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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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전과 체질, 타고나는가 얻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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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네이처(Nature)지에는, 유전계열 분석을 통해 영국 내의 유전자지도를 만든 논문이 표지로 실렸습니다. 영국 출신 과학잡지인 네이처에 꼭 맞는 논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유전학과 체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유전법칙은 유전인자들의 발견으로 인해 더이상 가설이 아닌 법칙으로 확립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전인자가 존재하며, 이 유전인자 속에 생명체의 모습과 형태가 오롯이 저장되어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후생유전학의 발달 이후, 그것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라고 밝혀졌습니다. 후생유전이란, 광범위한 개념으로는 ‘유전인자 발현의 조절’을 하는 외부적 인자를 모두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전 글들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 후생유전적 조절로 같은 유전자의 발현도 정밀하게 조절되고, 매우 판이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죠.


피부색의 예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인체의 피부색이 거의 투명한 밝은 살구색부터 황색, 갈색을 넘어 흑색까지 이를 정도로 광범위한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피부색을 결정하는 것은, 피부의 멜라닌 세포의 양 차이, 멜라닌 색소의 침착 정도 차이, 그리고 다른 멜라닌의 분비 정도 차이입니다.


우선, 생체에는 두 종류의 멜라닌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환경적, 유전적 영향에 의해 MC1R이라는 선택적 멜라닌 전사 기전이 조절되면 서로 다른 진한 정도의 멜라닌이 분비되게 되는데, 그 결과 피부색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이지요. NCKX5라는 유전자의 경우, 생체에서 멜라닌 세포의 생성을 제거하는 기전을 갖고 있어 멜라닌 색소의 양 차이를 낳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밝은 피부의 인종에서는 잘 발견되는 반면, 어두운 피부색의 인종에서는 변이된 형태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즉, 몇 가지의 연구들로 보아 피부색의 경우,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유전자의 발현 때문에 멜라닌 색소 차이가 생겨 피부색을 갖게 된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종종 젊은 사람들이 만나면 팔을 모으고 누구 피부가 더 하얀지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다들 경험으로 알다시피 같은 한국인들 내에서도 꽤 많은 피부색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분명 그들의 피부색이 부모님들에서부터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알고 있을 겁니다.


“어릴 때 뛰어 놀아 타서 그래!”라는 어머니의 설명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유전적 차이?를 실감하셨던 분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어릴 땐 피부가 어두웠는데, 자라면서 점점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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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에서, 유전인자만이 피부색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깊게 들어가면 그 원인조차 유전적인 영향에서 온 경우도 있겠지만, 제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후생유전적인 영향입니다. 앞서 말했던 많은 피부색을 조절하는 유전 기전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생유전적인 전사조절에 의해 최종적인 결과를 발현하게 됩니다.


즉, 선택적 MC1R 유전자나, NCKX5 유전자가 잘 발현이 되도록 유전이 되었다 하더라도, 대표적인 후생유전 기전인 메틸화나 아세틸화에 의해 정상적인 발현이 안되게 하여 피부색의 차이를 낳는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런 후생유전의 기전 중에는 자외선이나 영양 상태 등 외부자극에 의한 멜라닌 발생 유전자의 조절 변형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로, 유전적으로 같은 쌍둥이라 하더라도, 자라는 곳이 달라 지구상 위도에 따라 태양 조사 정도가 다르게 되자, 후생유전학적 조절이 바뀌어 피부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언급한 내용들보다 피부색과 관련된 유전/후생유전 연구들은 굉장히 다양한 유전인자에 걸쳐 있습니다. 피부의 경도차이나, 땀샘, 털에 의한 윤기차이 등도 그중 하나지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부분에 있어 영향을 받는 유전인자들인데, 같은 인종이라면 거의 유사한 피부색을 갖게 된다니, 정말 생명체의 그 세밀하고 엄격한 조절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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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는 체질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많은 요소가 더 많이 밝혀져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체질의 차이가 실제 환자들의 질병의 차이를 낳고, 같은 증세여도 치료방법이 달라져야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체질은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표현형들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표현형이란 유전학적 언어로, 외부로 드러난 유전학적 특성을 의미합니다. 골격, 체력, 뇌 신경계, 심혈관계, 호흡기계, 비뇨생식기계, 소화기계 등등.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어떠한 연관도 생각하기 어려울 이 수많은 유전적 표현형들이 하나의 체질로 연결되어 사람들에게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한의학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의 관찰을 통해 발견해낸 체질이라는 개념.
생명과학으로는 아직은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어떤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유전인자들의 활동은 생명을 설명하는 과학적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체질은, 어쩌면 유전법칙의 지배를 받는, 밝혀지지 않은 유전인자들의 특이적 유전패턴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더욱 흥미롭게도, 특이적 패턴을 갖는 후생유전 조절 기전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밝혀지는 날에는, 생명과학계에 한 획을 그을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쩌면 그 개념의 발견으로 인해 한의학의 체질의학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동양을 넘어선 수많은 세계인에게도 체질을 적용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체질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을까요?
아니면 얻어진 후에 조절되며 변화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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