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의사 김승남 프로필

#1. 시작

 

제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20세기 또래 수많은 남자아이들이 그랬듯이.


어릴 때엔 과학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흙에 물을 부으면 흙이 단단해져 비 온 뒤에 두꺼비집이 더 잘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바닷가에서 바로 앞의 파도가 높게 보일 때보다 파도 없이 수면이 높아 보일 때 더 무서워하며 도망가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국민학교 때 고무동력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비 오는 날 연습을 하다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비행기 날개에 물을 뿌려 종이를 팽팽하게 잡아당겨야 저항이 낮아져 더 오래 난다는 것을 발견했고, 과학상자조립대회에 나가기 위해 받침을 만들다 사각형보다 육각형이 지지를 더 잘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국민학교 과학시간은 언제나 꿀재미였고, 자연에서 발견된 현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학자가 그렇게나 멋져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과학, 과학자라는 용어들은 어느새 낯선 용어가 되었고, 저 단어들의 의미를 과학경시대회, 수능 과학탐구영역, 과학선생님 등의 이미지로 대체했습니다. 저에게 과학을 잘 한다는 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라는 딱딱한 과목들의 시험성적이 높아지는 걸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저는 의료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고, 기(氣)와 신(神), 음양(陰陽)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으로 환자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은, 어느새 제 인생의 주업이 되어 있었죠. 지금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 느끼기엔 이상하게도, 한의학을 배우며 과학의 사고방식이 다시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자연에서 법칙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사람을 치료해 나가는 학문. 제게 한의학은 과학이었습니다.


어릴 적 제가 경험하던 과학은 현상 속에서 자연을 알게 되고, 이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한의학은 과학으로 여겨지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윈의 핀치와 같이 동양과 서양은 떨어져있는 거리만큼이나 다른 사고방식, 용어를 갖고 있습니다. 매우 다양한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이 어떻게 같은 용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처럼 한의학은 추상적, 거시적 관점으로 인체를 바라보며 발달하게 되었고, 서양과학은 실증적, 미시적 관점으로 인체를 바라보며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두 학문이 결국 인체를 포함한 같은 자연을 바라보고 설명하고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과학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며 평행선을 달리게 될지.


제 지식의 부족함을 느끼고, 앞으로 더 배움을 얻어 과학을 연구하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2013년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 박사과정을 마치며, 생명과학 연구의 일선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습니다. 대학원시절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던, KMCRIC의 소장 이혜정 교수님과, 부소장 박히준 교수님의 큰 도움과 추천으로(또한, 많은 교수님들의 도움 덕분에),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여러 대학의 생명과학연구실에서 제 배경에 관심을 가져왔고, 최종적으로 뉴욕에 있는 ROCKEFELLER대학의 신경행동생물학연구소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ROCKEFELLER대학은 학과 없이 73개의 연구소로 구성된 연구중심대학입니다. 물리•생물학분야 대학원만 존재하는 크지 않은 규모의 대학이지만, 노벨 화학, 생리의학분야에서만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우수한 연구환경을 갖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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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과 한의학의 사이에서.
이 글들은, 2013년부터 ROCKEFELLER대학에서 POSTDOC FELLOW로 재직하며 배워나가는 소고들입니다.



©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