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SI, 약물 분석 기술로 범인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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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약대 생활을 하며 졸업 후 약국이나 병원 취업뿐 아니라 다양한 진로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통해 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저처럼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의국 스토리 기자에 지원하였습니다. 평소 미국 수사드라마 CSI 시리즈나 ‘싸인’과 같은 드라마를 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숙명여대 약대 입학을 꿈꿀 당시부터 뵙고 싶었던 선배님이시자 초대 여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역임하신 정희선 원장님을 저의 첫 인터뷰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1. 34년간 국과수에 계셨는데, 그곳에서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일반적으로 국과수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부검입니다. 부검을 하는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인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도 사망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화두였습니다. 사인과 관련하여 약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독극물이나 약물이 관련이 있는지 밝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과수에는 범인을 잡기 위한 다양한 부서가 있는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최근에 가장 많이 발전한 부서는 ‘법유전학과’입니다. 떨어진 혈흔을 분석하면 특정인과 매치될 확률이 100억분의 1 정도인데 이를 통해 세계 인구 중 한 명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기술의 정확성을 더 높이려고 연구 중인데, 이를 통해 오차 없이 특정 인물을 찾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국과수에서는 특이하게 자연과학과 관련 없는 부서가 있습니다. 바로 ‘법심리학과(forensic psychology)’입니다. 이곳에서는 프로파일러, 거짓말탐지기, 최면 등과 관련된 파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 있으면서도 국과수에 꼭 필요한 부서인 ‘디지털 분석과(Digital forensic)’에서는 CCTV에 찍힌 범인을 찾거나 핸드폰 메시지를 보낸 기록을 모두 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약사들이 많이 갈 수 있는 곳은 ‘약독물과 및 마약분석과’입니다. 마약인지 아닌지, 혹은 마약을 먹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소변 또는 모발을 통해 밝힙니다. 그리고 음주 운전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곳도 있고, 범죄 사건의 경우 옷에서 떨어진 실오라기 같은 섬유나 접촉 시 묻은 화장품 등 미세 증거물(trace evidence)을 통해 범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Engineer 부서에서는 화재 또는 교통사고 발생 시 원인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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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학대학 졸업 후, 병원 및 약국, 제약회사 등 진로에 다양한 길이 있으셨을 텐데 국과수를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우연히 대학교 3학년 때 국과수 소장님께서 강연을 오셨는데 너무너무 재밌었습니다. 약학대학 졸업 후 대부분의 친구들은 약국에 갔는데, 국과수에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약국을 많이 가고, 일반적으로 국과수라고 하면 부검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험하다고 생각하여 거의 지원을 하지 않는 추세였지요. 예를 들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해당 물질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의 핵심 독극물로 알려진 VX에 대해서 법과학 전문가들이 찾아낸 것을 보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물질을 찾아내기는 쉽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찾아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국과수는 미지의 물질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험한 길이지만, 무언가를 밝혀냈을 때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보람을 느낍니다. 더불어 발견해 낸 단서로 범인을 잡을 수도 있으니 사회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공무원이다 보니 월급이 적어 경제적인 면에서는 다른 직업에 비해 부족하지만, 사람마다 가는 길이 다른 것이고, 이 다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국과수로 오는 것입니다. 저는 국과수로 진로를 선택해서 후회한 적이 없고 딸도 국과수에 보내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매우 많습니다.


3. 약학 전공자들이 약독물 및 마약분석 부서로 많이 간다고 하셨는데, 국과수에서 약학 전공 출신만이 가지는 강점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약학대학 출신은 국과수에서 아주 큰 강점이 있습니다. 약에 대한 화학구조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분석하는 기술과 약물의 약리작용을 모두 배운 사람이 드뭅니다. 이런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자산이 되기 때문에 약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쉽게 적응하고 하는 일에 대한 능률이 높습니다.


4. 국과수에서 과학수사원이 되기 위한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과학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미지의 물질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운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집념이 필요합니다. 요즘 제가 좋아하는 ‘grit’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인내와 끈기, 열정이 합쳐진 의미인 이 ‘grit’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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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근 김정남 피살 사건이 국제적인 이슈입니다. 법과학을 전공하신 입장에서 독극물을 이용한 피살이나 화학무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지금 ‘국제법독성학회(TIAFT)’ 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런 사건이 발생하니 독극물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고 이것들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우려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러시아에서 영사가 독침을 맞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검 결과 ‘네오스티그민’이라는 성분을 찾아내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찾고 나면 쉽지만 찾는 과정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한다면 독물학을 하는 사람들의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저 역시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전혀 몰랐지만, 1995년 옴진리교 신자들이 출근길 도쿄 지하철에 신경독 사린가스를 뿌린 사건이 국제적으로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신경독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았던 것입니다. 신경독인 사린은 G시리즈이고 VX는 V시리즈이라는 것을 알고, VX라는 성분이 이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를 밝히면서 피살 사건의 핵심 물질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이슈가 되는 것이 피해자는 죽었는데 왜 손에 독을 묻힌 용의자들은 죽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요점입니다. VX를 다 만들어 놓을 경우, 독성도 크고 운반과 저장이 어렵기 때문에, 무해한 두 물질을 만들어 특정 상황에서 물질들이 부딪혀 반응을 일으켜 작용을 일으키게 되도록 개발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한다니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현재 계시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시나요?


저는 현재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입니다. 이곳은 NMR, GC/MS, LC/MS 같은 장비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핸드폰을 사용할 때도 보면, 100가지 기능 중 실질적으로 쓰는 기능은 10가지 정도인 것처럼, 어떻게 해야 모든 기능을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을지 연구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장비들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몇억씩 들여서 수입해 오는데, 장비의 모든 기능을 제대로 쓰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를 졸업한 학생들이 각 연구소에 취직했을 때 해당 장비에서 모든 기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이곳을 거쳐 간 학생들은 좋은 연구 성과를 거두는데, 그냥 대학원과는 달리 1학년 때부터 여러 장비에 대해 배우고, 이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7. 2017년 2월 초 ‘한국&오스트리아 과학수사분석기술 심포지엄’ 개최의 주역이셨는데 어떤 심포지엄인가요?


세월호 유병언 사건처럼 사람이 언제 죽었는지 ‘사후 경과시간’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분야의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약합니다. 오스트리아와 함께 한 이유는 제가 UN 회의 차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을 때, 근처 도시인 잘츠부르크로 친한 독성학 연구원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때 그곳의 연구소 소장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마침 제가 관심이 있던 사후 경과시간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부부가 모두 사망한 사건에서 여자는 토막살인을 당하고 남편은 무거운 물건에 매달려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는데, 부인과 남편의 사망시간 차이가 이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소장님께서는 단백질을 분석하여 사망시간 차이를 알아내게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오스트리아는 이 분야의 연구가 많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국과수, 충남대, 오스트리아 연구소 세 곳이 MOU를 맺어 심포지엄을 추진했습니다. 제가 관심 있던 연구였는데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8. 우리나라 분석 과학기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는 장비를 사용하는 부분은 많이 발전했는데, 이에 비해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초보다는 더 fancy한 부분에만 집중하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기초가 확실히 잡히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기초과학을 중시하는 태도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면상으로는 외국하고 비교했을 때, 뒤처질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분석 기술은 많이 발전했습니다.


9. 앞으로의 원장님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제가 지금 대학에서 진행하는 연구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앞에서 말씀드린 ‘사후 경과시간’ 연구인데, 기회가 되었을 때 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놓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김정남 사건처럼 병원에 환자가 왔을 때 응급실에서 약물이나 중독 물질을 검출해주는 시스템이 아직 없는데 그런 검출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여기까지는 대학에서의 계획이고 최종적으로 꼭 하고 싶은 것은 과학수사박물관 만들기입니다. 학생들에게 과학이 좀 쉽다는 것을 알려주고, 흥미로운 과학수사를 보여주며, 일반인들도 쉽게 과학을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10. 마지막으로 국과수나 과학수사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일단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국과수에 오려면 끈기, grit, 지치지 않는 힘, 힘들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과수도 똑같은 사회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어느 사회나 요구하는 창의성, 전문성, 도전 정신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하면서 본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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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


때마침 김정남 사건이 터져 여러 언론사에서 원장님께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시기였지만, 운 좋게 사전에 약속을 잡아 국과수를 비롯한 현재 상황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약학대학 출신이 국과수에서 펼칠 수 있는 직능이 다양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정희선 원장님께서도 약대 재학 중 국과수 원장님의 강연을 통해 진로를 결정한 것처럼, 전국에 있는 많은 약대생들이 저의 기사를 보고 국과수에서 일하는 것을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바쁘신 와중에도 선뜻 KMCRIC 의국 스토리 학생 기자의 요청에 응해주신 정희선 원장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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