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 포항에 살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재작년 경주에 이어 작년 포항 지진을 경험했습니다. 그날 이후 땅이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과 약간의 자극에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어지럼증이 지속됩니다. 부모님이 오사카에 거주하고 계셔서 이번 규모 5.9의 지진 소식에 괜찮으실까 걱정도 되는데요, 한의학으로 이런 트라우마와 지진 후유증 치료가 가능한가요?
  • 작성자 :  대구한의대포항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상호 교수 등록일 :  2018-06-21 조회수 :  3,309

  • Q: 포항에 살고 있는 40대 가장입니다. 재작년 경주에 이어 작년 포항 지진을 경험했습니다. 지진 당시 사무실의 집기가 넘어지고 벽에 있던 유리액자가 깨져 너무 놀라 급하게 대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특히 저희는 아파트 20층 고층에 살고 있어, 지진 당시 집에 있던 아내와 어린 딸이 혼비백산하여 계단을 통해 대피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땅이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과 약간의 자극에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어지러운 증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또 작은 충격이나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자다가 깨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저희 아이도 불안이 부쩍 심해져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고 엄마하고만 있겠다고 해 한 달 넘게 유치원을 휴원하기도 했답니다. 지진 이후로는 아이가 잠도 깊이 못 자고 잘 깨고 보챕니다. 게다가 현재 부모님이 오사카에 거주하고 계셔서 이번 규모 5.9의 지진에 많이 놀라셨을까 걱정도 되는데요, 한의 치료로 이런 트라우마와 지진 후유증 치료가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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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지진 트라우마 혹은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물론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불안’이며 심장 두근거림과 더불어 상열감, 손발 떨림, 깜짝깜짝 놀라는 것과 같은 자율신경계 항진 증상입니다. 두 번째로 호소하는 신체 증상은 바로 ‘어지럼증’입니다. 지진 자체가 땅이 흔들리는 현상으로 가장 흔히 나타나는 특징적인 증상입니다. 환자분은 지진을 겪은 후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발생하였고, 흔들리는 느낌이 자주 지속되어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불면증’입니다. 지진 이후 불안 때문에 잠을 깊이 못 주무셨고, 원래 있는 불면증이 더 심해진 환자분들이 많았습니다.


    지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며, 만약 한밤중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강진이 생긴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지진을 경험하면 당연히 잠이 들기가 힘들고 깊은 잠을 자기 어렵습니다. 저자도 자는 중에 지진이 발생해 천장 등이 깨져 가족을 덮칠까 봐 안방 천장 등을 일부 빼놓기도 했습니다. 어떤 환자분은 본인이 키우는 고양이가 지진으로 안절부절못해서 이 때문에 불면증이 심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진 트라우마나 후유증으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은 지진으로 발생한 심한 불안이 지속되기보다는 평소 가지고 있던 불면이나 불안, 어지럼증, 통증 등이 심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급한 순간에 혼자 있을 때나 의지할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더 무서움을 느끼며 불안에 취약해집니다. 또한 지진으로 이재민이 되어 단체생활을 하는 경우 장기간 체육관에 좁은 텐트에서 생활하느라 기존 통증이나 감기, 기침 같은 호흡기 질환이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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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증상의 경우는 수차례의 치료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안정되겠지만, 심각한 정도의 불안 장애로 악화되거나 기간이 2주 혹은 4주 이상 지속되어 지진 후유증으로 연결된다면 적극적인 상담과 한의 치료가 필요하겠습니다.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대형 재난사고를 구호하기엔 인력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또한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사용되는 정신과 약물인 항불안제 및 벤조디아제핀 (benzodiazepine)계 수면제, 항우울제 등은 부작용뿐 아니라 약물에 대한 의존이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트라우마의 한의학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근거가 있으며 특히 한약이나 침 치료는 정신과 약물 치료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의존성이 없으며 다른 치료와 병행하여 치료받기 편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먼저 PTSD를 치료하는 한약의 효과에 대해 전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살펴볼까요? 우리와 가까운 일본 동북부에 있는 국립 센다이니시타가병원 (仙台西多賀病院)에서 시행한 한약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동일본 대지진 생존자 중 IES-R (사건충격척도) ≥ 25에 해당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래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시험군은 시호계지건강탕 (柴胡桂枝乾薑湯)을 2주간 1일 3회 투여하였으며, 대조군은 연구 기간 동안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고 대기하였습니다. 2주라는 단기간의 치료 후 IES-R의 총점을 비교했을 때 한약을 복용한 시험군에서는 대조군에 비해 불안 및 반복되는 외상의 떠오름, 회피반응 등을 매우 뚜렷하게 개선했으며, 부작용이나 혈액검사 결과 이상 소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


    중국 상해장정의원 (上海長征醫院)에서는 2008년 규모 8.0의 쓰촨 대지진 생존자 중 PTSD 환자에게 한약을 투여한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한약 복용군 123명은 한약 소담해울방 (消痰解郁方)을, 대조군은 플라시보 한약을 모두 하루 2번씩 총 8주간 복용하였습니다. 전반적인 심리상태를 보는 SCL-90-R (증상체크척도) 상 한약 복용은 환자들을 크게 안정시켰고, 치료 반응률에서도 환자들은 플라시보 한약 복용 환자에 비해 훨씬 더 좋아졌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한약 복용 환자는 불안뿐 아니라 수면상태도 좋아졌으며, 심각한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2].


    2016년 국내 발표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 대한 중의학 임상연구 동향' 연구에서 180편의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결과, PTSD 환자에게 한약뿐 아니라 일반침, 전기침, 이침 및 침과 뜸의 병행 치료, 심리 치료와 침의 병행 치료 등 다양한 한의학 치료가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의학 치료는 PTSD 환자에게서 위약보다 유의미하게 더 좋은 효과를 보이며, 양약 치료군과 비교 시 효과가 비슷하거나 더 좋다는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만약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계신다면 한의학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양약 단독 사용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3].


    특히 침 치료는 통증에만 효과적인 게 아니라 불안, 우울, 불면, 중독 등 다양한 정신 장애 치료에 널리 활용됩니다 [4]. 전 세계적으로 PTSD에 침 치료가 많이 활용되는데, 2013년 발표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침 치료 효과의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총 4개의 임상연구에서 543명의 PTSD 환자를 분석했습니다. 검토 결과 침 치료는 인지행동 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보였으며, 인지행동 단독 치료보다 침 치료를 병행할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유의하게 개선시켰습니다 [5].


    2014년 발표된 미국 오리건주 국립자연의학대학 보건과학대 연구팀의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 중 포함된 33개 연구의 1,329명 자료를 검토한 결과에서 침 치료가 최면, 명상, 심상요법과 함께 PTSD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양질의 근거를 볼 수 있습니다 [6].


    또한, 전투 경험은 지진만큼 견디기 힘든 트라우마인데요, 참전 군인들의 PTSD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2001년에서 2008년 사이에 160만 명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되었고, 무려 약 20% (약 32만 명)나 되는 군인이 전투 경험으로 인한 PTSD로 진단되었습니다. 군에서의 치료 역량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침은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이며 활용가치가 높은 치료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5명의 미 육군 참전용사에게 이침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치료 결과 이침 치료를 받은 군인들은 불면척도인 PSQI (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와 PTSD 척도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Check List - Military Version; PCL-M)가 전반적으로 호전되었습니다 [7]. 즉 수면을 개선하고 PTSD의 증상 또한 개선한 것이죠. 비록 소규모 연구이지만 PTSD에 흔히 쓰는 치료 방법인 트라우마에 대한 노출 치료를 하지 않고도 이침을 통해 치료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침 치료는 PTSD 예방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임상에서는 일반침에 전기 자극을 더한 전기침 치료가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 많이 활용됩니다. 이런 침 치료는 정신과 약과 병행할 수도 있는데 함께 치료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2011년 중국에서 발표된 전기침에 대한 연구를 보면, 30명의 PTSD 환자는 양약과 함께 전기침 치료를 받고, 30명의 환자는 그냥 양약만 복용하였습니다. 8주간 치료한 결과 전기침 치료를 병행한 환자가 양약만 복용한 환자에 비해 뚜렷하게 호전되었습니다 [8].


    PTSD 환자에게 자주 사용하는 혈자리는 '백회 (GV20), 사신총 (EX-HN1), 신정 (GV24), 풍지 (GB20), 신문 (HT7), 내관 (PC6), 태충 (LR3), 삼음교 (SP6)' 등입니다. 위의 혈자리에 대한 침 치료는 임독맥과 간에 뭉친 기운을 소통시켜 정신을 안정, 이완시키고 불안과 관련된 신체 증상을 치료해줍니다. 침 치료가 어렵다면 이런 혈자리를 꾹꾹 지압해주는 것도 불안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정확한 혈자리는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 표준경혈 DB (링크 바로가기 클릭) 를 참고하시면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PTSD로 힘들다면 전문 한의사의 따뜻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이정변기요법, 경자평지요법, 오지위상승위요법 같은 전문적인 한의학 정신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의료보험 혜택도 가능합니다. 또한 PTSD에 효과적인 한방정신요법과 트라우마 심리 치료의 최신 경향인 마음챙김 기반의 하코미 세라피, 명상, 현대 심리 치료기법 및 임상 상담 장면에서 활용되는 기법이 접목된 한의 심리 치료 4단계 프로그램도 개발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환자들의 삶의 질과 마음챙김 척도가 개선되었고 불면, 불안, 화병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9].


    트라우마 치료는 급성기인지 후유증과 같은 만성기인지에 따라 다소 달라질 것입니다. 급성기에는 불안 및 불안과 관련된 신체 증상을 안정시키는 한의 치료가 중요하며 침 치료를 통해 신체 증상을 빠르게 완화시키고 불안한 심리에 대한 한의사의 따뜻하고 지지적인 상담이 필요하겠습니다. 급성기 이후의 후유증 상태라면 체질별로 호소하는 증상에 따라 지속적인 한약 및 침 치료가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유념해야 하는 증상은 어지럼증과 불면증, 그리고 기존의 통증과 같은 증상입니다. 일상생활에 적극적으로 복귀하여 활동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호흡이나 명상법을 지도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만약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트라우마의 정도가 심하고 일상생활이 어렵다면 이정변기요법이나 경자평지요법 같은 적극적인 한의 정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의뢰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지진은 인간이 경험하는 트라우마 중 가장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더 이상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각종 재난으로 트라우마를 겪으시게 된다면 한의원을 찾아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따뜻한 한의 치료를 통해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References


    [1] Numata T, Gunfan S, Takayama S, Takahashi S, Monma Y, Kaneko S, Kuroda H, Tanaka J, Kanemura S, Nara M, Kagaya Y, Ishii T, Yaegashi N, Kohzuki M, Iwasaki K. Treatment of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using the traditional Japanese herbal medicine saikokeishikankyoto: a randomized, observer-blinded, controlled trial in survivors of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and tsunami. Evid Based Complement Alternat Med. 2014;2014:683293. doi: 10.1155/2014/683293.


    [2] Meng XZ, Wu F, Wei PK, Xiu LJ, Shi J, Pang B, Sun DZ, Qin ZF, Huang Y, Lao L. A chinese herbal formula to improve general psychological status in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 randomized placebo-controlled trial on sichuan earthquakesurvivors. Evid Based Complement Alternat Med. 2012;2012:691258. doi: 10.1155/2012/691258.


    [3] 최유진, 권찬영, 장재순, 정하영, 김윤나, 정선용.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치료에 대한 중의학 임상연구 동향.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16;27(3):197-206. doi : 10.7231/jon.2016.27.3.197.


    [4] Hempel S, Taylor SL, Solloway MR, Miake-Lye IM, Beroes JM, Shanman R, Booth MJ, Siroka AM, Shekelle PG. EVIDENCE MAP OF ACUPUNCTURE FOR MENTAL HEALTH in Evidence Map of Acupuncture. Washington (DC);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US): 2014 Jan.


    [5] Kim YD, Heo I, Shin BC, Crawford C, Kang HW, Lim JH. Acupuncture for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 Systematic Review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and Prospective Clinical Trials. Evid Based Complement Alternat Med. 2013;2013:615857. doi: 10.1155/2013/615857.


    [6] Wahbeh H, Senders A, Neuendorf R, Cayton J.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for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Symptoms: A Systematic Review. J Evid Based Complementary Altern Med. 2014 Jul;19(3):161-75.


    [7] Cronin C, Conboy L. Using the NADA protocol to treat combat stress-induced insomnia: A pilot study. J Chin Med. 2013 Oct;103(103):50-6.


    [8] Chen J, Feng B, Liu LY, Zhang Y, Chen FL, Wang PL, Chen WS. Clinical Study of Electro Acupuncture Treatment for Patients with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s (穴位刺激调控法治疗创伤后应障碍的临床研究). Zhejiang J Tradit Chin Med. 2011:480-2.


    [9] 김진형, 서주희, 이고은, 김남권, 최성열, 유영수, 강형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한방정신요법 기반 심리치료 개발 및 예비적 임상시험.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15;26(1):49-61. doi : 10.7231/jon.2015.26.1.049.


     대구한의대학교 부속 포항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