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병과 함께 춤을

세상 그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얻지 않기를


“건강 약자들에게 구원의 책이며 여성 공동체의 의미와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저자)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질병 경험을 담은 책 《질병과 함께 춤을》(푸른숲 刊)이 출간되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쓴 조한진희 작가가 엮은 이 책은 각자 다른 질병을 가진 여성 4명이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고유한 삶을 온몸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로, 건강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해온 분투기다. 《질병과 함께 춤을》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와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질병과 함께 춤을’이란 이름으로 연재,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은 글들을 수정, 보완해 묶은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한 ‘다른몸들’은 2020년 아픈 몸들을 공개 모집해 제작한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 연극은 온오프라인 누적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 202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많은 화제를 낳았다.


자책감과 고립감으로 밤을 헤매던 이들을 위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이 몸으로 써내려간 이야기


누구나 조금씩은 아프다. 무리하면 입술에 염증이 생기거나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위가 자주 쓰리기도 하다. 소화불량은 일상이며, 과중한 업무와 장거리 출퇴근으로 거북목 증후군, 허리 디스크, 만성 피로를 달고 산다. 하지만 어딘가 아프다고 말하면 ‘몸 관리 좀 해라’ ‘운동 부족이다’ ‘잘 챙겨 먹어라’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등의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살면서 크고 작은 질병 하나쯤 안고 사는 것이 필연임에도 사회에서 ‘건강’하지 않은 몸은 부족하고 열등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만성질환이나 중증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특정 질병에 대한 편견, 사람들의 동정과 시선, ‘아픈 게 죄’라는 자책감 등을 감내해야 한다. 질병의 끝은 언제나 ‘완치’이며 완치되지 않으면 ‘망한’ 인생이 된다. 그렇게 질병은 불행과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은 질병 극복기도, 질병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감동 수기도 아니다. 그동안 ‘절망’ 또는 ‘희망’으로 양분된 질병 서사의 경계를 가뿐히 무너뜨리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안도, 설렘과 긴장, 통증의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아픈 몸들의 연대기다. 각각 난소낭종, 조현병, 척수성근위축증, 류머티즘을 안고 사는 저자들은 몸속 혹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움(31쪽), 장거리 출퇴근과 만성피로(48쪽), ‘수치스러운’ 질병에 대한 성찰(67쪽), 10년 넘게 이어진 망상(95쪽), 평범한 일상을 사는 기쁨(113쪽), 가족과의 갈등과 화해(123쪽), 병명을 알기 위해 전국의 병원을 전전했던 어린 시절(155쪽), 통증을 줄이기 위한 루틴(163쪽), 노동에 대한 갈망(185쪽), 연민 또는 혐오의 시선(207쪽), 직장에서 증상을 설명해야 하는 고충(225쪽),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정보 불균형(234쪽) 등 아픈 몸이 통과해온 경험과 성찰의 기록을 통해 질병 이전과 이후의 삶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이 책은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책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누군가에게 조용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누구든 아플 수 있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아픈 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다면, 질병은 불행과 실패가 아닌, 함께 겪어나가는 일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아픈 몸 선언문〉에서 제안하듯, “잘 아플 권리가 보장되며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는 사회, 아픈 몸이 기본값인 사회, 질병이 수치와 낙인이 아닌 사회”를 기대해본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픔과 불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지금도 질병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면서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느낌이다. 질병 세계라는 공동체 안에 담길 수 있는 빗금처럼 반짝이는 관계들을 본다는 것은 눈물겨울 정도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약함이 힘이 될 수 있다고 어깨를 도닥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148쪽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