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와 ‘새로운 일상 (New Normal)’

 

2020년 3월 20일, 미국 뉴욕주에서는 코로나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행정 명령을 통해 모든 비필수 업종 (non-essential businesses)의 '영업 중단'과 ‘재택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아침마다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뉴욕의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기에 예상했던 바였지만, 우려했던 상황이 막상 현실이 되니 무척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학교는 온라인 강의로 전환한 상태였고, 뉴욕주에서는 초기에 한의원이 비필수 업종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한의원들도 진료실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얻게 된 휴식 기간이 나름 달콤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도 학교에 가지 않으니 같이 아이를 보면서 푹 쉬었고 재충전을 하면서 즐거운 것도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곧 끝날 줄 알았던 영업 중단 명령이 5월 15일까지 연장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지 플로이드 사태 (미국 경찰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사망 사건)와 함께 도시 여러 곳에서 시위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진정되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림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앞으로도 코로나 이전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이로 인해 향후 한의계에 생길 변화, 그리고 한의사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미국 한의계 내에서도 아주 많은 변화가 빠르게 생겼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의원의 대면 진료가 제한되면서 제일 먼저 변화가 생긴 것이 진료 방식이었습니다. 전화나 영상통화를 이용한 진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한의원들은 Telemedicine (원격의료)을 도입하여 환자들의 치료를 원격으로 이어갔습니다. 원격의료는 일상적인 영상통화를 이용해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미국 HIPPA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법의 개인정보 보호 (Privacy Act) 규정에 맞게 설계된 영상통화 매개를 이용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전화를 이용해 주고받게 된 환자의 개인정보 누출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이 더욱 강화된 시스템이 탑재된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돈을 조금만 더 지급하면 사용할 수 있어서 사용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많은 보험회사에서 아직은 한방 원격진료 비용은 지급해 주지 않고 있어서 사용하더라도 이득이 많이 남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변화는 환자들이 스스로 치료를 시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전체 내원 환자 수는 줄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평소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한약 치료 문의는 이어졌습니다. 또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식사량은 늘고 운동량은 줄었기에 체중 증가, 소화 불량, 복통, 그리고 요통에 대한 문의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침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접근할 수 있는 진료에 한계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통증 환자분들이 피내침이나 지압 기기를 사서 스스로 통증을 조절하고자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기간에 구글 검색엔진에서 많이 검색된 단어 중 하나가 ‘home-care’였다고 합니다.*


*관련논문: Analysis of dermatology-related search engine trend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implications for patient demand for outpatient services and telehealth. J Am Acad Deramtol. 2020;83:963-965.


앞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대면 진료에 대한 환자분들의 거부감이 커질수록, 스스로 침을 놓을 수 있게 제작되는 침이나 이와 관련된 한방 기기들은 불가피하게 더 많이 개발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자가 치료용 한방 의료 기기의 개발에는 우려스러운 부분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환자분 중 한 명은 출산 후 유방 통증을 줄이기 위해 피내침을 사서 직접 가슴 부위에 부착했는데, 자침하면 안 되는 부위였고, 자침 전후 위생적인 관리의 부족으로 인해 해당 부위에 염증이 아주 크게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결국 염증 때문에 모유 수유도 일찍 중단해야 했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피내침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는데요. 이러한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한의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어나는 ‘셀프 치료’ 트렌드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오히려 이에 맞춰서 한의사가 적극적으로 진료 안내 및 지도를 해줄 수 입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기 환자의 사례는 국제학술지 Acupuncture in Medicine에 증례보고를 하였고, 2020년 10월호에 “Press Needle Self-Acupuncture Needs Caution in Times of COVID-19. A case report of local skin infection following press needle application”라는 제목으로 실릴 예정입니다.)


임상 현장 외에도 미국 내 한의과대학교들은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한 직후 온라인 강의로 모두 전환하였고, 실습은 대부분 보류했다가 코로나 상황이 조금 진정이 되었던 8월 이후에 몰아서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한의사 자격증 시험을 주관하는 CCAOM에서는 한의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필수로 쳐야 하는 CNT (Clean Needle Technique: 침 시술 감염 관리 과정) 시험을 모두 온라인 화상 시험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직접 1:1로 보던 대면 시험을 화상통화를 이용한 온라인 시험으로 바꾸는 건 매우 큰 작업이었는데, 이 작업을 2020년 10월에 모두 완료하였고, 11월부터 첫 온라인 수험생들을 받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한국에서 미국 한의사 자격증 준비를 하는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CNT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1년에 몇 번밖에 열리지 않는 시험 날짜를 예약해서 지정된 장소에 직접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그러한 물리적, 시간적 제약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첫 영업 중단 명령이 내려진 3월 20일 이후 벌써 7개월이 지났고, 사람들은 천천히 ‘새로운 일상 (New Normal)’에 익숙해 지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재택근무를 방해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고, 선생님들은 화면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원격으로 제어하며 강의를 이어 나가야 하는 새로운 기술을 터득해야 했습니다. 저희 아이도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못하고 작은 집에서 매일을 보내야 했기에 가족 모두의 심신안정과 평화를 위해 유튜브의 세계를 일찌감치 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로 인해 미국에서도 한의사들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비즈니스가 타격을 입었고, 안타깝게도 끝내 문을 닫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 어려운 시기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난 수천 년간 그래 왔던 것처럼, 한의학은 이번 위기에도 발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일상 속에서 더욱더 단단하게 환자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학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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