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CRIC 특별 강연] 장하준 교수

RSA ANIMATE: Economics is for Everyone!

장하준 교수의 모두를 위한 경제학 강의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경제학 강의를 영국 왕립 예술 협회(Royal Society for the encouragement of Arts ANIMATE)에서 에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한의학/약학 분야 연구자들에게도 도움되는 내용일 듯하여 소개합니다.


<강의 스크립트>


저는 경제학이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현상인데 사람들은 모든 일에 뚜렷한 주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 동성 결혼, 신은 존재하는지, 지구 온난화. 이런 주제에 대해 여러분은 뚜렷한 주관이 있습니다. 신학 학위를 갖고 있지도 않고, 에너지 경제학 학위를 받았거나 국제 관계학 학위가 있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경제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고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죠? 국제 관계학 학위가 없어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분명한 의견이 있다면 경제학 학위가 없더라도 정부 정책에 대한 분명한 의견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실제보다 훨씬 어려운 학문으로 느끼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본인이 설명은 해줄 수 있지만 여러분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경제학의 95%는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물론 전문용어나 수학 때문에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만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면 나머지 5%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무엇이고 경제학의 윤리적인 바탕은 무엇인지. 여러분이 경제학과 정치학을 분리해서 생각하는지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지게 됩니다.


가령 오늘날 시장 경제학이 애덤 스미스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애덤 스미스나 소위 고전 경제학파 학자들은 사회는 개인이 아니라 계급의 집합체라고 가정합니다. 이 학파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계급들이 자본 축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늘어난 소득은 어떻게 배분되는지 주로 연구합니다.


현대 시장 경제학에서는 개인만 존재합니다. 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낡은 마르크스 이론에서나 쓰는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왜 마케팅 회사들이 사람들을 계급으로 분류해서 마케팅 전략을 세울까요? 마케팅 회사들은 사람을 a, b, c, c1, c2 이렇게 분류하고 사람의 유형에 따라 타깃 광고를 합니다.


많은 경제학자가 경제학은 과학이고 한가지 이론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 주요 학파가 있고 상세하게 분류하면 숫자는 더 늘어납니다. 학파마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고, 시장주의 경제학에도 세 가지 다른 학파인 '고전학파', '신 고전학파', '오스트리아학파'가 있습니다. 유일한 정답은 없습니다.


경제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파의 이론을 알아야 하는데 저마다 가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윤리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경제 성장의 방법에 대해 각자 다른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싱가포르 문제를 예로 들겠습니다. 대단히 특이한 문제입니다.
월스트리트나 이코노미스트 같은 경제신문만 읽는다면 싱가포르가 성공한 이유가 자유무역정책과 외국인 투자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맞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얘기는 안 하던데 싱가포르 토지의 90%가 국가 소유이고 주택의 85%를 주택공사가 공급합니다. 그리고 국가 소득의 22%를 공기업이 생산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어떤 경제 이론이건 단독으로 '신 고전학파', '마르크스학파', '오스트리아학파', '슘페터학파'... 싱가포르를 설명할 수 있는 경제 이론이 있으면 얘기해보라고 합니다. 없어요. 다른 이론들도 알고 있어야 싱가포르의 성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조언하고 싶은 것은 망치를 쥔 사람처럼 한 가지 이론만 배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이론만 옳다고 확신하면 망치를 쥔 사람처럼 모든 것이 못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스위스 군용 칼이 필요합니다.


요즘 주류 경제 이론인 '신 고전학파'에서는 인간을 주로 소비자로 추상화하고 노동은 참고 견뎌야 하는 비용으로 간주하는데 노동을 해야 돈을 벌어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고 쾌락이나 효용을 얻습니다. 소비를 통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을 통해서 신체적, 정신적 보상뿐 아니라 정체성과 자존감을 얻고 자아실현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부유한 국가에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20년 전보다 늘어난 이유입니다. 소득이 높아졌는데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의 스트레스가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여러분이 행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국의 소득이 1975년보다 20%나 높아졌는데 왜 불행하냐는 겁니다.


저의 책은 단순한 경제 이론과 사실뿐 아니라 공공정책 분야에서 경제학의 역할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경제학자를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저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무엇이 옳은지 본인들이 알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 사람들이 결코 진리를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학에는 아홉 가지 학파가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옳은 결로이라는 것은 어떤 학파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여러분과 관련된 경제적 이슈에 대해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고 때로는 그 판단이 경제학자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삶에 더 근거하고 있고 시야가 편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학자나 전문가에게 맞설 수 있는 용기가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단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뿐이라면 민주주의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엘리트들끼리 자리를 차지하고 세계를 주무르면 되겠죠. 많은 사람들이 유럽연합에게 느끼는 불만이 이런 것입니다.


두 번째는 라틴어 격언인데 네덜란드에서 치즈로 유명한 고다의 시청 담벼락에 쓰여있는 문구입니다. 라틴어로 읽지는 않겠는데 다른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라는 얘기입니다. 경제에 관해 토론할 때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본인 의견을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세상의 복잡성과 모든 경제학파의 한계를 고려해서 여러분이 지지하는 이론의 한계에 대해 겸손함을 갖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저는 꾸준히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적 현실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이유가 분명할 때도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변화를 막기 위해서라면 로비, 뇌물 미디어 선동, 심지어 폭력까지 어떤 수단이든 동원합니다. 하지만 사악한 사람들이 없더라도 기존 체제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1원 1표가 기본 원칙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은 주어진 조건을 거부할 능력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는 신념을 갖기도 쉽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건강보험 제도 개혁을 추진할 때 연금생활자들이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면서 정부는 내 메디케어에 간섭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었습니다. 메디케어가 정부 프로그램인데 말이죠. 마르크스 주의에서 말하는 허위의식이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기존 경제 체제가 바뀌기 어렵다고 해서 더 나은 경제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변화는 분명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싸운다면 결국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도 실현됩니다. 200년 전에 여러분이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다면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듣거나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100년 전의 영국 정부는 투표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많은 여성이 실제로 남편과 남자 형제가 있는데 투표권이 왜 필요하냐고 얘기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를 인용하는 이유입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현상태를 바꾸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바뀐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끝으로, 넬슨 만델라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뤄지기 전에는 모든 일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