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문사친

6년 전쯤인가요? 사부이자 사형이신 전창선 선생님께 汗吐下 三攻法과 仲景 《傷寒論》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自然 그 자체인 몸이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汗吐下라는 방법을 통해 恒常性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질병 상태에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自淨 능력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인체의 생리·병리적인 汗吐下 과정을 의학적으로 질병 치료에 이용했던 것이 仲景 傷寒論 등장 이전의 한의학 치료법인 汗吐下 三攻法입니다.(이를 ‘原始 三攻法’이라고 합니다.)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仲景 傷寒論이 汗吐下 三法을 충실히 구현한 책이란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의 시간을 통해서 仲景 傷寒論의 저변에 흐르는 학문 기조가 傷寒이란 질병에 대한 原始 三攻法의 폐해를 해결하려고 만들어진 ‘和法’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後世方’이라는 처방에 비해 그 처방의 목적성과 힘이 뚜렷한 仲景을 위시로 한 ‘古方’마저 ‘조화하는 방법(和法)’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仲景 傷寒論과 구별되는 原始 三攻法은 얼마나 큰 힘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다행히 그 강의 내용이 2017년 초에 肥瘦論(전창선 저, 와이겔리)이란 책으로 출판되었으니, 읽어보면서 해답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부끄러운 말일 수 있지만, 평소에 존경하고 좋아했던 선생님의 말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무작정의 믿음으로 原始 三攻法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감수, 파두, 과체를 이용한 三攻法을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과체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구토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과체도 부지기수였고, 그때마다 약재실에 연락해서 반품을 종용했던 일들도 많았습니다. 좋은 과체를 구했더라도 용량을 얼마나 써야 할지도 문제였습니다. 제 스스로 직접 약들을 복용하면서 밤새 구토와 복통, 설사 때문에 화장실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던 날들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原始 三攻法을 치료에 사용하기 시작했던 처음 1년 동안은 삼공법의 막강한 위력(?)에 시달렸던 환자분들의 전화를 받고 응대하는 일에 진료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原始 三攻法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만 있었다면, 과연 6년이란 시간 동안 이 치료법을 쓸 수 있었을까요? 原始 三攻法을 알기 전의 치료율에 비해 그것을 쓴 이후에 경험한 치료 효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지금은 ‘原始 三攻法을 쓰기 전에 도대체 어떻게 환자를 치료했지?’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三攻法을 쓰기 위해 환자 분들을 설득(?)하는 노력과 시간은 그 결과를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原始 三攻法의 치료 매력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전창선 선생님께서 “안 교수! 儒門事親을 번역해 보면 어떻겠는가? 좀 편하게 읽고 싶은데?”란 말을 하셨고, 이 한 마디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傷寒論의 등장으로 한의학 치료의 주류 개념이 된 ‘和法’에 가려져 한의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던 原始 三攻法은 張子和의 儒門事親을 통해 다시 한 번 재조명됩니다. 東醫寶鑑에서도 72개 조문에서 子和의 醫論이 등장하니 말이지요. 儒門事親은 원래 하나의 책이 아니라, 子和의 저작 10여종을 그와 함께 醫理를 논했던 門人 麻知幾, 常仲明 등이 한 권의 책으로 編成한 것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책은 모두 10종 15卷인데, 그 중 子和의 自撰은 卷1, 卷2, 卷3으로 ‘儒門事親’이란 書名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몇 개 저작들이 수집되어 각권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책이 子和의 학술 사상과 임상 경험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저작이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 張子和 선생은 자신의 임상 경험을 근거로 汗吐下 三法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부단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후세에 전하고 있는 확실한 메시지는 汗吐下 三法을 통해서 환자가 잘 나았다는 사실입니다. ‘금원사대가’란 통속적인 분류에 속하는 한 명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그런 사실을 전달했다는 의미만으로도 이 책은 한의학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번역 과정은 실제로 三攻法을 쓰고 있는 제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책을 번역하려면 적어도 10번 이상은 그 原書를 읽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제가 6년 동안 原始 三攻法을 쓰면서 치료 과정 중에 겪었던 의문점들이 상당 부분 해결되었고, 앞으로 原始 三攻法을 현대 사회에 맞게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의학 이론이 참 많아졌습니다. 동일한 상한, 금궤를 공부하는 분들도 각각의 시각으로 설명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 儒門事親은 현상에 대한 관념적 실재에 반대하여 가장 단순한 설명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한의학 서적 중에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가장 단순한 치료 방법인 三攻法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치료 결과를 도출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 작업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한미의학 서영주 선생님과 張子和 관련 자료를 성실히 수집해 준 유정화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7년 9월

안영민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