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방진단의 길잡이

편작(扁鵲)의 일화를 보면, 그가 신비한 약을 먹고 사람의 내장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난경(難經)』에서는 “환자를 보기만 하고서 병을 알아내는 것을 ‘神’이라고 한다(望而知之謂之神).”고 하였다. 이는 망진(望診)이 한의학 고유의 진찰 방법인 사진법(四診法) 중 최우선임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정말 望診으로 진단이 가능한지, 어떻게 하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해야 그러한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변증방약정전(辨證方藥正傳)』의 저자인 李尙和 선생은, 편작이 신비한 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오장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그가 신비한 약을 복용해서 그런 신통한 능력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지, 신기한 방법이 아닌 망진으로 확연하게 알아낸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였다. 구한말 당대 최고의 명의였던 분의 말씀이 이러하다면, 망진이 그리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방법은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까닭에 望診法을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하여 임상에 적용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望?聞?問?切 등 四診法에 관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는 데는 몇 가지 물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첫째, 꼭 망진이 필요한가? “외부에 상응하여 나타나는 증상을 관찰하여 그 내장의 변화를 예측하면 발생하는 질병을 알 수 있다.”고 하였고, “보아서 아는 것을 神이라고 한다.”고 하여 四診 중에서 望診을 최고의 경지로 보았으며, “제일 먼저 환자의 神?氣?色을 살펴야 하고, 色의 潤과 枯, 形의 肥와 瘦, 일상생활의 행동(起居動作)과 수면상태 등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望診이 진단에서 필수불가결한 방법인 데다가 모든 진찰 방법 중 가장 우선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의학 진찰 방법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觀形察色이다. 이렇듯 진찰 방법에서 望診을 제외하고 어떻게 온전한 한의학을 구현할 수 있겠는가!
둘째, 주관적인 감각(五感)을 통해 이루어지는 望聞問切의 四診法이 진찰 방법으로서 얼마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이는 醫者의 五感을 통한 이러한 방식이 진단학적으로 객관성과 보편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 방법이 진찰자의 주관적인 감각을 사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주어진 감각자료를 인식하는 과정에 객관성을 보장해주는, 즉 동일한 보편성을 갖는 공통주관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望診法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사람은 두 눈과 마음의 靈明함으로 모든 것을 추측하고, 나의 氣와 神, 理로써 세상을 증험한다. 또한 인간은 天地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그 과정에서 인체 내부의 변화가 외부로 나타나므로 그 외부를 살피면 내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눈과 정신으로 인체를 살피는 望診法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인간의 인식론 문제이므로 진단학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넷째, 望診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의 형체와 정신, 태도, 움직임, 표정, 감정, 얼굴색 등을 일일이 글로써 묘사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를 글로 풀어쓸 때 그 표현이 비록 낯설고 거칠더라도, 그 시도를 통해 좋은 내용을 축적해가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望診法(四診法)은 한의사의 손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어설픈 시도일지라도 과감하게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20세기 이후 한의학에는 새로운 치료법이 많이 등장했고, 또한 치료율 상승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에 비해 전통적인 한의학 진찰 방법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다소 미흡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사회 환경 등의 이유로 한의학이 위기라고 말하지만, 한의사들이 한의사 본연의 모습에서 멀어진데서 이러한 위기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한의사라면 환자가 말해주지 않아도, 원래 당신이 어떠한 특성을 갖고 태어났는지, 과거에 어떠했는지,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내어, 한의학이 아주 매력적인 학문이고 뛰어난 의술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환자들이 한의사에게 바라는 것 또한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의사는 환자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니고서 환자를 감동시키고 감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임상가는 한의학적 이론과 임상을 모두 갖추고 실전에 적용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환경이 도제식 교육법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강의식 수업으로 진행되어 보다 폭넓은 이론수업은 들을 수 있는 반면, 훌륭한 임상가가 되기 위한 실무를 배우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이는 마치 외과의가 되려는 사람이 수술법을 강의로만 익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고전에 나타난 한의학 진찰법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기술?설명함으로써 이를 임상에 쉽게 적용시킬 수 있도록 架橋 역할을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는 진찰 방법뿐만 아니라 진찰의 요점, 임상실례, 환자와의 대화내용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한의사들이 보다 쉽게 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책을 완성해가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자칫 책의 내용이 너무 상업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두려운 생각이 앞섰다. 책 내용 중에도 언급이 되었지만, 名醫가 되기 위해서는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裏面까지도 살필 수 있는 慧眼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풍부한 임상 경험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를 대하는 醫者의 마음이다. 醫者가 진심으로 환자를 대할 때에야 비로소 慧眼이 생기고, 以心傳心으로 환자가 마음을 열어 感動을 통한 感化가 이루어질 것이다. ‘先義後利’라는 말처럼, 醫者는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고 맑은 平常心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함을 꼭 강조하고자 한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