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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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엄마들에게 배운 육아법

 

아이를 갖기 전 “아이는 부부 사이의 윤활유가 되어준다”라는 표현을 들으면 항상 의아했습니다. 아이가 있으면 육아 때문에 지쳐서 오히려 서로에게 더 소홀해질 것 같은데 왜 부부 사이의 윤활유라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고 나니 조금씩 조금씩 그 말의 의미가 머리보단 몸으로 와 닿았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즐거워하고, 새로운 추억도 쌓으며, 싸워서 토라져 있다가도 아이 관련 일이 생기면 둘 다 금세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가면서 부부간의 새로운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엄마들 사이에서도 아이는 서로의 마음을 쉽게 열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것 같습니다. ‘육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엄마더라도 아이와 관련된 얘기로 대화를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십년지기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나누다가 어떨 때는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고 집에 옵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 다른 엄마들을 사귀고, 또 동네 엄마들이 가입하는 페이스북 그룹에서도 활동하다 보니 미국에서 만난 엄마들의 육아법을 통해 배우는 것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3가지만 꼽자면 데이트 나이트 (date night), 혼자 재우기, 그리고 아기 수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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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딸린 부부에게 ‘데이트 나이트’란 말 그대로 일주일, 길게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부가 다시 연인 시절로 돌아가서 맛있는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면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날을 말합니다. 미국 친구가 말하길, 여기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데이트 나이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하더군요. 이때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나가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언을 토대로 첫째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저와 남편도 주변분들 등쌀에 떠밀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쩔 수 없이 외출에 나섰습니다. 시간과 돈만 허비하고 돌아오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오랜만에 차려입으니 불편하기만 해서 잠깐 나갔다가 금방 집에 돌아올 생각이었죠. 쭈뼛쭈뼛 나가서 둘이 어색하게 스테이크 썰다가 어느 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혼 시절 추억까지 소환하며 즐겁게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졸지에 육아도우미 이모님과 밤까지 남게 된 아이는 집에 돌아와 보니 곤히 자고 있었고, 이렇게 맘껏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오니 다음날 육아가 훨씬 덜 힘들게 느껴지더군요. 그다음 데이트 나이트에는 뭘 할지 생각하면 기분도 좋고, 기분이 좋으니 자주 웃고,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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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다 보니 아기를 혼자 재우는 것도 주변 엄마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육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 육아 선배 엄마가 집에 남는 아기 침대 (crib)를 하나 들고 와서 설치해 줬고, 그렇게 독립된 방에 아기 침대를 두기 시작하면서 첫째와 둘째 모두 혼자서 재우는 시스템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가 혼자 자다 보니 저녁에 밀린 일을 처리하고 개인 시간을 조금 더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은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다 이렇게 재우니 당연한 줄 알았다가 오히려 한국 엄마들과 얘기하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아이와 부모가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갑자기 그동안 혼자 잔 우리 아이가 불쌍하고 부모 잘못 만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남편이랑 이구동성으로 일찌감치 혼자 재우는 습관을 들인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아이와 같이 자든 아니든 어느 것이 더 좋다는 정답은 없고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육아 스타일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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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수화도 저희에게는 정말 신기한 육아 정보였습니다. 한국 엄마들만 교육열이 높은 줄 알았는데 미국 엄마들도 만만치 않더군요.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2개월 된 아기를 놀이방에 데려와서 키즈 요가 수업을 끝까지 듣던 엄마, 어렸을 때부터 최대한 많은 언어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며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엄마 아빠 각각 영어와 스페인어를, 육아도우미를 중국 사람을 쓰면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엄마 등 정말 열정적인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육아 팁 중 저희가 실행에 옮긴 것은 아기 수화였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아기 수화 관련 책도 정말 많고 유튜브에 영상도 많아서 따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저희 부부만 먼저 공부해서 수시로 아이에게 가르쳐주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9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수화를 익힐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계속하다 보니 정말 신기하게 간단한 의사 표현을 수화로 하더군요. 말도 못 하는 애가 우유를 마시고 싶을 때, 오줌을 쌌을 때, 밥 다 먹어서 배부를 때 정말 열정적으로 손짓, 발짓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소통이 돼서 편하기도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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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 엄마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저희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 돼서 놀라게 되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한국 엄마 친구들보다는 육아도 어른 중심으로 많이 맞춰져 있는 것 같고 부모가 즐겁고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전제가 많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소아과 의사도 이유식 끝나갈 무렵부터는 괜히 힘들게 아기용 음식을 따로 만들지 말고 우리가 먹는 음식 그냥 조금씩 떼서 주라고 하는 등 조언을 기본적으로 부모가 편하게 육아할 수 있는 쪽으로 많이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의원 진료를 하다 보면 출산 후에 한 달도 안 돼서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한약 및 침 치료를 받으러 오는 여성분들이 많은데, 저도 엄마가 되고 나서는 치료 접근법을 많이 바꿨습니다. 이제 새롭게 한의원에 오는 엄마들에게 저는 이렇게 얘기해 줍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늘어난 노동량만큼 먹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물 마실 시간은 없을 것이며, 잠은 몇 달간은 편하게 자기 힘들 거예요. 한 달 안에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과 마음이 회복하는 시간도 중요하니 100일까지 산후조리부터 더 신경 쓰시고 그 후에 제가 살은 확실히 빼 드릴게요! 지금은 걱정하지 마시고 최대한 즐기세요.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답니다! Happy mom makes a happy baby!”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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