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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의 항공우주국 나사 (NASA)가 중국을 감시하다 유에프오 (UFO)로 오해했다는 건물, 토루를 찾아 떠났다. 그곳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푸젠성의 명물

꼬불꼬불 이어진 2차선 도로를 따라 산의 안쪽으로 하염없이 휘돌아 들어갔다. 중간쯤부터는 차가 하염없이 막힌다. 얼마나 유명한 관광지면 이 정도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EBS <세계테마기행>의 촬영차 중국 푸젠성의 명물 토루(土樓)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사실 토루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적잖이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자칫 사람에 치이는 게 아닌가 걱정도 들었다. 그만큼 윈수이야오(雲水謠)를 찾아가는 인파는 대단했다.

토루의 중국 발음은 투러우. 원형 혹은 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겉에서 보면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그 자체로 사람이 사는 마을이기도 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짐승이나 산적 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벽이기도 하다. 높이는 보통 4층 정도로 꽤 높다. 중국식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 건축물은 입구만 걸어 잠그면 외부에서 침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왜 이런 건물을 지었는지가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객가인(客家人)이라 불리는 이들을 이해해야 했다.

객가인이라는 존재는 아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원래 중국의 북부 지역,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수도권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 북방민족이 중원을 장악할 때 침입을 피해서 남쪽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민족대이동에 가까울 만큼 많은 인구가 옮겨온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수백 년에 걸쳐 도적의 난이나 재난을 피해 이주한 이들까지 더해서 객가인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낯선 땅으로 흘러온 이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게 절실했다. 청나라 말기에는 토착민들과 수시로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했다. ‘손님이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한다’고 토착민이 비난의 의미를 담아 붙인 명칭. 그게 ‘객가인’이다. 그 뒤로 백 년여가 지나면서 객가인이라는 악명은 자연스럽게 그네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돼버렸다. 그들이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가옥 형태, 그게 토루다. 객가인들의 공동체 가옥인 셈이다.

정해진 땅에 수십에서 수백 명까지 모여 살아야 하니 건물은 위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목조로 기틀을 잡고 흙을 다져 단단한 벽체를 만들었다. 층마다 사람이 살 공간을 수십 개씩 만들었지만, 공간은 좁다. 부엌이든 창고든 주거 공간이든 모든 공간은 규모가 동일하다.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오로지 사는 이가 결정할 일이다. 토루는 가운데 공간을 공용으로 사용했고, 그곳에 만든 우물도 공용이었다. 이 비좁은 공간에 수백 명이 대를 이어 생을 의탁했다는 건데, 어떻게 생활했을지 상상키도 어렵다.

수백 년에 걸쳐 이어진 이 독특한 건축물은 푸젠성에만 있는 건 아니다. 장시성, 광둥성에도 있고 심지어는 저 멀리 쓰촨성에도 있다. 그중에서도 토루가 가장 많은 지역이 푸젠성이다. 보통 몇 개씩 모여서 군집을 이루는데, 푸젠성 전체를 통틀어 2,000여 개의 토루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지 혹은 삶의 터전

푸젠성에 분포한 많은 토루군 중에서도 이름난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번에 찾아간 윈수이야오는 그중에서도 중국 전역에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그만큼 규모도 크고 보존 상태도 좋다. 노을이 질 무렵에 보는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정말 끊임없이 관광객이 밀려드는 것만 아니었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았다.

윈수이야오에는 양쪽에 각각 원형과 방형 토루가 만들어져 있다. 겉보기에는 아래쪽 토루가 좋았지만, 내부는 좀 실망스럽다. 입구 근처만 가도 주민들이 입장료를 요구하고, 슬쩍 들여다본 안쪽에는 몽골 텐트가 가득하다. 아마도 주민이 운영하는 간이식당 같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좀처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위쪽의 토루인 회원루(懷遠樓)는 훨씬 낫다. 주변 환경도 정갈하게 정리돼 있고, 내부의 사당도 잘 보존돼 있다. 현지 관광객도 회원루를 선호해서 그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물론 내부의 1층은 기념품 가게로 가득하다.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대부분이 토루에 거주하는 주민이 운영하는 가게다. 농사 말고는 변변한 소득이 없는 그들에게 기념품 판매는 큰 도움이 되니 이해하기로 했다.

윈수이야오에서 필요한 분량의 촬영을 끝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던 길. 올 때와는 다른 길을 따라 나가던 중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토루를 연달아 만났다. 그중에서도 시냇물 건너 커다란 토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토루들은 모두 관광지가 아니다. 차를 돌려 그네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기능하는 토루를 보고 싶었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 4시쯤이었다.

토루 앞의 너른 마당에는 한가득 쌀을 말리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이 나타나자 동네 아이들이 먼저 몰려든다. 마침 주민들이 나와 쌀을 걷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도와주고 원하는 바를 부탁하는 게 제일이다. 나서서 손을 거들었다. 가마니에 쌀을 담고 80킬로그램쯤 되는 그 가마니를 이고 날랐다. 고령의 주민들은 낯선 이의 손길을 무척 고마워했다. 가마니 30포대 정도를 금방 나르고 나자 사방에서 자기 집으로 가잔다. 고마우니 차를 한 잔 대접하겠다는 말이다.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서 정중히 사양하되 토루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기꺼이, 그들은 자기네 삶의 터전을 열어 주었다.

정화루(鼎和樓)라 이름한 토루의 안쪽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토루 자체의 크기는 큰데도 정작, 이 안에 사는 사람은 몇 남지 않았다. 젊은 부부는 도시로 돈을 벌러 나가고, 아이들 십여 명과 아이들을 돌보는 노인들만이 이곳을 지킨다. 가구 수라고 해봐야 예닐곱 정도뿐. 정화루에서는 윈수이야오에서 관광객의 출입을 금했던 2층 위로도 올라가 보았다. 각각의 층마다 복도에서 바라보는 경관의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수십 가구가 공존했을 2~4층은 대부분 자물쇠로 문이 굳게 봉인돼 버렸다. 사람은 떠나고 그네가 살던 흔적만 무심히 흩어졌다.

이곳의 역사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구순의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나이를 먹어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누구도 그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는 그저 온종일 입구에 의자를 놓고 앉아 바깥세상을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토루의 4층에 올랐을 때, 그 뒷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이 토루의 역사가 조금씩 허물어져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걸 구순의 노인이 함께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구순 노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던 어느 오후였다.

토란국 그리고 할머니의 맛

EBS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은 모든 일정을 현지에서 결정하고 분량을 뽑아낸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인을 도와주거나 혹은 집으로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함께하는 것. 윈수이야오에서 촬영을 하던 중에 운 좋게도 밥을 한 끼 얻어먹을 기회가 있었다. 전날 잠을 청했던 숙소의 주인이 회원루에 사는 친척을 소개해 준 것. 마침 점심 준비를 하기에 한 끼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정중히 청했고, 그는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다.

현지 주민의 식사이기에 거창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생선을 굽고 정성 들여 토란국을 끓였다.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복잡한 조리과정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일상의 음식은 무척 간단했다. 무르지 않을 만큼 찌거나 볶아 낼 따름이었다.

1층의 작은 공간에 노부부와 나란히 앉았다. 손님에게 먼저 수저를 들 것을 청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기대했던 그네의 식사. 수저를 들어 토란국을 한 입 떠서 입에 넣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한 담백함.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담백했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담백한 인생의 맛이랄까. 근처의 강에서 잡아 왔다는 생선은 탱탱한 탄력이 살아 있었다. 토란이며 호박, 무 등등 요리에 넣은 모든 식재료는 전부 직접 재배한 것이라며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어둑한 실내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포근한 느낌이 참 좋았다. 손님에게 보여주는 집 주인의 마음도, 손수 차려준 음식 하나하나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웃음 섞인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식사하던 중에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이 포근함은 어릴 적 시골집에서 할머니와 함께하던 그 시절의 느낌이었다. 토란국의 슴슴한 맛이 할머니가 석유곤로에 성냥으로 불을 붙여 끓여주던 그것과 무척 닮아 있었다.

눈앞에 카메라는 돌아가고 속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다. 참아야지 하면서도 밀려드는 파도를 어찌하지 못하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함, 이 맛, 그 때문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준다. 혹여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물어보기에 할머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부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아니라고, 오랜만에 그리웠던 이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짧은 중국어로 전한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고 토란을 집어 베어 물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결마다 오래전 추억을 되살리는 힘이 느껴졌다. 그래, 이거지. 화려한 그 어떤 만찬보다 맛있는 사람의 손맛. 푸젠성의 토루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한 상을 만났다. 이번 중국 여행이 뇌리에 유난히 깊이 각인된 건 토루의 노부부가 내어준 토란국 덕분이었다.

토란은 맛이나 모양이 감자와 비슷하지만, 특유의 식감이 있다. 탕이나 볶음으로 많이 먹는데, 가을이 가장 맛있는 시기다. 예부터 속이 꽉 찬 것을 일컬어 ‘알토란 같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소를 가진 식재료다. 토란의 특징 중 하나는 미끈거리는 감촉이다. 이는 갈락탄 (galactan) 성분 때문인데,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소화 촉진 작용이 있어 소화불량이나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 좋다. 우울함을 해소하는 멜라토닌도 다량 함유돼 있다. 하지만 미량의 독성이 있어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며 토란의 점액을 맨손으로 만지는 건 피하는 게 현명하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