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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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왜 나만 갖고 그래: 삼시충이 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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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서는 사람 몸속 세 가지 기생충을 삼시충(三尸蟲)이라고 부르고 상시(上尸), 중시(中尸), 하시(下尸)가 각각 그림처럼 생겼다고 보았다. 머리에 사는 상시는 점잖은 신선처럼 생겼고 가슴에 사는 중시는 개나 사자 같은 털북숭이 네발짐승이고 배에 사는 하시는 소머리에 바로 아래에 사람의 우람한 왼쪽 다리가 붙어 있다. 이 기생충들이 사람 두뇌를 조종해서 정신적인 욕심, 식욕, 애욕 등에 빠지게 하고 질병과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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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속 삼시충의 모습 (상시, 중시, 하시)


기생충이 사람처럼 생겼다는 게 웃기지만, 잘 모르는 대상을 일단 인간 형태로 상상하는 관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하다. 꽃의 요정도 사람 형태, 죽음의 신도 사람 형태, 정자 속 호문쿨루스도 사람 형태, 먼 은하계에서 온 외계인도 사람 형태이다. 꽃의 정령이 있다면 식물 모양이어야지, 왜 사람 모양이란 말인가.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인과 핵산 구조도, 단백질 구조조차도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왜 외계인이 사람과 이리 닮았단 말인가. (미지의 대상에 인간을 투사하는 의인화도 인간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삼시충의 생긴 모습을 가지고 비웃지는 말자. 그래도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흥미롭게도 기생충들이 숙주의 행동이나 정서를 바꾼다는 증거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연가시로, 숙주 곤충이 스스로 물가로 가서 익사하게 만든다. 이 모티브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창형흡충도 숙주 개미가 풀의 가장 높은 부분까지 기어가서 다음 단계 숙주인 초식동물에게 잘 잡아먹히도록 조종한다. 쥐가 톡소플라즈마 곤디에 감염되면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도 톡소플라즈마 곤디에 감염되면 반사회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성관계에 개방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또 다른 전래 이야기에 의하면 삼시충은 충동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욕심의 원인이 아니라, 다만 그 행동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옥황상제에게 보고할 뿐이라고 한다. 삼시충에 대한 이러한 관점과 최근 새로 밝혀진 감정의 메커니즘을 연결 지어보면 흥미롭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느낌이 우리가 하는 행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뱀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등골이 서늘하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멀리 도망치게 된다거나, 맛있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식욕을 느끼기 때문에 군침이 돌고 위장이 꿈틀거린다거나.


그런데 이러한 원인-결과는 우리가 강력하게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일 뿐, 사실 공포의 느낌과 위험에 대한 생리적 반응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별개의 기전이다. ‘공포 중추’라는 별명을 가진 편도체를 살펴보자. 두뇌 안의 편도체에 손상을 입은 쥐, 고양이, 원숭이, 인간은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 않고 근육이 긴장되지 않으나, 공포는 느낀다. 공포라는 감정은 편도체가 아닌 다른 부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위협 사건이 의식적으로는 느낄 수 없게 역치 아래의 강도로 미미하게 일어날 경우, 편도체의 감지와 반응으로 손바닥에 땀이 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등 생리적 반응은 일어나지만, 공포는 느끼지 않는다. 편도체는 활동하지만, 공포라는 감정은 못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편도체는 공포 중추라는 이름으로 잘못 불리고 있지만, 사실은 편도체와 의식적인 (자각적인) 공포는 직접 관계가 없고, 편도체는 위협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을 관장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느끼는 느낌은 우리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그저 느낌과 행동이 동시다발적이며 별개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느낌과 행동이 늘 붙어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두려워서 도망치게 된다고) 믿고 산다.


이런 관점에서 삼시충이 충동과 감정을 의미한다면, 삼시충 ‘때문에’ 인간이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쁜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감정은 의식적으로, 거의 같은 시각에 (정확히 말하면 감정은 조금 더 늦게) 각각 일어난다. 감정은 우리가 감지하고 파악할 수 있는 의식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행동의 원인이라는 착각이 일어난다. 하지만 실제로는 행동이 먼저 일어나고 감정적인 설명은 사후적으로 갖다 붙이는 것이다. 삼시충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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