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소연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

대만의 국립성공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로 대만으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저의 일상과 제 눈에 비추어지는 대만의 모습을 조금씩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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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대만어로 뭐라고 하나요?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모 포털의 한 카페. 그곳에는 현재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전에 대만 생활을 했거나 혹은 가까운 미래에 대만행을 꿈꾸는 한국인들, 한국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대만인 등 다양한 회원들이 카페를 드나들며 많은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저 역시 대만에 이민을 오기 전부터 카페에 가입하여 오랫동안 회원으로 지내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교환학생이나 워킹홀리데이 등의 이유로 대만에 잠깐 다녀가는 신규 회원들의 유입이 끊이지 않다 보니, 늘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단골 질문들이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 단골 질문들의 유형 중 하나가 바로 “ㅇㅇㅇ을 대만어로 뭐라고 하나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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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카페에 올라온 질문, “지하철을 대만어로 뭐라고 하나요?”


이 질문을 읽어보면 사실 질문하는 분이 알고 싶어 하는 답은 “대만어(台語)”가 아니라 대만에서 사용하는 “중국어” 단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를 구분하듯이 중국에서 사용하는 중국어와 대만에서 사용하는 중국어에 조금씩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이죠.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흔히 중국어라고 이야기하는 중국의 표준어 “보통화(普通話, Mandarin)”를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조금만 더 있는 분들은 중국에 보통화 이외에도 수많은 다른 방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Yue)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편이지요. 이외에도 상해어(Wu), 민어(Min), 객가어(Hakka) 등이 모두 중국어의 방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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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지역별 방언 지도 및 언어 사용 인구수


그렇다면 대만어(台語)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요? 대만 섬에서 사용되어 온 민어의 일종이 바로 대만어랍니다.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대만 섬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푸젠성(福建省)에 가까이 위치하여 초기 대만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대부분 민어, 그중에서도 민남어(閩南語)를 사용하는 푸젠성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만어로는 “따이기’라고 읽히는 대만어는 곧 민남어라고도 하고, 오리지널 민남어보다 일본어 단어가 많은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민남어와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푸젠성 이외에 민남어가 많이 사용되는 지역은 대만 이외에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있습니다.


대만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 대만어가 필수는 아닙니다. 근대에 들어 국민당이 대만 섬으로 건너와 “국어(國語)”라고 지칭하는 보통화를 강제적으로 보급하여 대부분의 대만사람이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어를 구사하기 때문이죠.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마치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과 유사하여, 국민당보다 일찍 대만에 정착하여 대만어를 구사하던 사람들이 국민당에 대해 갖는 반감이 마치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세세한 정치와 당파 이야기까지 들어갈 수는 없지만, 간단히 대만의 북부와 남부가 문화 및 정치 성향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제가 살고 있는 남부 지역은 북부에 비해 대만어를 할 줄 아는 인구가 많고, 사용 빈도 역시 훨씬 높습니다. 중국어를 못 하고 대만어만 구사하시는 어르신들도 많은 편이고요. 북부 지역에서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 즉 아이의 첫 번째 사용 언어가 중국어인 경우가 많은 반면, 남부 지역에서는 대만어가 주 언어이고,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공식 교육기관에 가서야 두 번째 언어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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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2010년 인구조사 기준 6세 이상 인구가 중국어(華語라고 표기)를 사용하는 가정의 비율

우: 대만어(閩南語라고 표기)를 사용하는 가정의 비율


대만에는 중국어와 대만어 이외에도 객가어, 원주민어, 수화 등이 “국가언어(國家語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만 대만 전역 공용어는 객가어까지입니다. 예를 들어 타이베이에서 지하철을 타면 들을 수 있는 안내 멘트들이 중국어, 영어, 대만어, 객가어 순서로 나온답니다.


▲ [臺北捷運/Taipei Metro] 路線廣播 Route Announcement (6분 19초 재생)


처음 나왔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지하철을 대만에서 사용하는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지에 대한 답은 捷運(Jiéyùn, 지에윈)입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地鐵(Dìtiě)라는 단어를 사용하지요. 그리고 捷運을 “대만어”로 읽으면 지엣운(Tsia̍t-ūn)이 됩니다. 이때 한자 運이 한글 발음과 비슷하게 “운” 소리를 내게 되는데요. 이외에도 꽤 많은 한자어가 중국어로 읽었을 때와는 달리 한국어와 조금 더 가까운 발음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 문화, 운동과 같은 단어는 대만어로 읽으면 꼭 한국어처럼 들리지요.


저와 같이 국제결혼을 한 커플들에게 늘 2세의 언어는 자녀 교육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데요.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주 언어가 한국어인 저와 영어인 신랑이 중국어와 대만어가 모두 필요한 대만 남부 지역에서 어떻게 2세에게 4종의 언어를 잘 가르쳐 줄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이 함께 합니다. 대만에 이주해 온 뒤 이런저런 핑계로 중국어만 공부하고 대만어를 따로 배우지 않은 저에게, 대만어를 바로바로 한국어로 통역해 줄 수 있는 귀여운 통역가가 생길 수 있을까요?



© 한의사 전소연의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