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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에서 연구년 기간 동안 시드니 체류기를 써 달라고 몇 번을 재촉했는지 모른다. 연구 이야기야 워낙 좁고 지루하고 전문적이고 또 해당 분야 종사자가 아닌 이가 읽기에는 좀처럼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없을 테고, 그냥 시시콜콜한 일상생활에 관한 체류기를 작성하자니 내 할 일은 아닌 것 같은지라 무언가 내키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이리 피하고 저리 빠져나가길 반복하다가 집요하기 짝이 없는 센터 실장님의 압박에 결국 무릎을 꿇고 - 털썩 - 자리를 잡고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의 서열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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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2016년 여름부터 1년간 연구년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호주 시드니에 있는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UTS)에서 방문 교수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교수로 임용된 지 11년 반 만에 처음 연구년을 가게 되어 그동안 낡은 지식으로 채워진 머리를 비우고 올 수 있는 기회라고 - 새로운 지식으로 채우는 것까지는 1년 안에 너무 힘들 테니 비우고 앞으로 어떤 것들로 채워 나가야 할지 알아보는 데에 방점을 찍음 - 나름 기대를 하고 출국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다니 원하지 않더라도, 또 힘겹게 버티더라도 결국은 세월에 떠밀려 나갈 수밖에.


내가 근무한 곳은 Jon Adams 교수님이 센터장으로 계신 UTS의 Faculty of Health, 즉 보건의료학과 내에 있는 Australian Research Centre in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Medicine (ARCCIM, ‘아큼’으로 읽는다)이다. ARCCIM은 공중 보건(Public health), 의료 서비스 연구(Health service research)에 중점을 두어 보완대체의학을 연구하는 기관으로는 세계 유일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방법론 연구자(Methodologist)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전일제 근무하는 교수급, 연구교수급 연구자들이 7명가량 있으며 학부 강의는 거의 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다. 따라서 한 해에 출판되는 논문 수나 수행하는 과제는 많은 편이다. 2016년 센터 연감에 따르면 현재까지 108억 원 가까운 연구비 수주를 했고 그중 2016년에 새로 수주한 연구비 액수는 약 10억 1천만 원에 이르며 동료심사 학회지(Peer-reviewed journal)에 실린 논문은 2015년 한 해 90편, 2016년 한 해 39편에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몰두해 있었던 무작위배정 비교 임상연구나 체계적 문헌고찰/메타 분석을 떠나 그 외의 다양한 임상연구들의 방법론과 현황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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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ARCCIM에서 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일했던 주제는 의원 기반 연구망(Practice-based research network, 이하 PBRN)이다. PBRN은 간단히 말하자면 주로 일차 의료 분야에서 종사하는 개원의들이 일차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질문들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이에 대한 답을 연구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로 삼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근거를 일차 의료에 활용하기 어렵다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즉 연구를 위한 연구에서 나오는 결과 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 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고, 연구자와 임상의 사이의 협력을 활성화해서 임상의에게 유용하고 진료에 보다 쉽게 흡수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PBRN에서는 실제 임상의들에게 필요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 엄격한 연구 방법을 따르되 단순한 효과나 안전성 문제를 뛰어 넘어 더욱 다양한 범주의 연구질문들에 답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미 많이 활성화가 되어 있고, 보완대체의학 분야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ARCCIM이 있다는 것이 내가 파악한 이 분야 현황이다.


우리 한의계에도 PBRN이 조직되어 개원의들이 연구 질문을 던지고 연구자들과 협력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거를 생산해내고 이를 통해 진료의 질이 향상되면 그 혜택이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다시 임상현장에서 연구 질문이 생성되고 이에 답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보다 희망한다. 의원기반연구망 연구. PBRN.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뜻이 있으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같이 길을 만들 수 있겠지. ARCCIM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로 했으니 믿는 구석도 있고.


PBRN은 PBRN으로 말하면 될 테고. 다시 체류기로 돌아와서. 도대체 시드니 체류기라 하면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정보가 부족한 시대도 아니고 고작 일 년 거주한 내가 알긴 뭘 알겠나 싶어 - 내가 이래서 체류기를 안 쓰고 버티고 있었던 거였어! - 하지만 실장님 무서워서 아래에서는 그저 수박 겉핥기로, 단편적인, 쓸데없는, 하지만 아직 귀국한 지 두 달인지라 머리에는 생생히 남아 있는 기억들을 두서없이 적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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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국가 하나가 대륙 하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77배 정도 된다는데 인구로 보면 우리가 5천만이 넘고 호주는 2400만가량 된다. 그럼 1km2면적 당 호주에 3명이 산다면 우리나라는 같은 단위 면적에 500명쯤 사는 셈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 건물 내에서 대학원생 한 명에게 주어지는 책상과 공간도 넉넉하고 학부생들도 휴게실이나 강의실이 여유가 있어서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런 공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하였던 것 같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좁은 데에 옹기종기 붙어살면서 받는 기본적인 스트레스 수준이 호주인보다 한국인에게서 더 높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무튼 그 넓은 땅이 행정상 6개 주, 2개 준주로 나뉘어 있고 시드니는 호주의 동남쪽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NSW) 주의 주도로 서울 면적의 약 20배라고 한다. 시드니에 온 관광객들이 꼭 가는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나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같은 곳들은 시드니의 아주 아주 작은 점에나 해당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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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도착해 호텔에 머물면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새삼 깨달았던 사실은 남반구인지라 우리나라 남향집 같은 집을 구하려면 북향집을 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춥다. 대개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은 비싸고 남향이라 해가 안 들어서 더 춥다. 호주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란 없다.


처음에 우리가 알아본 지역은 채스우드(Chatswood)라는 곳이었는데 이유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있어서 아이들 등하교 픽업이 수월하다는 점. 게다가 한인이 많아서 여러모로 살기도 편하고 나의 출퇴근도 기차 한 번으로 된다는 점. 그런데 우리는 그 편한 채스우드를 마다하고 왜 굳이 아시아인들이 드문 모스만(Mosman)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아마 채스우드는 강남역이나 삼성역같이 고층 주상 복합 건물들이 많고 중국인들도 너무 많아 여기가 홍콩인가 싶어서 고작 일 년인데 우리 기준에서 호주에 사는 것 같이 느낄 수 있는 데를 찾아보자 하다가 결국 모스만으로 들어가게 된 것 같다. 모스만은 시드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발모랄 해변(Balmoral beach)이 가깝고 노쓰 헤드(North head), 미들 헤드(Middle head), 맨리 해변(Manly beach) 등에 접근성이 좋은, 그야말로 시드니스러운 곳이기는 하다. 공립중학교 체육 시간에 발모랄 해변 바다에서 카약(Kayaking) 수업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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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점이 있었겠지만 한인들이 많은 채스우드에 집을 구했다면 아이들이 영어 때문에 친구 사귀기 어려웠던 게 좀 덜했을까. 아님 말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 커뮤니티에 섞여 살면서 이것 저것 신경쓰느라 내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더 받았을까. 아님 좋은 인연들을 만나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낼까. 백인만 가득한 모스만 지역으로 들어갔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어떤 의미가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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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나처럼 연구년으로 입국하는 교수에게는 temporary work 비자에서 training and research (subclass 402) 비자를 발급하는데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이 비자에 동반된 자녀들이 공립학교에 다니려면 학비의 절반을 내야 한다. 이 금액이 2017년 기준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공히 일 인당 일 년에 AUD 5,110. 따라서 우리는 두 명이니 일 년간 AUD 10,220를 낸 셈. 뉴사우스웨일즈 주와는 달리 부모가 402 비자 소지자여도 학비가 공짜인 주도 있긴 하다.


호주 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이고, 중고등학교는 middle school 없이 high school 하나로 되어 있고 7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가 한 학년 과정이고 1년이 4학기로 되어 있어 10주가 한 학기이고 학기 사이마다 2주 방학이 있는데 여름방학 즉 12월에만 6주 정도로 길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각 한 명씩 시드니의 공립학교를 보내고 또다시 귀국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복학시키고 나서 느끼는 차이 중에 큰 것은 중학교 수행평가에 관한 것이었다. 시드니 공립 중학교에서 과목별 평가 방식은 시험도 물론 있지만 수행평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학년 초에 과목마다 무엇을 배우고, 어떤 수행평가를 어떤 기준으로 시행하고, 얼마만큼의 비율로 전체 점수에 반영할지 등 아주 세세하게 안내 책자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 대해 배우는 역사 과목에서 주어진 리포트 중 하나는 학생이 고대 이집트를 여행하는 여행자라고 가정하고 자신이 방문한 유적들과 먹은 음식, 고대 이집트인들과 나눈 대화 등 생활상을 소설처럼 써서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의 유적이 어떤 의미가 있고 그들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고, 어떤 문화를 누렸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에 바탕해서 작성할 수 있는 통합적인 성격의 리포트여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리포트에 대한 평가 기준이 아주 세세하게 이미 학년 초에 나와 있기 때문에 체크리스트처럼 각 항목들을 잘 반영해서 쓰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제출한 리포트를 돌려받을 때에는 제시되었던 평가 기준에서 어떤 항목들을 충족시켰고 어떤 항목들이 부족했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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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해서 중학교 복학을 하고 나서 보니 내일모레 있을 수행평가 공지가 오늘 나온다거나 어떤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지 아예 몰라서 도대체 대비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몇 번 겪으니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을 다양하게 평가하고 창의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하려면 암기력을 묻는 시험 같은 형식보다는 스스로 재미를 느끼며 잘 준비해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수행평가 쪽을 늘려나가는 방향이 맞다고들 하고 내 생각에도 좋은 것 같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나라는 미리 공지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갑자기 나오면 더더욱 어른들이 개입해서 결국 공정한 수행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숙제나 평가를 어른들이 도와주면 어쩌면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최근 고3 아이를 둔 동료 교수님을 보니 그분이 대학을 다시 가시는 것 같이 힘들어하시는데 안타까우면서도 내가 너무 뭘 모르고 비현실적, 이상적인 생각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혼란스럽다.


아무튼 중학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모든 과목을 평가하고 연말에는 학교 전체 행사로 presentation night이라는 것을 한다. 각 반에서 각 과목의 1등은 상장을 주고 또 해당하는 학생의 부모님들은 여기에 초대받아 자랑스럽게 참석하는 행사이다. 예를 들면 7학년 8반 기술 1등, 8학년 2반 체육 1등도 다 상을 받는다. 전 과목에 대해서 각 반 1등마다 상을 주다니 영어, 수학 잘 하는 게 최고고 다른 과목은 신경도 안 쓰는 시대에 교육받은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글쎄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여전히 영어, 수학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니 티 안 나는 미술 1등, 가정 1등 이런 아이들에게 나라도 칭찬하며 상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호주 학교가 우리나라 학교와 다르다고 느낀 점 중 하나는 자율적인 학부모회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자선행사 및 모금을 하고 그 수익은 학교의 환경을 개선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는 데에 다시 쓰이는 선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남을 돕기 위해 마라톤을 뛰고 학교 운동장 잔디를 다시 깔기 위해 다들 머핀을 구워 파는 등 이런 일들이 일년 내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연스레 나눔과 이를 위한 행동이 몸에 배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자란 호주 어른들이 다 마냥 선하기만 한 건 아니다.) 학원에서 배우는 지식을 통해서 보다는 오히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은 시민사회의 좋은 일원이 되는 방법을 자연스레 배우고 체득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여러모로 많이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물론 방학 기간에는 학교에 정말 아무도 없고 전학과 입학 등 모든 행정 처리는 학기가 시작한 다음에야 비로소 느릿느릿 이루어진다거나 - 호주에 입국해서 집을 구해 주소지가 생기자마자 방학 때 모든 서류 처리를 끝내고 학기 시작하는 첫날부터 등교시키고자 한 야심 찬 계획은 호주 학교 시스템에 무지한 나의 희망 사항이었다. 아무리 교무실로 전화를 해도 이메일을 해도 묵묵부답. 개학하는 첫날 아침 부랴부랴 학교에 갔더니 이제 개학해서 다른 것도 바쁜데 전학생쯤이야 천천히 수속을 밟으면 되지 뭐 그리 기를 쓰고 애를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보내려고 하냐는 듯한 따가운 눈총마저 느꼈다. - 담임선생님이 학기를 마치기 전에 휴가를 3주나 떠나 버리신다거나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 많았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학기 중에 휴가를 가다니! 내가 외국에 있기는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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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올봄 특히 미세먼지가 극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던데 우리 가족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주의 환경을 누릴 수 있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호주는 땅덩어리가 큰 만큼 지역마다 환경이 천양지차로 특색이 있고 또 관광지 어딜 가든 줄을 길게 늘어서서 봐야 하거나 쓰레기가 넘쳐난다거나 이런 일이 아예 없다. (나의 경험상 그랬다는 것이지 물론 호주 모든 관광지가 그렇다고는 말 못한다. 다만 줄 서는 경우는 맛집만 예외다.) 특징적인 것들을 몇 가지 아래에 적어보겠다.


유칼립투스 나무. 호주에만 굉장히 흔한 나무 종류인데 궁금한 것은 구글링해 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겠지만 나의 기억에는 오롯이 전봇대로 남아 있다. 많은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검트리(Gum tree)라고도 불리우며 - 사실 유칼립투스 나무와 검트리는 관련이 있는 종류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하더라만 -  껍질이 벗겨지고 푸르죽죽한 굵은 기둥만 남은 나무들은 물에도 썩지 않고 꽤 단단한지 호주의 거의 전역에서 전봇대로 쓰는 듯하다. 그래서 전봇대들이 다 푸르다! 시드니에 온 단체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가는 블루마운틴 국립공원(Blue mountains national park)은 멀리서 보면 푸른색으로 보이는데 유칼립투스 나무들로 뒤덮여 있어 푸르게 보이기 때문에 블루마운틴이라고 이름이 붙었다던데 실제 가서 보니 내 보기에는 그냥 네이밍(Naming)의 승리다. 여하튼 유칼립투스 나무가 천지이다 보니 유칼립투스 오일, 사탕, 크림, 차(Tea) 등 거의 모든 제품들에 이 나무 추출물이 들어간다. 유칼립투스의 쓰임새와 다른 약물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 검색창에 유칼립투스를 넣어보기 바란다는 깨알 홍보를 하고. 바로가기 클릭


호주에만 산다고 알려진 코알라는 캥거루처럼 유대류(有袋類, Marsupial), 즉 주머니(Pouch)에 새끼를 넣어 다니는 동물인데 이 코알라가 거의 오로지 먹는 것이 유칼립투스 나뭇잎이다. 알콜 성분이 많다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먹어서 늘 만취 상태인 건지 이 동물은 도대체 깨어 있는 상태일 때 만나기가 쉽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한 운이 따라주어야 가능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칼립투스 나뭇잎에서 얻는 칼로리가 극히 적기 때문에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 아무리 먹어봤자 나뭇잎인데 배고프겠지. 취해서인지 칼로리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선지 하여튼 하루에 한 20시간은 나무 위에서 잠만 잔다고 하니 - 나머지 네 시간은 또 먹느라 소진 - 운이 좋아야 움직이는 모습을 만나고 사진도 찍는 것이 가능한 게 맞다. 한 번은 여행을 다니다 사람들이 길에 차를 세우고 웅성웅성 모여 있는 걸 보고 우리도 차를 세우고 내려서 나무를 올려다본 적이 있었다. 고맙게도 잠에서 깨서 움직이는 야생 코알라였다. Oh, my god. It’s m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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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호주에는 다른 대륙과 달리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유대류 동물들이 특히 많은 듯. Marsupial이라는 영어 단어를 내가 호주에 가지 않고 알 수 있었을까. Homo Sapiens 책에 나오기는 했구나. 아무튼 캥거루, 캥거루랑 비슷한데 몸집이 더 작은 왈라비(Wallabies), 코알라, 주머니쥐로 알고 있던 포썸(Possums), 작은 곰같이 귀여운 웜뱃(Wombats), 타즈마니아 데빌(Tasmanian devils) 등이 모두 신기한 유대류에 속한다. 뭐니 뭐니 해도 유대류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은 캥거루일 터. 시드니 골프장들에서는 캥거루가 퍼팅을 잘 하는지 감시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골프장에 캥거루들이 많은 것은 사실. 시드니 근교 모리셋(Morisset)이라는 곳에 정신병원이 하나 있는데 여기 병원 뒤 숲에 야생 캥거루들이 말 그대로 수백 마리 떼 지어 살고 있어 사람들이 당근을 썰어가서 캥거루에게 먹이로 주고 만져 보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고 그런 곳이 있다. 왈라비가 대부분이기는 하다. 그냥 캥거루로 퉁치자. 우리 가족은 처음 갔을 때 너무 많은 캥거루들과 접촉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어 귀국 직전에 아쉬워서 한 번 더 찾아갔었는데 - 이번에는 두 번째라 당근을 정말 많이 가져갔다 - 무슨 일인지 캥거루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 많던 캥거루는 누가 다 먹… 어디로 다 사라졌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당근을 잔뜩 들고 와서 망연자실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 구글 검색을 해 봐도 없다. 아쉬웠다. 덕분에 캥거루 주려던 그 많은 당근을 버릴 수는 없고 귀국 전에 다 먹고 오느라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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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탁 트이고 넓은 곳에서 (캥거루와) 뛰어노는 게 일인 아이들은 어쩌면 안경이 필요 없는 게 당연할 것 같다. 시드니에서는 중고생도 안경 쓰는 애들이 드문 것을 보면 야외에서 많이 뛰어노는 것과 근시 유병률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은가 라는 추측을 해 본다. 아시아 학생들이 근시가 더 많다는 연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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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는 다문화 국제도시, 특히 음식 면에서는 정말 여러 나라 음식들이 포진해 있다. 아마도 제일 인기가 있는 것은 태국 음식일 듯. 약간 과장해서 타이식당이 한 집 건너 하나일 정도로 흔하고 흔하다. 그리고 중식, 일식, 베트남식, 레바논식 등 너무나 다양하다. 시드니는 한인 타운도 규모가 있고 한인이 많은 만큼 한식당도 많다. 시드니의 중국 사람들이 특히 한식당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시드니의 한식은 여타 외국의 한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한식이 거의 대부분 그러하듯이 마법의(M) 설탕(S) 가루(G)가 다량 함유된 식당 음식이 대부분이다. 불행히도 우리 집 아들들은 모두 빵을 싫어하는 밥돌이들인지라 이렇게 다양한 여러 나라 음식을 섭렵할 기회를 놓치고 요리도 잘 못하는 내가 하는 집밥만 먹거나 혹은 어쩌다 외식을 해도 거의 한식당만 가게 되어 마법의 설탕 가루를 다량 섭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잠들 수밖에 없었던 점이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MSG의 수면 어택은 초강력.


처음에 잘 모르다가 많은 한식당들을 다니며 어렴풋이 느낀 점은 한식당은 한국임을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시그니처(?)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식당은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아 내가 중국식당에 와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중국스러운 특징이 있고 일식당도 일본 특유의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있는 반면 적어도 시드니의 한식당은 그런 통일된 내지는 상징적인 어떤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일식과 중식 메뉴가 애매하게 섞여 있는 한식당이 대부분. 심지어 우리 동네 근처의 한식당은 이름이 코리안 사무라이! 아마추어적인 생각이지만 한식의 세계화는 결국 외국에서 장사하고 있는 한식당이 잘 나가도록 지원하는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태극 부채라도 벽에 걸어두어 여기가 한식당임을 알 수 있게. 아니면 현지의 한식당 요리사들을 체계적으로 재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냥 혼자 해 보았다. 현지인들이 한식을 즐기게 되고 자꾸 찾게 만드는 게 한식의 세계화가 아닌가 싶어서. 암튼 촌스러운 입맛을 가진 아들들 덕에 일 년간 MSG 듬뿍~ 김치찌개 원 없이 먹었다. 


호주식 음식은 뭐가 있냐고 몇몇 호주인들에게 물어봤지만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영 시원치 않다. 호주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미트 파이(Meat pie)라는 것은 후추투성이 고기 양념이 영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고 요리가 형편없다고 세계적으로 공히 욕먹는 영국인들이 많이 먹는 미트 파이 버전인 - 영국인들이 먹던 게 호주로 들어간 거겠지 - 셰퍼드 파이(Shepherd’s pie, 양고기 들어감)나 코티지 파이(Cottage pie, 쇠고기 들어감)만도 못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


하지만 파이 중에서 호주 남동부 해안가를 따라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The Great Ocean Road)에 있는 동네 중 아폴로 베이(Apollo bay)라는 데가 있는데 그곳에서 유명한 가리비 파이(Scallop pie)는 정말 누군가 들여와서 서울에서 장사를 해 주면 꼭 다시 가겠다 싶을 정도로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호주 음식이라고는 결국 다문화, 다국적 음식의 향연이 될 텐데 굳이 내가 애써 찾은 특징이라면 모든 음식에 감자튀김(Chips)을 산더미같이 곁들여 먹는다는 점! Fish and chips, burger and chips, spaghetti and chips, steak and chips, everything with chips! 호주인들이 아침마다 빵에 발라 먹는다는 베지마이트(Vegemite)는 개인적으로 몸서리쳐진다.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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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푸념해서 미안하니까 좋은 점도 하나 말해 보자. 호주 땅이 워낙 넓고 다양한 기후대에 분포하다 보니 사계절 과일이나 야채가 너무나 다양하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 열대 과일부터 추운 데서 나는 과일까지 동시에 한자리에 모여 있는데 다 국내산 과일인 셈. 15년 전 영국에 있을 때 영국인들이 감자와 고기만 먹던 것에 경악했는데 호주인들은 그에 비하면 야채와 과일, 견과류 등을 훨씬 많이 먹는 듯. 영국인들의 식생활은 지금은 좀 나아졌을지 궁금하다.


시드니처럼 바다에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해산물의 종류가 제한적이고 가격도 비싸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시드니에 가시는 분은 알아두셔야 할 것 같다. 기껏해야 피쉬앤칩스나 연어라니. 타즈마니아 정도까지 가야 생연어를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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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는데 실장님 마음에 들런 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안 들어도 할 수 없다. 미안합니다… 그러게 왜…


혹시 시드니에 갈 예정이 있는 분들에게는 관광객들이 으레 가는 지역 이외에도 한두 군데 다른 곳을 들러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예를 들면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 대신에 발모랄 해변(Balmoral beach)이나 맨리 해변(Manly beach). 이런 식으로.


언제 또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시드니의 맑은 공기와 높은 하늘, 친절히 대해 주었던 ARCCIM 동료들, 가족과 더불어 심적으로 여유 있던 생활과 여행의 추억은 앞으로의 쳇바퀴처럼 돌아갈 나날들에 - 이미 멀미 날 정도로 어지럽게 돌고 있다 - 오랫동안 든든한 기억으로 버팀목이 되어줄 듯하다. 내가 없어도 우리 센터에는 당연히 별일 없었지만 그래도 일 년 동안 맘고생 많이 하며 별일 없도록 - 왜 별일이 없었겠는가 - 든든하게 버텨준 센터 연구원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지원해 주신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올린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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