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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두 번이나 다녀온 합천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잡지에 실릴 콘텐츠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황매산수목원이라는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했다.

황매산이 숨겨놓은 보물

합천을 이야기하면 가야산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겠지만, 실상 합천의 주된 기둥이라고 보기에는 황매산이 더 어울린다. 물론 두 산은 산세나 경관 등이 모두 다르다. 가야산이 심산유곡에 가까운 풍광을 가졌다면, 황매산은 가야산 못지않게 깊숙한 품을 가졌음에도 느낌이 훨씬 밝다. 깎아지른 벼랑이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정상부에 올라서면 의외로 능선을 따라 너른 벌판이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지금 철쭉으로 가득 메워지고 있다. 황매산 하면 봄의 철쭉과 가을의 억새를 자연스레 연결 짓게 되는데, 그 절경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황매산의 정상부다.

근래 황매산이 더 각광받는 건 철쭉 능선이라 불리는 이 정상부 근처에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고지에 만들어진 오토캠핑장이다. 해발 900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캠핑을 즐기는데, 하늘에 가까울 만큼 맑은 날이면 머리 위로 쏟아질 것처럼 별이 가득하다고 입소문이 나 있다. 물론 이 캠핑장에서 철쭉 능선의 알록달록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봄과 가을에 이곳을 찾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가지고 정상부의 오토캠핑장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산을 걸어서 오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쉬이 철쭉 능선을 구경하고 캠핑도 할 수 있어서 입소문을 듣고 몰리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 산을 오르는 좁은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만큼 오르내리는 자동차로 가득 찬다. 그 행렬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옆으로 ‘황매산수목원’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수목원으로 차를 돌리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곳이 바로 황매산이 숨겨놓은 보물 같은 곳이다.

황매산수목원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2018년 11월에 문을 열었는데, 개관 당시만 해도 수목원 일대는 별다른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개관과 함께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된 셈이다. 그로부터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비로소 황매산수목원이 그 진가를 서서히 드러내는 중이다.

자연을 보존하고 보전하는 역할

황매산 정상은 해발 1,100미터. 수목원은 이 산의 중턱인 750~800미터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어떤 산이든 비탈을 따라 다양한 지형이 형성되기 마련. 그런 각양각색의 지형을 이용해 황매산의 자생종을 보존하고 종자를 번식하도록 관리하는 게 이 수목원의 역할이다. 황매산수목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수목원이 개원할 당시 조사한 결과 총 1,049종이 확인됐다. 현재는 여기에 추가로 150여 종이 더 발견돼 1,200종을 관리하고 있다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까지 더하면 2,000여 종에 달하는 자생종이 황매산 일대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황매산의 대표적인 자생종이 물매화다. 풀매화, 매화초라고도 부르는 이 꽃은 볕이 잘 드는 산속 습지에서 자란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가 몹시 어려운 귀한 종인데, 황매산의 모처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자랑해 마땅할 일이지만, 수목원 측은 이런 사실을 알리는 것마저 무척 조심스럽다. 보기 드문 자생종 군락지가 발견되면 벌떼처럼 몰려드는 사람 때문이다. 그저 구경만을 위해 찾아온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이 정도에서 머무르지 않아서 문제다. 특히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진가 중 아주 극히 일부의 경우, 자기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진을 찍은 뒤 군락지를 파괴하거나 없애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또는 자기가 운영하는 동호회를 끌고 와서 출사한답시고 그 일대를 다 망가뜨리기도 한다. 귀한 자생종을 발견하고도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다. 물매화의 경우 인위적인 번식이 매우 어려워서 세간에 이를 알리는 걸 더 꺼리고 있다.

황매산수목원이 관리하는 부지는 21.7헥타르 (약 6만 5,000평)에 달한다. 사실상 황매산 상부 대부분에 달하는 크기다. 이 수목원은 황매산 전체의 자연을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합천군청이 야심 차게 만든 곳이다. 수목원에는 시기마다 야생화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도록 산책로를 조성해 두었고, 차후 숲 곳곳에서 학생들이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 놓았다. 암석원, 바람소리원, 덩굴식물원, 약용식물원 등 수목원 내의 구역은 무려 19곳이나 된다.

이 숲 곳곳에 지금은 큰개별꽃, 초오 같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야생화가 피어나고 있다. 더불어 황매산 곳곳으로 뻗어 나간 산책로는 ‘황매산 또랑길’이라 부르는 트레킹 코스와도 연결된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전나무 군락지, 단풍나무 군락지가 만들어져 있어서 한여름에도 서늘한 그늘 사이로 산책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면 황매산의 하이라이트인 철쭉 능선까지 이어지니 수목원을 온전히 돌아보기만 하면, 황매산의 진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합천의 과거를 먹는 시장 풀빵

수목원은 아직도 단장을 계속하고 있으니 앞으로 찾아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듯하다. 기왕이면 황매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자생종 군락지도 오롯이 공개되었으면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역시 대중의 인식 변화가 우선일 테다. 그런 변화가 전제된다면, 우리도 북유럽 못지않은 훌륭한 자연 관광지를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수목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합천읍을 다시 들렀다. 합천읍의 중앙에 자리한 합천왕후시장은 곳곳에 재미있는 먹거리를 많이 숨겨두고 있는데,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은 음식을 만나게 됐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본 ‘풀빵’이라는 두 글자가 시선을 끌기에 들어간 집이었다. 상호가 ‘호남’이기에 주인이 전라도 사람인가 싶었는데, 합천 사람이다. 왜 상호를 그리 정했느냐 물었더니, 사장님 이름이 ‘호남’이란다.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내준 풀빵은 상상을 초월한 음식이었다. 팥죽에 풀빵을 고명처럼 넣고 설탕 한 숟가락 휙 뿌려서 내준다. 풀빵의 모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풀빵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소도 들어있지 않고 그저 밀가루 풀빵 그 자체다. 그러니까 풀빵 안에 단팥 소를 넣는 게 아니라 반대로 단팥죽에 풀빵을 넣어 먹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풀빵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물어보니 예전부터 합천사람들이 먹던 방식이라고. 호남 씨도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가 풀빵 장사를 하고 있었단다. 그걸 그대로 물려받아 지금까지 장사하고 있다.

합천왕후시장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아주 작은 가게지만, 풀빵만 파는 건 아니다. 지역의 어른들이 끼니때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기울이는 공간이다. 막걸리는 양은주전자에 두 통을 따라 넣고 취향에 따라 넣어 먹을 수 있도록 사이다를 한 병 곁들여 준다. 잘 익은 김치와 열무김치만 있어도 한 주전자쯤은 삽시간에 비우고도 남을 분위기다. 운전만 아니라면 다음에는 여유 있게 막걸리도 한 사발 들이켜고 싶은 곳. 나오는 길에 “잘 먹고 갑니다, 호남 씨!”라고 인사를 건네니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꼭 다시 오소.” 정감 어린 저 인사. 저 따스한 웃음 때문에 꼭 다시 가야겠다.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수만 수억 가지다.

팥은 탄수화물,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식재료다. 재배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지만,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만 재배하는 특이한 작물이기도 하다. 팥으로 만드는 팥죽은 흔히 동지에 먹는 음식, 겨울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복날 보양식으로도 즐겨 먹었다. 더운 여름 열독을 소변으로 빼내는 효과가 있어서 여름에 좋은 식품으로 권할 만하다. 팥은 혈당 수치를 낮춰 다이어트식이나 당뇨식으로 적합하며, 이뇨 작용을 도와 몸 안의 독소를 제거하는 데 유용하다. 팥은 이수거습, 해독배농하는 효능으로 신장이 약해져 발생하는 부종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바나나의 4배, 쌀의 10배가 넘는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 체내의 나트륨을 밖으로 배출하는 효능도 빼놓을 수 없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