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만필- 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
  • 카테고리
    한의학, 한의학/의약학 전공서적
    저자

    이수귀 (지은이) | 신동원 | 오재근 | 이기복 | 전종욱 (옮긴이)

    출판사
    들녘
    페이지
    반양장본 | 768쪽 | 230*170mm | 1235g
    ISBN
    9788975277009
    출판일
    2015-06-05
    링크

조선 의학사의 6대 의서로 꼽을 가치가 있는 책

“조선 후기 어의가 정승에서부터 노비까지 다수 진료한 기록이 있다.”

한문학자가 처음 찾아낸 한 권의 책이 알음알음 소문으로 번져나가다가 마침내 조선의학사 연구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역시만필』! 조선의 어의를 지냈던 이수귀가 자신이 두루 시험한 것[歷試]을 임상 에세이[漫筆] 형식으로 남겨놓은 책이다. 제목에 의학 관련 내용을 암시하는 자구가 없어 그동안 의학사 연구자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다가 몇 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마침내 세상에 빛을 내보이게 되었다.
『역시만필』은 한국 의학의 역사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할까?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 『방약합편』, 『동의수세보원』과 함께 조선 의학사의 6대 의서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책이다. 임상 실천의 모습이 이처럼 잘 드러나 있고, 환자의 성별, 출신, 경력이 밝혀져 있어 사회적 성격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은 한국 의서 중에 따로 없다. 저자 이수귀는 영조 때 어의를 지냈던 인물로, 빼어난 필치로 자신이 임상에서 겪은 구체적 경험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렇기에 『동의보감』 같은 교과서에서 생략된 임상 운용의 비밀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수귀와 『역시만필』

이수귀(李壽龜, 또는 이수기)는 1664년 서울의 천안이씨 가문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전문기술직 의관으로 출사한 뒤 18세기 전반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의업에 종사했다. 서울과 경기도, 황해도 지역에서 중앙관료, 지방관료 혹은 좌막으로 일하거나, 사적인 영역에서도 의료 활동에 종사하면서 여러 문인 및 관료들과 교유했다. 위로는 정승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다양한 환자를 진료했던 이수귀는 기술직 중인 가문 및 관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었고, 의료를 매개로 형성된 환자-의사 연결망의 중심 고리였다. 특히 홍세태(洪世泰), 정래교(鄭來僑), 이현(李?,), 최이태(崔爾泰), 이수장(李壽長) 등으로 대표되는 여항 문인들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역시만필』은 서울특별시교육청 종로도서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필사본 고문헌이다. 1915년 4월 1일자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 직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도서관에 입수된 듯하다. 승지를 지낸 이성룡(李聖龍)의 서문이 붙어 있고, 그밖에 오광운(吳光運)의 『약산만고(藥山漫稿)』에 실린 발문과 홍현보(洪顯普)의 『양재만필(量齋漫筆)』에 실린 또 하나의 서문을 통해 『역시만필』의 성책 과정을 추정해낼 수 있다.
『역시만필』은 얼핏 한 의원이 자신의 위업을 현시하기 위해서 낯선 전문용어들을 동원하여 “모씨(某氏)의 모병(某病)에는 모약(某藥)을 써서 효과를 보았다는 경험담”의 모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만필』은 조선 후기 의학이 실제로 작동되는 생생한 모습을 담아낸, 의료와 관련하여 당시의 사회문화사와 생활상을 읽을 수 읽는 귀중한 사료이다. 의학 실행의 관점에서 볼 때, 『역시만필』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동의보감』의 실전편”에 해당한다.
표제에서 보이는 “역시(歷試)”란 용어도 단지 경험만이 아니라 “고방(古方)”을 누누이 시험해서 체화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시만필』에 등장하는 의안은 대부분 18세기 전반의 치험 사례들인데, 이때는 『동의보감』(1613)이 출간된 지 100여 년이 지나고 그 의학적 성과가 임상에 배어날 즈음이었다. 또한 18세기 전반은 여항문학운동이 발흥하는 등 기술직 중인들의 기예가 높아지고 자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지적 분위기에 가까이 있었던 이수귀가 자신의 전문가적 기예를 드러내고 바람직한 의사상을 제시하면서 자신을 전문지식인으로 차별화하려는 자의식을 드러낸 것이 바로 『역시만필』이다. 이 외에도 『역시만필』은 기타 여러 분야에서 독자의 상상력과 탐구심을 유발하는 흥미로운 자료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구성

『역시만필』은 한편의 의료 사극을 보는 듯, 짜릿한 반전의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조선 시대에는 질병의 치료 과정이 오늘날처럼 의사에서 환자에게로 진행되는 일방적인 통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치료 선택의 주체는 환자(집안) 쪽이었다. 『역시만필』에는 태의, 내의원 수의, 지방 의원, 유의(儒醫), 무당, 산파 등 여러 의료 관계자들이 등장하여 환자의 몸을 두고 한판의 승부를 벌인다. 질병에 대한 이해와 진단, 처방에 대한 견해가 때로 격렬한 대립을 낳아 환자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이수귀의 전문가적 식견이 크게 빛을 발한다. 이수귀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고방(古方)에 두루 능통했고, 이를 환자 개개인에 맞추어 창의적으로 해석, 치료해내는 최고급 실력자였다.
이 책의 공역?공저자들은 『역시만필』의 바로 이런 실전성에 주목했다. 4인이 모여 3년간 독회와 번역?저술 작업을 진행해오면서 두 가지 사항을 목표로 삼았다. 첫째, 어려운 한의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둘째, 한의사가 아닌 일반 독자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낸다.
이를 위해 먼저 원문을 번역한 뒤 130개의 임상 사례가 순서 없이 모여 있는 『역시만필』을 현대의 독자에 맞게 재구성했다. 전체를 열두 마당으로 나누고 현대 독자들과 관련이 깊은 질병서부터 배열했다. 화병(스트레스), 성관계 질환, 소화계 질환, 암이나 당뇨와 같은 난치병 등이 앞에 나서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어 <풀이>에서는 임상 케이스의 내용 파악을 돕기 위한 해설과 의학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담아냈다. 조선 시대의 일상적 삶에 밝지 못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또한 각종 약재와 약제, 지금과 다른 이름으로 불렸거나 유사한 질병들, 중세적 신분 질서 속에서 치병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세한 풀이를 달았다.
<처방>에서는 『역시만필』에 등장하는 모든 처방의 유래를 『동의보감』과 여러 의서로부터 찾아 같이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자료들을 한군데 모은 것이다. 또한 전문적인 독자를 위한 해제 작업을 <부록>으로 덧붙였다.
저자들이 뜨겁게 희망하고 있듯이, 옛 전통이 오늘날의 의학으로 활발하게 살아나고, 의학사 연구가 옛것의 정리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 의학의 가교 구실을 하는 학문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