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소연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

대만의 국립성공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로 대만으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저의 일상과 제 눈에 비추어지는 대만의 모습을 조금씩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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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립성공대 의과대학의 중의학 캠프

 

대만에는 13개의 의과대학이 있습니다. 중의학과가 함께 있는 네 개의 대학을 제외하고도 의과대학만 있는 아홉 개의 학교 중 여섯 곳에는 부설병원에 모두 “中醫科(중의과)”가 존재합니다. 2020년 입시 결과 기준 의과대학 랭킹 전국 1위인 대만대학교와, 전국 4위이자 남부지역 부동의 1위인 성공대학교, 이 두 학교는 부설병원에 중의과가 존재하지 않는 나머지 세 학교에 속해, 의학과의 자존심이 세고 비교적 중의를 배척한다는 이미지가 있는 곳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성공대학교의 경우에는 의과대학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선택과목 중에 2학점짜리 “中醫槪論(중의개론)” 수업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름방학에는 2주 기간의 중의학 캠프가 존재하는데요.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수업을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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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2021년부터는 10년) 공공복무 의무가 있는 “公費” 부문 입시 결과는 제외

▲ 최근 5년 대만의 의학과 입시 결과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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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대 의대 중의학개론 수업의 2020-2021 학사 연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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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2021 학사 연도 중의학개론 수업 일정표


2012년부터 시작된 성공대 의과대학의 중의학 캠프의 정식 명칭은 “Introduction to Chinese Medicine & Cross-Culture Biomedical Ethics”입니다. 이 캠프가 시작된 배경을 더욱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8년 미국 Brown University의 Warren Alpert Medical School과 성공대의 자매결연 협정이 있습니다. 양 의대의 학생/교원의 교환, 그리고 공동 연구 추진 등을 협약하며 학생들의 단기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름방학 기간 내 2주간의 캠퍼스 방문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라운대 의대 학생들에게 단순한 성공대 의대 방문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대신 대만의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 그리고 그 제도권 안에 포함되어 있는 중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해요.


그리하여 성공대는 여름방학 캠프 프로그램을 새로 구상하게 되고, 그 결과 2012년에 브라운대 및 기타 해외 자매결연 학교들의 보건의료계통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Introduction to Chinese Medicine & Cross-Culture Biomedical Ethics (中醫及跨文化倫理簡介)” 프로그램을 열게 됩니다. 더불어 성공대 의대 학생 및 기타 학과 학생들도 관심이 있다면 참가하여 2학점의 얻을 수 있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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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성공대 의대 중의학 캠프


아쉽게도 2020년은 모두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COVID-19으로 인해 프로그램이 취소되었으며 2021년 역시 다시 캠프가 열리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최근에 열렸던 캠프는 지난 2019년 여름인데요. 해마다 프로그램 구성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2019년의 프로그램을 예로 보면 Introduction to History of Chinese Medicine, Health care system of Taiwan과 같은 가벼운 수업들,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직접 본인의 학교가 있는 국가의 대체 의학을 소개하는 것과 같은 발표 수업, 대만 문화 체험 학습 및 관광, 중의 클리닉과 엑스제 한약을 만드는 제약회사 방문 등 다양한 활동들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캠프의 중의학 수업 강사 섭외를 담당하고 있는 Tainan Hospital (衛生福利部臺南醫院, 위생복리부대남의원) 중의과 주임 선생님이신 Dr. Yu Pei Chen (陳俞沛)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2016년부터 캠프에서 본초 수업을 맡아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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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여름 캠프 프로그램 구성


제가 수업을 해온 4년 동안만 봐도 해마다 참가하는 학생들의 국적이나 학교 수는 조금씩 변동이 있었습니다. 2019년 캠프의 경우에는 성공대학교 재학생 이외에 인도네시아, 태국, 일본,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석했고, 2018년에는 반갑게도 한국에서 온 원광대학교 한약학과 학생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3시간의 짧은 수업 시간 동안 이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지루하지 않고, 또 제 작은 욕심이지만 학생들의 기억에 잘 남을만한 그런 수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요. 아무래도 강사인 제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되도록 적게 하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부분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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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2019 중의학 캠프에서 본초 수업 진행


그리하여 이 수업은 먼저 제가 아주 간단한 본초학과 관련된 기본 개념들을 소개하고, 뒤이어 조별로 미리 과제로 배정받은 한약재에 대해 조사해온 내용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수업에 참석하기 전 한약방에 가서 직접 구매해온 해당 한약재 음편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진 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여 결과물을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일종의 방제학 실습을 하는 것으로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의 뒤로 갈수록 학생들의 눈빛이 더 초롱초롱해지고 웃음소리가 커지는 것 같은 모습은 수업이 오전에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재료를 배합하여 환으로 빚기만 하면 되게 수업 전날 미리 약재들을 가루 내고, 완성된 환을 담을 수 있는 청병과 학생들에게 일종의 wow factor이기도 한 금박지를 사비로 준비하여 가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수업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해마다 5월쯤 제게 “올해도 수업을 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오는 성공대 직원의 말에 의하면 제 바람대로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 즐거운 수업으로 꼽는다고 하니 조금 뿌듯하기는 합니다.


언제쯤 다시 국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중의학 캠프가 돌아올지, 과연 돌아오기는 할지 가늠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국제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는 그날 제게 또 연락이 온다면 저는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기꺼이 수업을 준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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