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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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척추동물을 만드는 설계도, 축

 

오늘은 재미있는 생명과학 주제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말투도 조금 가벼울 수 있으나 재미를 갖게 해드리고자 함이니, 양해해 주시길 미리 부탁드립니다. ^_^


발생생물학(DEVELOPMENTAL BIOLOGY)은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생명과학적 기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오! 하는 호기심에 연구를 시작했지만, 연구를 거듭하다 보니 이런 기전들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생명의 기전에 관련되고, 또 죽어가는 기전과 연관되어 있더라고요.


발생생물학에서 연구하는 몇 가지를 들자면, 줄기세포가 여러 가지 특정한 세포(뇌세포, 혈구세포, 간세포 등)로의 역할을 갖게 되는 기전, 생명체의 장기(내장, 팔다리, 눈 등)들이 모양을 갖춰가는 방법 연구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 네이처 잡지에 실린 내용과 관련이 있는, 장기형성(ORGANOGENESIS)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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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만약 눈앞에 찰흙으로 사람을 만든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한 개의 사람 인형을 만드는 것은 품질의 고/저를 떠나 어느 누구나 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10개, 100개의 일정한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야 하거나 1년, 10년이 지난 다음에도 인형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떨까요? 크기도 제각각, 비율도 다른 인형이 되지 않으려면, '설계도'가 필요하겠지요. 설계도는, 어릴 적 장난감 조립을 해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매우 중요한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립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혹은 다 완성된 뒤에 밸런스가 맞지 않아 다시 만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어떤 고려가 필요할까요?
이미 제목에서 얘기했듯이 뼈대가 되어주는, '축'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은 척추동물의 장기형성에 있어 큰 진보를 가져온, 생명체의 '축' 설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생명체에서 '유전자'는 생명이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도'입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신비롭게도, 척추동물의 유전자는 생명의 발생 초기에 축을 생성하고, 축에 따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생명체는 발생을 시작하는 순간 양극단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중 특정 부위에서 시작되는 FGF 유전자의 발현은 각 농도에 따라 사이에 있는 세포들이 다르게 발생을 시작하도록 유도합니다. 즉, 한 부위에서 시작되는 FGF의 발현은 뒤쪽으로 갈수록 농도가 낮아지고, 그 위치의 세포들이 각각의 농도에 따라 다른 기전들을 작동시키면서 우리 생명체는 ‘앞’과 ‘뒤’ 라는 축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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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연구결과에 의하면, ‘특정’농도에 따라 장기형성의 ‘씨앗’을 만들도록 관여하는 유전자 역시 FGF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축을 만들도록 농도를 형성하고, 중간중간 시간에 따른 고농도를 형성하여 장기형성의 씨앗이 되어주는 것이지요. 마치, 상상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비행기가 직선으로 날아가면서 낙하인원들을 일정 시간에 따라 떨어뜨리는 모습이랄까요. 떨어지는 낙하인원들은 낙하하는 순서에 따라 다른 역할을 갖고 있어서 각자가 가진 색의 연기를 뿌린다는 것이지요. 날아가는 비행기가 축, 비행기를 조종하며 일정 부위에 인원을 떨어뜨리는 통제자가 FGF, 그 각각 인원들이 바로 장기(예를 들면 순서대로 팔, 폐, 심, 위, 장, 생식기, 발 등)를 형성하게 되는 시작이 되는 겁니다.


이후에도 매우 다양한 유전자들이 (HOX CODE, SHH 등) 생명체의 형성에 관여하게 되지만, 이처럼 잘 짜인 프로그램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명체를 형성해서 만들게 됩니다. (물론 아주 가끔 오차가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발생하는 돌연변이 질환, 기형들이 그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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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찰흙으로 돌아와서, 이런 설계도가 만들어져 있으면 되겠지요.
철사로 축을 만듭니다. 철사 위에서 아래로 가며 큰 축이 될 찰흙들을 붙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가며 일정 위치들에 큰 장기가 될 위치에 어떤 표식(씨앗)들을 붙입니다.
큰 장기들을 붙이고 세부적으로 다듬어 나아갑니다.


어떤가요? 미술 시간에 한 번쯤 이렇게 만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생명체가 발전해 나아가며 스스로 터득한 형성비법.
미술 시간에 우리는 그 장엄한 신비에 대해 이미 몸으로 체득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생명체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체계를 만들어 현상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
자연 현상을 바라보며 알게 되는 신비한 법칙들입니다.


흥미롭게도, 다양한 문화, 종교들에서 축을 생명체의 중요한 역할로 생각하는 설명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힌두교 등에서 전승되어 현재 요가 등에서 쓰이는 개념인 차크라 역시 중요한 차크라가 인체의 척수를 따라 배치된다고 설명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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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도 역시 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독맥은 경맥 중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인체의 음양을 총괄하는 가장 중요한 기경팔맥입니다.
또한, 심장과 신장의 조화, 수와 화의 견제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천이지요.


한의학으로 발생학적인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아직 연구된 바가 많지는 않습니다.
<동의보감>에는 발생학적인 부분이 의학 입문 등을 인용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신 1개월부터 10개월까지 배아/태아의 크기와 형상, 혹은 행태를 기록한 것과 시기별 주의할 것 등이 적혀 있지요.
이 내용은 한의학적인 이론과 맞물려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각 월별로 태아를 기르는 경맥에 관한 부분인데, 그 임상적이나 생리학적 의미를 많이 연구해본다면 흥미롭고 가치 있는 가설들이 한의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많고도 많은 비밀을 간직한 생명현상, 그리고 한의학입니다.
결국, 그 연구들은 어떤 공통점을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의학 이론은 자연현상(소우주)을 빗대어 바라본 생명현상의 표현이니까요.


References

1. Sevi Durdu et al. Nature 515, 120–124.
2. James Sharpe. Nature 515, 41-42.
3. Fabio Santagati & Filippo M. Rijli. Nature Reviews Neuroscience 4, 80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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