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Wassup Hopkins!]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의사학교실에서 방문학자로서 한국 한의학을 토대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칼럼을 통해 연구와 관련된 내용 뿐 아니라, 볼티모어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태형 프로필

콜로키움과 학술 토론

 

홉킨스의 Department of the History of Medicine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 중의 하나는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반 가량 열리는 콜로키움입니다. 이 콜로키움은 홉킨스 내의 Department of History of Science & Technology와 Department of the History of Medicine에서 공동으로 관장하고 있으며, 장소도 Institute of the History of Medicine의 세미나룸 혹은 Department of the History of Science & Technology의 강의실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됩니다. Colloquium은 번역하면 연구회 정도의 의미인데요, 저의 경우 이 자리가 처음에는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점차 그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다음은 지난 2013년 가을 학기의 콜로키움을 소개하는 포스터입니다. 최근 일정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www.hopkinshistoryofmedicine.org/content/departmental-calen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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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키움은 발제자의 간단한 발제로 시작됩니다. 발제자는 매 학기 전에 미리 선정되는데, 구성원들의 추천을 토대로 논의를 거쳐 확정됩니다. 보통 홉킨스 외부의 연구자들이 초대되어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기회를 얻는데, 초대받은 연구자들은 홉킨스의 콜로키움에서 발표하는 것을 하나의 영예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보통 해당 논문은 발제에 앞서 일주일 전쯤 PDF 파일, 혹은 인쇄물로 배포되며, 콜로키움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논문을 미리 읽어올 것이 요구됩니다. 발제자의 발표는 10분 정도로, 간단히 본인의 연구 의의를 소개하거나 논문에 담지 못했던 영상물을 공유하는 데에 그칩니다. 발표 이외의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 대부분은 참석자들의 질문과 답변, 그리고 논의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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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콜로키움에 참석하면서 놀랐던 부분은 먼저 발제 형식에 있었습니다. 이미 논문을 일주일 전부터 미리 배포한 상태이기 때문에, 발제 가운데 논문 내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논문을 미리 읽어오지 않은 경우, 콜로키움 중에 이루어지는 논의를 전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발제 이후 이어진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질문과 논의였습니다. 대부분의 콜로키움 시간을 논의로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짧은 발제가 끝난 이후 질문을 준비한 구성원들이 손을 들면, 그날의 사회자가 (보통 연자를 초대한 교수님이 사회를 담당합니다.) 리스트를 작성하고 순서대로 질문할 기회를 줍니다. 질문은 보통 논문에서 이루어진 논의 과정 중에 생긴 의문이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 혹은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사항 등을 포괄합니다. 참석한 교수는 물론이고, 대학원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질문이 장려됩니다. 특히 뛰어난 질문을 한 경우에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 당사자가 높이 평가되기도 합니다. 질문을 받은 발제자는 그에 대한 본인의 답변을 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논의가 질의자와 더불어 함께 이루어집니다.


논의 과정은 매우 평등해 보입니다.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위계보다는 평등한 구조 속에서 자유로운 학술 토론이 이어집니다. 때로는 대학원생이 초청 교수에게 예의 바르지만 날 선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연자도 당황할 때가 있지만, 불쾌해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논리를 더욱 탄탄하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최대한 본인의 생각을 토대로 답변합니다. 미처 다하지 못한 논의는 콜로키움이 끝난 후, 와인과 맥주가 있는 간단한 뒤풀이에서 계속됩니다.


콜로키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 과정을 지켜보며, 무엇이 이러한 평등하지만 날카로운 학술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발표자 위주의 발제와는 성격이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한 나름의 결론은 “더 나은 학문을 위한 추구”라는 구성원 간의 공통된 가치가 이와 같은 논의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나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 위계적 혹은 일방적 논의 구조보다는, 평등하고 쌍방향으로 소통 가능한 논의 구조가 바람직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까요? 그 가치 앞에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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