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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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신선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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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內景篇 身形>에는 <양생유찬 養生類纂>을 인용하여 穀氣勝元氣 其人肥而不壽 元氣勝穀氣 其人瘦而壽(곡기승원기 기인비이불수 원기승곡기 기인수이수), 즉 식사량이 자기 양을 넘어서면 뚱뚱해져 오래 못 살고, 식사량이 자기 양보다 적으면 말라서 장수한다고 나와 있다. 또 <동의보감·內景篇 精>에는 精이라는 글자 자체가 米와 靑, 쌀과 푸른 채소를 합쳐 놓은 모양이라고 되어 있다. 주단계(朱丹溪)는 <격치여론·음식잠 格致餘論 飮食箴>에서 입맛대로 과식하여 질병이 마구 일어나고, 산야의 빈천한 사람들은 담박하게 먹으므로 동작이 쇠퇴하지 않고 몸도 편안하다고 썼다. 건강 장수하기 위해서는 채식, 소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마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노화와 장수에 관한 최근 연구들은 건강 장수의 제1원칙이 소식, 채식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그 항노화 기전은 항산화 물질 공급이나 위장 휴식, 디톡스 등이 아니었다.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대응해 ‘번식 모드 중단! 수선 모드로 들어간다!’라는 장수 유전자 (vitality gene)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 건강 장수의 핵심 기전이었다. 우리 몸은 잠깐씩 불편과 결핍이 있을 때 젊어지고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장수 유전자가 있고, 인간에게도 최소 22개의 장수 유전자가 있다.



장수 유전자를 켜고 끄는 기전은?


장수 유전자는 몸에 견딜 만한 위기가 올 때 켜진다. 즉 허기가 지거나, 추워서 오들오들 떨 때나, 숨이 턱에 닿도록 운동했을 때 장수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침 치료가 주는 적당한 스트레스도 역시 장수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것 같다.) 몸에 짧은 위기가 닥쳤을 때 세포 증식을 멈추고 세포 보수와 손상된 DNA 수리를 시작한다.


반대로 열량과 필수 아미노산이 넘치게 들어오고, 기온도 따뜻해서 편안하고, 휴식을 취해서 몸이 늘어지는 때가 계속되면, 세포들은 ‘만사 오케이! 계속 가열차게 세포분열하자!’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멈추지 않는다.


근육을 빨리 키울 때 먹는 단백질 보충제는 ‘아주 좋아, 수리는 나중에 하고 계속 세포분열해.’라는 신호를 준다. 편하게 바로 쓸 수 있는 단순 당 (simple sugar)도 마찬가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제때 수리해야 하는 부분을 계속 미루면서 건물을 증축하는 셈이다. 그러면 당연히 부실한 부분이 생긴다. 쉴 새 없이 세포분열을 하면 수리, 보수하지 못해 부실 공사가 계속 누적된다. 이 누적된 부실 공사가 바로 노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라는 말이 있다. 그물 낚시를 할 때 중간중간 그물을 수선해야 하는데, 생선이 너무 많이 잡히는 나머지, 그물눈, 그물코를 뜨개질로 수선할 새도 없이 바쁘다는 뜻이다. 그러면 결국은 그물이 다 상해서 찢어지고 말 것이다. 상황이 좋다고 ‘고기’를 계속 잡다가 그물이 다 상하는 경우가 우리 몸이 ‘수리는 나중에, 일단 몸집 불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반면 배부른 정도의 70% 이하로 먹고, 육류, 달걀, 유제품, 어류에 많은 메티오닌 (methionine), 아이소류신 (isoleucine), 발린 (valine), 류신 (leucine) 등 조건부 필수 아미노산을 줄이고 채식하면 좋은 스트레스가 되어 장수 유전자를 켠다. ‘지금은 조건이 좋지 않다. 증축을 멈추고 전체 점검 수리에 들어갈 시간이다.’라는 신호를 몸에 주는 것이다. 수리를 철저하게 할수록 우리는 건강하게 장수한다.



장수 유전자를 끄는 조건들은 무엇일까?


주단계가 말했듯 산해진미를 실컷 먹는 즐거움은 건강 장수와는 거리가 멀다. 미운 고령자를 은밀하게 살해하는 완전범죄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산해진미를 대접하라. 그리고 다음 끼니도 또 산해진미를 대접하라. 그다음 끼니도 또 산해진미..... 많이 드시라고 자꾸 권하라. 메뉴를 바꿔서 단맛, 짠맛, 새콤한 맛, 매운맛 등으로 자꾸 권하면 더 과식하게 되어 있다. 술과 함께 권하면 30% 정도 더 과식하게 된다. 몇 끼만 심하게 과식해도 고령자의 건강은 현격히 나빠진다. 심근경색 확률도 엄청나게 올라간다. 과식으로 식체가 생겨 며칠 잘 움직이지 못하면 바로 관절이 뻣뻣해지고 그러면 더 활동이 어려워지고 곧 연쇄 반응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왔던 기능들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나는 농담 삼아 이를 high 폭식 damage라고 부른다.)


파라다이스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햇살이 눈 부신 따뜻한 바닷가를 상상한다. 인류 공통이라고 한다. 체온 유지가 필요 없는 범위의 기온 (thermoneutral zone)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진다. 또 푹 늘어져 쉬는 것이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휴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장수 유전자가 켜지지 않는다.



건강 장수를 위한 조건들


제1원칙은 채식 위주의 소식이다. 다른 생물들과 미래세대를 위한 옳은 식사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옳은 식사이기도 하다. 가벼운 간헐적 단식은 우리 몸에 이로운 수준의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즉 영양실조 없는 열량 제한, calorie restriction without malnutrition이 필수적이다. 배불리 먹는 양의 70%만 먹는 것이 좋은데, 항상 소식하기 어렵다면 그저 간간이 절식만 해도, 역시 건강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다고 밝혀져 있다. 늘 소식해도 좋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칼로리를 확 낮춘 절식을 해도 좋고, 한 달에 5일 정도 절식을 해도 좋다. 색깔 선명한 채소, 과일에 좋은 성분들이 많으므로 제철의 신선한 채소, 과일을 섭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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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가 절대 죽지는 않는 수준 (hypoxic brain damage가 오지 않는 수준)에서 아주 살짝 잠깐 허혈을 일으키면 장수 유전자를 켜게 된다. 격렬하게 운동하고 숨이 차서 헐떡헐떡할 때가 바로 이 짧은 허혈 상태이다.


짧은 허혈 상태를 겪어두는 것이 중풍이 왔을 때 뇌 손상을 예방하고 뇌뿐만 아니라 여러 장기를 보호하는 효과 (Ischemic postconditioning)가 있다거나, 운동할 때 근육이 겪는 짧은 저산소 스트레스 (hypoxic stress)가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압이나 폼롤러 마사지도 꽈아악 누를 때 그 부분의 근육이 눌리면서 국소적으로 잠깐 허혈 상태가 되었다가 새로운 혈액으로 채워진다. 부항도 짧은 허혈을 일으키는 기전으로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이 짧은 허혈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루 10분~30분이면 충분하다.


온화한 온도에서만 지내지 말고, 가끔 덜덜 떨릴 정도로 (단, 저체온증은 오지 않을 수준에서!) 추위를 견디는 것이 좋다. 추운 계절에는 춥게 지내고 이불도 얇게 덮는 게 좋다. 추운 날씨에 숨이 헉헉 차는 운동을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가끔 뜨끈한 사우나나 목욕을 하면 좋다. 단, 뜨끈한 자극은 단지 보조적일 뿐이고, 추위를 견디는 것이 더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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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추위, 힘든 운동은 가까이한다면 멀리할 것은 또 무엇일까? 담배, 매연, 플라스틱 용기, 미세 플라스틱, 살충제, 중금속, 방사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해 인자들은 당연히 다 피해야 한다. 방사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행도 멀리해야 한다.


전통적인 도교 양생술에서는 소식, 채식이란 대원칙은 옳게 제시했지만,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은 권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릿느릿 느긋하게 움직이라고 가르쳐왔다. 아마도 과거에는 산에서도 동력 없이 도보로 이동하고 생존을 위한 노동을 힘겹게 해야 했으므로, 건강 장수를 위한 힘겨운 신체 활동의 최소량을 채우기 쉬웠을 것이다. 즉 ‘신체 활동이 너무 힘듦’이란 극단으로 치우쳤고, 반대로 너무 몸을 안 움직이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으므로, 고강도 운동의 효과를 딱히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 몸을 안 움직이는 일부 귀족들은 과식으로 인한 악영향도 동시에 보였을 테니, 신체 활동이란 인자만 따로 관찰할 경우가 없었을 듯하다. 또한 적당히 추위를 견딜 때의 건강증진 효과 역시 시대의 한계로 관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충분한 옷, 단열재와 난방이 부족한 시대에서 혹독한 추위에 살아남는 것이 과제였으니 (오죽하면 대표적 원전의 이름이 <상한론 傷寒論>이겠는가), 일단 덜 춥게 지낼수록 더 건강하다는 부분적 결론만 도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천적으로 부모에게 받은 精의 양이 장수에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요새의 일란성 쌍둥이 연구 결과 유전자는 장수에 겨우 10~25% 정도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타고난 精의 총량에 연연하지 말자. 精은 매일 갈고닦는 것이다. 精의 실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딱 하나를 찍으라면 장수, 활력 단백질인 시르투인 (sirtuin) 단백질이라고 말하고 싶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