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지혁
[미국 통합의료연구소]

한국 한의학의 보건의료적 가치를 동시대적, 세계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혁신하고, 이와 관련하여 한의사들이 미래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의사 박지혁 프로필

Greatness, 위대함의 가치

 

미국의 경영사상가로 유명한 짐 콜린스는 ‘좋은 조직을 넘어 위대한 조직으로’를 내세우며 기업이나 비영리단체 등 모든 사회 조직에서 추구할 위대함의 가치를 강조해 왔습니다. 그에 따르면, 위대함이란 세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Superior Results’, 최상의 결과입니다. 기업에서는 최대의 이윤, 비영리단체에서는 사회적 미션의 달성, 스포츠 팀이라면 우승을 거머쥐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먼저 감탄하고 인정하게 되는 위대함의 조건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Distinctive Impact’, 독특한 영향력입니다. 이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거대한 규모가 바로 위대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위대한 것이 꼭 거대한 규모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역의 작은 레스토랑이라도 정말 독자적으로 특별한 곳이라서 만약 없어지면 그 어떤 레스토랑도 그곳을 대신할 수 없다면 위대한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Lasting Endurance’, 지속적인 유지력입니다. 위대한 조직은 긴 시간 동안 지속이 가능하며, 만약 난관이 닥치더라도 위기를 극복하고 이를 기회로 삼아 더욱 번영하고 진화합니다. 또한 한 사람의 특출한 최상위 지도자에 의지해서만 그 번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도자가 사라지더라도 조직 자체의 체계적인 힘으로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조직이 바로 위대한 조직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짐 콜린스는, 위대함이란 한번 달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계속 추구할 역동적인 과정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위대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평범함으로 미끄러진다는 것입니다. 위대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무궁무진한 잠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시대나 상황에 맞추어 이전과 다르게 계속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를 보는 진료의 현장에서 이러한 위대함의 가치를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요? 한의학의 보건의료적 가치를 실천하는 한의사의 진료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환자를 위한 최상의 결과는, 진료를 통해 환자의 병세가 확실히 나아짐은 물론 진료와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의 환자경험까지도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때를 말할 것입니다. 높은 치료율의 훌륭한 치료기술로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즉시 치료해낼 상황이 아니더라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진단을 내리거나 종합적인 치료계획하에 다른 적합한 의료인에게 보내는 것 역시 환자를 위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의학의 목표와 존재 의의는 환자를 더 좋게, 낫게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한의학도 그와 동일한 이유로 동아시아 및 한반도 지역에서 발달해 온 것입니다. 간혹 한의학의 이론적 깊이를 강조하기 위해 동양철학에 너무 현학적으로 경도되는 경우가 보이기도 하였지만, 의학으로서 한의학은 철학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당연히 환자의 치료가 가장 우선이며, 오랜 역사를 거쳐 방대한 치료경험이 누적된 지식의 보고라는 소중한 가치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클리브랜드 클리닉, 메이요 클리닉, 존스 홉킨스 병원 등 몇몇 선진적인 종합병원에서는 환자가 의사를 만나는 진료시간뿐 아니라 병원과 접하는 의료서비스 전반에서 느끼는 환자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디자인 경영의 지식을 접목하여 ‘환자경험’을 개선하는 데에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의 핵심가치는 ‘Patient First’이고, 메이요 클리닉의 핵심가치는 ‘The needs of patient come first’라는 데서도 그러한 의지를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의 한의원들의 경우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 철저한 경우를 많이 볼 수는 있으나, 환자경험의 혁신이란 단순한 친절응대 이상의 총체적인 편리함을 의료시스템에 기능적, 감성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경험은 현대의 한의 의료기관에서도 꼭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이며, 통합의료시스템에서는 환자중심적인 의료라는 특징하에 중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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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이러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한의사의 독자적인 특징은, 한의사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한의진료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전인적, 환자중심적, 자연친화적, 예방적 진료를 시행하는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한의학은 전인적인 관점으로 마음과 몸, 신체 구조와 생리적 기능의 연결을 항상 고려할 뿐 아니라, 질병명의 진단과 더불어 여러 가지 증상의 상관관계 패턴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변증평가를 치료 전략의 시작으로 합니다. 경혈이라는 인체 상의 특정 지점들을 자극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내부장기나 신체 기능의 활성 반응을 종합적으로 응용해 온 침구치료도 역시 전인적인 치료기술입니다. 머리부터 손끝, 발끝까지 발견한 경혈자리끼리의 전신적인 상호관계를 연결하여 이론화한 경락체계는 진단에도 반영하고, 침, 뜸, 전기, 지압 등을 이용한 자극-활성유도 치료법에도 응용됩니다. 이렇게 한의진료는 진단, 평가와 치료기술 모두 전신을 고려하므로 종합적인 판단이 특히 중요한 일차진료에 큰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한의진료는 개인별로 다른 유전적 소인인 체질에 따라 진단하거나 각 성격에 따라 치료를 달리하기도 하여 맞춤의학의 특징이 있고, 이렇게 환자 개인에게 맞추는 과정에서 의사-환자 상담관계를 밀접하게 형성하여 환자중심적인 진료가 가능합니다. 천연물을 응용한 식이 및 의약품과 각종 비수술적 요법, 그리고 자연치유력의 핵심인 면역력의 활성화를 중요시하므로 자연친화적이고, 양생의 개념으로 평소의 예방보건을 가장 우선합니다. 이와 같이 한의학은 일차진료, 예방보건, 보존적 치료 등 매우 중요한 의료적 가치가 종합된 특징을 가진 분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2016년 1월에 뉴욕시 브롱스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부속 몬테피오리 병원 아인슈타인 암센터의 통합암치료팀의 공식적인 요청으로 Korean Medicine 소개와 한국에서의 통합암치료에 관한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이곳은 독립적인 통합의학센터의 설립을 추진 중인데 한의학의 개념과 임상실제의 아이디어를 들어보고자 하여 저에게 만남과 자문을 요청하였고, 그때 제가 강의한 한의학의 특징도 실은 위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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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환자를 위해 최적화된 통합의료시스템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한의사가 혼자만의 능력으로 완치를 추구하고자 환자에게 무조건적인 노력을 다하려는 것 보다는 다른 전문의 한의사는 물론이고 다양한 의료 전문가들과 협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협력의 원리에 따라 언제나 잡종이 순종보다 우세함을 인식하고 다른 의료서비스들의 조합을 고려하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계획을 통찰력 있게 수립하는 한의사가 필요합니다. 한의사가 주로 추구하는 보존적인 치료의 범위를 벗어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 환자를 외과전문의에게 보내어 의뢰하는 것도 한의사의 전문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중요한 진료행위입니다. 통합의료시스템에서 침치료 뿐 아니라 운동교육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운동치료사나 물리치료사에게 상태를 설명하고 치료를 의뢰하여 나중에 환자가 집에서도 제대로 운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한의사가 직접 운동을 가르쳐 줄 수도 있지만, 타 의료직종과의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환자에게 더 적합한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볼 수 있고 더 전문적인 치료계획을 세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설령 환자의 질병이 담당 한의사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 혹은 심지어 의료진 중 한 명이 결근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협력 의료진들을 통해 환자에게 미칠 피해가 최소화되어 의료시스템이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요컨대 통합적인 의료시스템은 한의사가 진료 현장에서 환자를 위하여 위대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 매우 적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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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사 박지혁의 미국 통합의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