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약사, 한 걸음씩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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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진로 선택의 순간은 온다. 새롭게 알을 깨고 태어난 약사들도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대부분은 로컬약국, 병원, 제약회사, 공공기관 이렇게 네 가지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병원약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대표해서 한양대학교병원을 찾았다. 왕십리에 위치한 한양대학교병원은 1972년 동양 최대 규모로 개원하였으며 ‘사랑의 실천’을 이념으로 한다. 지금부터 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는 한양대학교병원 약제부 곽혜영 팀장님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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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병원약사가 된 계기, 병원약사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졸업한 1984년 당시에는 대부분 관리약사로 가거나 개국을 하는 추세였어요. 아버지께서 위암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암 투병생활을 보게 되면서, 환자 질병 치료에 우선하는 곳이 병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졸업 후 처음에는 100병상 이내의 작은 병원에서 7~8개월 정도 근무를 했어요. 그때는 실무를 많이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고, 아무래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어서 대학병원으로 이직을 결심했죠. 그렇게 한양대학교병원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병원약사의 차별점은 약국이나 제약회사에서 경험해보기 힘든 다양한 질병군을 접할 수 있고, 치료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jpg 한양대학교병원 약제부에서의 주된 업무는 무엇인가요?

약제부 업무는 크게 조제 중심의 약국 업무, 환자 중심의 임상약제 업무, 팀 의료 중심의 병동약사 업무로 나눌 수가 있어요. 저는 근무한 지 30년이 넘어서 현재 약제부 팀장으로 약제부 업무를 총괄하면서 전체적인 조정·중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죠. 처음에는 조제 업무부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약제부 업무를 두루 해봤어요. 제가 경험한 시대에는 환자 중심의 약제 업무가 활발한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업무에 실제 투입되기보다는 환자 중심 약제 업무가 가능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협력해서 셋팅하는 역할을 함께 했었죠. 한양대학교병원에는 입원 환자의 약물을 조제하는 병동약국, 외래 환자의 약물을 주로 조제하는 외래약국, 주사 약물을 담당하는 주사약국, 임상시험 약물을 담당하고 있는 임상약국, 항암제 주사 조제를 맡고 있는 항암제 주사조제파트, 원내 신약 도입 등의 일을 하는 의약정보파트, 임상약동학 자문업무를 담당하는 CPCS (Clinical Pharmacokinetic Consultation Service)와 약물유해반응을 관리하는 ADR (Adverse Drug Reaction) 관련 파트, 경장영양이 불가능한 환자를 위한 TPN (Total Parenteral Nutrition)파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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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jpg 병원약사로서 느끼는 보람은 어떤 것이 있나요?

병원약사로서 활동한 30년 넘는 기간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게요. 전반부는 의약분업 이전의 시대였어요. 점심에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밀려들어 오는 환자들에게 조제, 투약, 복약지도를 했죠.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장기 환자들이 많은데 환자들이 점점 치료되어 가는 과정들을 직접 보면서 느낄 수 있었어요. 복약지도를 통해 환자를 격려함에 따라 복약 순응도가 나아지고 상태가 호전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었죠.

후반부에는 매니지먼트 위주의 업무로 바뀌었기 때문에 약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조,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죠. 특히 저는 의약분업을 거친 세대이기 때문에 분업을 기점으로 업무양상에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의약분업 시행에 대한 논의는 1993년에 본격화되어 2000년 8월에 본격 시행되었습니다). 분업 이전에는 99%가 조제 중심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여서 환자에게 맞춘 조제와 투약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죠. 적은 인원의 약사들이 조제 중심의 노동 집약적 업무를 수행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분업 이후에는 환자 맞춤의 항암제 mix나 TPN 조제 같은 임상 업무들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분업 이전에는 TPN 개념이 거의 없고, 제약사에서 만들어진 완제품을 중심으로 사용했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개별 의료 전문 직종이 팀을 만들어 각각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공동으로 의료를 행할 수 있는 팀 의료가 강조되기 시작했어요. 팀 의료라는 게 일종의 협업이기 때문에 서로가 생각하는 것들을 잘 조율해야 해요. 팀 의료가 가능할 수 있도록 의료진들과 함께 기본적인 준비와 교육을 이루어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미약하지만 보탬이 된 것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습니다.


4.jpg 병원약사로서 힘든 부분이 있을까요?

병원약국은 매일 24시간 운영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야간업무, 연장근무 같은 것들이 힘든 부분이죠. 간호사에게 3교대가 있다면 약사는 2교대가 있어요. 또 주 5일제가 되었어도 주말에는 격주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24시간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긴장된 업무이죠. 또 한 가지 제가 업무를 조정하고 셋팅하면서 느꼈던 점은 의료진, 간호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서로의 전문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런 부분을 잘 해결해 가는 것도 병원약사에게 필요한 부분이 되겠죠.


5.jpg 병원약사에게 필요한 마인드는 무엇일까요?

사명감과 열의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환자치료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고, 조제 중심의 업무에서 나아가 환자 중심의 더 나은 약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병치료의 핵심인 약물에 관해 전문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임상 업무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출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야 해요. 덧붙여, 우리가 하늘을 보고 살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듯이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6.jpg 병원약사의 문제점이 있다면요?

예전에 병원약사의 근속기간이 1~2년 정도로 길지 않았어요. 철새약사라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최근 맞벌이 시대, 싱글 시대, 고령화 시대로 가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근무연속기간이 4~5년까지 늘어났어요. 긍정적인 부분이죠. 그렇지만 안정적인 직장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타성에 젖는 부분들이 보이기도 해서 염려스럽기도 해요. 앞서 말했듯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시대적 흐름에 맞춘 전문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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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jpg 한양대학교병원에서는 다른 병원에 비해 임상이 어느 정도 시행되고 있나요?

현재 식약처에서 항암제 조제, TPN 조제 등 팀 의료에 해당하는 수가들이 계속 개발되어가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 특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약사 인력 수준이 안배되고 있지는 않아요. 때문에 현재 우리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임상 약제 업무로의 방향성은 분명히 알고 있어요. 앞날을 위해 약사들은 임상 약제 업무로의 전문적 역량을 갖춰 두어야죠.


8.jpg 한양대학교병원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한양대학교병원의 경우 최근 약사 이직률이 거의 0에 가까워요. 그만큼 근무환경이 좋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죠.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휴가를 모두 쓰도록 독려하고 있고, 돌아가면서 순번대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민주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가정을 가진 약사들에게 매력이 있죠.


9.jpg 병원약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과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초고령 사회에요. 만성, 중증 질환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은 다종, 다량의 약에 의존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약의 책임자로서 환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아야 해요. 예전에는 대증 요법 위주의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환자 맞춤 요법으로 나아가는 시대가 되었어요. 경제성, 효능, 안전성 이 세 가지를 모두 고려하면서 환자에게 맞는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겠죠. 삶이 연장된 것은 축복일 수 있지만, 질병과 함께 간다면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환자가 삶을 더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사명감과 열의를 갖고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 후

앞으로 병원약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물 책임자로서 사명감과 열의를 가질 것과 임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적인 역량을 갖출 것. 훗날 약사가 되어서도 이 두 가지를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곽혜영 팀장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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