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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수원으로 길을 나섰다. 일전에 다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픈 마음에 화성의 성곽에 다시 올랐다.

정조가 품은 뜻

장안문 위에 올라서 맞이한 석양, 아직도 그때의 그 찬란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아예 뇌리에 콕 박혀 있다. 밤이 밀려 내려오는 짙은 파란색과 멀리서 사그라지며 몽환적인 보랏빛을 발하던 그 밤. 그리고 그 아래로 빛나던 도시의 야경. 몇 년 전 취재로 2박 3일을 머무르며 보았던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의 그 기억을 품고 수원으로 달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이 성이야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을 만큼 유명한 수원의 자랑이다. 거의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조선의 성. 숱하게 많은 사람이 이 성을 찾고, 성곽을 따라 걷지만 정작 정조가 건축했고, 기중기 같은 실학의 결과물을 총동원해 공기를 단축했다는 것 정도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도다. 처음 이 성을 찾았을 때 가졌던 의문은 이것이었다. 정조는 왜 여기에 성을 쌓았을까?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봐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융릉을 옮기면서 관아를 지금의 화성 행궁으로 이전했고, 이때 성을 쌓아 수도 한양의 남쪽 방어기지로 삼았다는 정도만 나올 뿐이다. 행간에 감추어진 저간의 사정은 여전히 상상력의 영역이다. 실제 화성을 보고 나면 이곳이 단순한 성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실록>을 보면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으려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그 뜻이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이토록 단단하게, 동서남북을 모두 틀어막은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 굉장히 사소한 것까지 기록으로 남겼고, 기록과 결과물이 모두 온전하기에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 무색하게도 화성을 축조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여러 사람이 추정하기로, 화성은 ‘천도’를 위한 결과물이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실제 성의 배치를 보면서, 가면 갈수록 ‘천도’설은 일리 있는 짐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화성의 방어가 남쪽이 아닌 북쪽에 쏠려 있다는 설명은 정조의 그런 ‘깊은 뜻’을 한층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수원에서 북쪽은 한양이다. 정상적인 범주에서라면, 한양은 전국에서 가장 튼실한 방어체계를 갖춘 곳일 테니 구태여 수원에서 북쪽을 그리 두텁게 방비할 이유가 없다. 도리어 왜구가 들끓었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남쪽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조는 장안문 부근에 방어력을 집중했다. 수원의 북쪽, 한양 방면에서 밀려오는 군사를 막겠다는 의도다. 그곳에는 오랑캐나 왜적이 없다. 사도세자를 죽도록 하고 정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 제 목을 쓰다듬으며 눈치를 살폈던 세도가 양반이 있을 따름이다.

자연지형을 살린 난공불락의 성

조선은 ‘신하의 나라’이고자 했다. 처음 건국할 때부터 정도전이 꾀했던 바이기도 하고, 그 뒤로 수백 년이 흘러도 왕의 권력을 견제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신하들이 상당한 힘을 가져가려 했다. 오죽하면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가 궁녀 하나 마음대로 못 뽑게 한다며 엉엉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할까.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건 아니었을 거다. 다만 둘레 5.7킬로미터의 작은 성안을 열십자 모양으로 신작로를 내고, 사통팔달케 한 것을 보면 그는 이 자리에 신도시를 만들어 한양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할 요량이었던 것 같다. 수년에 걸쳐 숱하게 수원으로 행차를 했고, 심지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는 수원 행궁에서 열었다. 이런 면면을 보면서 정조의 마음은 한양이 아닌 아버지가 누워있는 수원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신 그만큼 공을 들였다.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을 책임진 화성은 유사시 성내의 백성이 방어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부족한 면은 성의 기능으로 채우고, 정규군과 백성의 힘만으로도 성을 막아낼 수 있도록 서쪽의 비탈을 살렸다. 화성의 진가는 미리 공부한 뒤에 걸어보면 안다. 구태여 더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아도 지형 그 자체로 철옹성이 완성될 수 있도록 지었다는 걸, 걸으며 직접 보면 몸으로 전해진다.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서장대가 성의 서쪽 산등성이 위에 올라있다는 걸 보면 여실히 드러나니 말이다. 그곳에서는 산 아래 화성은 물론 성 밖의 풍경까지 널리 내다보인다. 적을 보며 군사를 이끌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장안문에서 서장대까지, 혹은 팔달문에서 서장대까지 오르기에도 성곽을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다. 불과 30분여 남짓이면 족하다. 성벽을 넘어 쳐들어오는 적에게만 난공불락이었을 게다. 화성은 그만큼 잘 지어진 성이다.

성 아래 행궁도 생각해 보면 왕궁으로 쓰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경복궁이나 창경궁이 앉은 자리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 시작하기에 규모가 지나치게 크지 않고 백성들의 삶과 가까운 편이라 그네의 삶을 보살피고 함께하려는 왕에게는 적당한 규모와 위용을 갖췄다. 화성의 안팎을 걷고 나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조는 정말 천도를 생각했던 걸까? 그는 이 자리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진정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걸까? 그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으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200년 전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을 이루었다면 어떠했을까. 조선의 미래는 바뀌었을까? 가정이라는 게 쓸모없는 것이 역사라지만,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원에서 맞이한 전라도의 손맛

수원을 갈 때마다 들르는 집이 있다. 인계동에 있는 ‘무등산’이라는 식당이다. 한정식을 주로 하는데, 단품도 주문이 가능해서 생각보다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한 끼를 해결하기에 좋다. 무엇보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장의 손맛이 일품이다. 아직 30대인 김현식 셰프는 이미 10년여 전부터 손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 요리사들 사이에서 요리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요리사들의 요리사’랄까.

오랜만에 그의 식당을 다시 찾았다. 식사 시간이 지난 뒤라 손님이 뜸한 때였다. 정식 메뉴가 있지만, 단품 요리를 시켰다. 보리굴비와 갈비찜, 그리고 간장게장이다. 이 정도만 해도 상이 하나 가득이다. 여행을 함께한 가족에게는 진수성찬. 슬슬 젓가락을 들어본다. 음식을 잘한다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간이다. 짭조름해야 할 것은 소금 간이 적당히 배어야 하고, 슴슴하게 간을 맞춰도 속이 계속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이런 면에서 무등산의 음식은 맛의 기본을 매우 잘 지키는 편이다. 자칫 지나치게 짤 수 있는 간장게장은 간장의 짠맛이 지나치지 않아 좋다. 반면 보리굴비는 밥과 함께했을 때 딱 어울릴 간이다. 굴비의 살은 포슬포슬하고 갈비찜은 질긴 것 하나 없이 연하다.

주요리뿐 아니라 곁들여 나온 반찬도 하나같이 맛깔나다. 톳무침은 특유의 아삭한 식감이 잘 살아 있고, 꼬막은 꼬막대로 나물은 나물대로 저만의 맛을 품었다. 무엇을 함께 먹어도 밥은 두 공기다. 마지막에는 청국장에 밥을 말아 먹는다. 냄새 없이 구수한 맛만 잘 살린 국물이 밥알에 알알이 배어 맛이 배가된다. 역시 이곳은 언제와도 만족스러운 식당이다.

짧은 1박 2일의 수원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갈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수원이지만,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여행지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다시 찾아간 곳들이다. 화성도, 무등산식당의 음식도, 수원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들이다. 베스트셀러는 역시 보고 또다시 봐도 재밌다. 여행지도 그렇다. 화성과 무등산식당은 역시 수원의 베스트셀러다.

게는 칼슘이 풍부한 생물이다. 뼈를 튼튼하게 해 주기 때문에 골밀도를 높이고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좋다. 오메가-3 지방산이 많아서 혈액 순환 개선이나 치매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게의 타우린 성분은 혈당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당뇨를 예방하는 식품이기도 하다. 100그램에 71칼로리의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이기도 해서 다이어트에도 좋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