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의사 김승남 프로필

#14. 동서양의 차이, 한의학의 세계화

 

황제내경(黃帝內經)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편을 보면,
동서남북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른 질병양상이 생기고, 그에 따라 탕약, 침 치료, 도인수기법 등 다른 치료를 해야 나옵니다. 이 내용은, 현대의 한의학에 있어서도, 질병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예후와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음식이나 기후 등 환경적 영향에 의한 차이를 발견하고, 이에 따른 치료법을 다양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심리과학에는 흥미로운 주제가 있습니다.
동양이라 불리는, 이른바 동아시아 지역의 사람들과 서양이라 불리는 구미서구권의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사람들은 좀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는 반면, 동양의 사람들은 좀 더 이타적인 성향이 있고 전체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동양 사람들은 본인 자신의 모습보다는 사회속의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나’보다는 ‘우리’를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고, 서양 사람들은 본인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우리’이기 이전에 ‘나’를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서양은 이 사건은 무엇인가를 분석하려는 사고가 강한 반면, 동양은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전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사고가 강하다는 것이죠. (물론, 요즘은 세계화가 빠르게 일어나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철학의 기조나 종교 등 큰 차이를 나타내고, 이른바 다른 문화권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전체를 바라보는 한의학과, 병인을 분석하는 서양의학의 차이도 이러한 문화에서 기인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승남14-01.jpg

그렇다면,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많은 연구자들이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설명하려고 했습니다만 딱 정답을 내리긴 어렵겠죠. 통시적, 공시적인 관점에서 정치/사회/문화 모든 요소들을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 얘기했던 황제내경의 문구처럼, 환경적 특성이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까요?
동서남북 지역의 바다, 산과 같은 특성이야 지구 어디를 가도 큰 나라인 이상 모두 갖고 있겠지만, 먹는 식습관의 차이라면 어떨까요? 동서양의 차이가 있을까요?


김승남14-02(2).jpg

SCIENCE 저널에는 재미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중국 내에서 ‘밀’을 주로 생산하는 지역과, ‘쌀’을 주로 생산하는 지역의 심리학적인 차이를 비교분석한 연구였습니다(물론, 비교를 위해 미국내에서 ‘밀’과 ‘쌀’을 생산하는 지역도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쌀’을 주로 생산하는 지역의 인구는, ‘밀’을 생산하는 지역의 인구에 비해, 이타주의적 성향이 있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있다는, 이른바 ‘동양’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연구는 모든 걸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에 ‘생산하는 지역’이라는 조건으로만 연구를 진행하였지만, 흥미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한계도 연구의 문제였습니다. 근대화를 이 서양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의 경우에 다른 경향성을 보이기 때문이었죠.


주식의 차이, 밥과 빵의 차이 등이 동서양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주장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의 문제는 서양인이 밥을 먹고, 동양인이 빵을 먹을 경우에도 그러한가라는 크로스연구가 부재하기 때문에 인과성을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또한 이런 인종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은 자칫 섣부른 인종의 일반화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 역시 갖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같은 나라, 같은 인종’ 내에서의 연구였다는 가치는 있었지만, 역시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적 연구는 우리 사회의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연구임에 분명합니다.


김승남14-03.jpg

더 나아가,
이러한 환경의 차이가 만든 후생유전적 특성들이 발견된다면,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현재의 한의학이 나아갈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의학은 오랜 역사를 갖고 의학적 경험이 축적되었지만, 인류를 생각해 보았을 때엔 작은 지역과 인구의 경험만이 축적되었습니다. 물론 인류는 모두 같은 기전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작은 차이와 변이들마저 예측하고 예후를 알려줄 수 있는 세계 속의 한의학이 되기 위해선,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한의학적 데이터가 축적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가 우리의 사상의학 역시 더욱 풍성하고 탄탄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