 앨런 튜링이 최근 그의 업적들이 재조명, 각광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이미테이션 게임 영화를 보면서 (컴버베치를 보면서) 안타까운 시기에 태어나 죽음을 택해야 했던, 그의 삶을 조용히 추모해 볼까 합니다.

한의학은 자연에서 발견하여 발전한 학문입니다. 숫자와 형태를 기반으로 한 상수학을 본체로 두고 있으며, 사람을 소우주로, 그 안에 다양한 수학적 모델링이 있음을 바탕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현대의 과학이 한의학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 음양, 사상, 오행, 오장육부 같은 개념들이 현대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최근에 와서 현대 한의학 연구자들이 이를 증명하기 위해 많이 애쓰고 있습니다.

과거에 과학의 발전이 60년이 걸렸다면, 현재의 과학은 10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의학적 개념들의 미래도, 매우 밝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많은 한의학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 희망찬 2015년을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고문헌

[1] Turing AM. 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 1952. Philos Trans R Soc Lond 237(641):37-72.

[2] Sheth R, et al. Hox genes regulate digit patterning by controlling the wavelength of a Turing-type mechanism. 2012. Science 338(6113):1476-1480.

[3] Tompkins N, et al. Testing Turing’s theory of morphogenesis in chemical cells. 2014. PNAS 111(12):4397-4402.

[4] Zuniga A and Zeller R. In Turing’s hands-the making of digits. 2014. Science 345(6196):516-517.

[5] Raspopovic J, et al. Digit patterning is controlled by a Bmp-Sox9-Wnt Tyring network modulated by morphogen gradients. 2014. Science 345(6196):566-570.

©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