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두 아들을 둔 엄마 한의사 방성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귀한 일이지만 또한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동의보감> 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양육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그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학력]
-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박사학위 취득 (의사학)

[경력]
- 현 인사랑한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의사학교실 겸임교수
- MBC 창사특별기획드라마 <마의> 한의학 자문

[저서]
- 2017 『조선왕조 건강실록』
- 2016 『아토피, 반드시 나을 수 있다』
- 2015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 2014 『동의보감 디톡스』
- 2013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 2012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
- 2012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 2012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1, 2』

방성혜
방성혜

두 아들을 둔 엄마 한의사 방성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귀한 일이지만 또한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동의보감> 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양육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그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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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은 비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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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금기를 어겼더니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진학 및 입학하고 나는 한의원 일로 한창 바쁠 때였다. 일곱 시에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퇴근하면 여덟 시경이었다. 아이들을 보살펴주기 위해 함께 사는 친정엄마가 이미 여섯 시 정도에 아이들 저녁을 먹여둔 상태였다.


낮에 보살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엄마 아빠랑 같이 밥 먹자고 하면 이미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냉큼 식탁에 와서 또 저녁을 먹는다. 생각 외로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서 나중에는 아예 밥공기에 밥을 한가득 담아서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여섯 시와 여덟 시에 저녁을 두 번 먹어서 하루 네 끼를 먹는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기를 일 년 정도가 지났다. 어느 날 보니 아들의 외모가 전과 다르게 바뀌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날렵했던 턱선은 둥글넓적하게 바뀌었고 헐렁하던 티셔츠는 터질 듯이 꽉 끼어 보였다. 귀여운 토끼가 귀여운 돼지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먹성이 좋은 작은 아이가 살이 많이 쪄버리고 말았다.


동의보감에서는 하루의 금기, 한 달의 금기, 일 년의 금기 그리고 일평생의 금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중 하루의 금기란 이것이다. 


“하루 동안 하지 말아야 할 금기는 밤늦은 시간에 배부르게 먹지 않는 것이다.” 


하루 동안 해서는 안 될 일로 특별히 당부한 것이 바로 밤늦은 시간에 배불리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매일같이 어기고 있었다. 그것도 내 몸에 대고 어긴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이들의 몸에 대고 어기도록 강요한 것이다.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작은아들이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건강검진 항목 중에 혈액 검사가 있었다고 하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결과지를 받아 보고서 그 위에 적힌 네 글자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고지혈증’


그 후 작은아들의 비만한 배가 눈에 띌 때마다 배를 두드리며 이 뱃살은 도대체 언제 뺄 거냐 잔소리를 시작했다. 시큰둥하던 작은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유난히 뚱뚱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속상했던 것 같았다. 스스로 살을 빼겠다고 결심했으니 그 방법에 대해서 나는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다.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빼보라고 했다. 아들은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 그것은 바로 ‘하루에 과자 한 봉씩 먹던 것을 중단하기’였다. 다른 것은 안 하겠단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작은아들의 자발적인 다이어트는 시작되었다. 사실 다이어트라고 하기도 뭐하다. 고작 ‘과자 안 먹기’ 이것이 전부인 다이어트였으니 말이다. 평소처럼 밥도 충분히 먹었다. 평소처럼 운동도 잘 안 했다. 아주 가끔 1층에서 17층까지 계단 오르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본인이 했다고 말하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 믿을 뿐이다.


그렇게 과자 먹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한 후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당장 바로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서서히 살이 빠졌다. 서서히 살이 쪘던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퇴근한 후 아들의 배를 두드려보니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뱃살이 쏙 빠져 있었다. 또한 유(U)라인의 얼굴이 마침내 브이(V)라인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원래 몸매로 돌아오기까지 장장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잘한 것 그리고 잘못한 것


작은아들이 비만아가 되었다가 다시 정상 체중으로 돌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또 잘한 것도 있다. 먼저 잘못한 것부터 살펴보자.


첫째는 이것이 제일 큰 잘못인데 밤늦은 시간에 이것저것 먹인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말한 하루의 금기를 어긴 것이다. 내가 내 몸에 대고 어긴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어기도록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는 제대로 먹는가를 보지 않고 많이 먹는가만 보았다. 어릴 때 식습관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가 잘 먹으니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건, 잘 씹지도 않고 후루룩 빨리 먹어치우건, 밥 먹은 후 바로 드러눕건 간에, 그저 많이 먹으라고만 했다. 식사의 습관이 더 중요한데 식사의 양만 쳐다봤었다.


셋째는 아이가 살이 찐 이후에 살 빼라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며 행동지침을 함께 만든 것이 아니라 오며 가며 그저 살 빼라 잔소리만 줄곧 해댄 것이다. 엄마가 변화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이보고만 변화하라고 했다.


그래도 잘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조급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같이 아들의 체중을 재면서 숫자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살이 잘 빠질 때도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매일 체중을 재면서 숫자에 연연하다 보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되고 그것 때문에 또 가짜 식욕이 생길 수도 있다. 아들에게 오늘은 과자 안 먹었냐, 체중은 얼마 나왔냐 매일같이 물어보거나 재촉하지는 않았다. 정상 체중이 되기까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대신 요요는 전혀 없다.


둘째는 온 식구들이 다 함께 야식을 하지 않은 것이다. 어른들은 먹으면서 아이보고는 “넌 먹지 마.”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다 같이 먹든지 혹은 다 같이 먹지 말든지 해야지 어른은 먹으면서 아이는 먹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온 식구들이 다 함께 그 어떤 야식도 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 잘 한 것 같다.


셋째는 이것도 잘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뚱뚱하기에 더욱 많은 애정 표현을 해줬다. “엄마는 아들이 뚱뚱하건 날씬하건 상관없이 너무나 사랑한다.” 밤마다 자기 전에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토끼가 돼지가 되었어도 내 눈에는 여전히 ‘우주 최고의 꽃미남’이었고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게 아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한 일인 것 같다.


작은아들의 경우는 초등학교 시절의 비만이었다. 만약 유치원 연령 아이들의 비만이라면 아이보다는 엄마의 실천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초등학생보다는 유치원생이 엄마의 손길이 더 크게 작용하는 나이이다. 습관을 형성하기에 더 말랑말랑한 나이이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 아이를 다그쳐서 살을 빼게 하는 것보다는 유치원 시절에 엄마가 식습관을 잘 잡아주는 것이 훨씬 더 쉬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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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은 비만이 없다


비만의 나라 미국에는 살찐 애완견들이 운동할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만한 애완동물을 위한 사료도 따로 있다고 한다. 비만한 애완동물을 위한 비만 클리닉도 따로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개 팔자가 상팔자인 셈이다. 애완동물에게 실컷 먹이고 운동도 안 시켜서 살이 찌게 해 놓고서는 또 돈 들여서 헬스장 보내고 병원 보내다니 참 희한한 나라이다. 반면에 야생동물들에게는 비만이 없다. 야생에서 사는 동물들은 생존 자체가 치열하기에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상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살이 찔 틈이 없다.


나무를 잘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에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나무가 썩는다고 한다. 한 초보 농사꾼이 배추를 잘 자라게 하려고 비료를 엄청나게 땅에 뿌렸다. 그런데 정작 배추를 수확하고 보니 배추 맛이 떫어서 먹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비료가 많다고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혹시나 비만의 나라인 미국에서 애완견을 키우듯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나 비료만 많이 주면 배추 농사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초보 농사꾼은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예뻐서 많이 주고 많이 먹이고 많이 아끼다 보니 오히려 맛이 떫어진 배추가 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잘 돌아보자. 배추씨가 땅에 뿌려져 자라 어떤 배추가 될지는 농사꾼의 손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