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의보감,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두 권으로 기획된 <동의보감> 안내서 중 첫 번째 책. <동의보감>을 구성하는 다섯 편 중 내경편을 다루고 있다. 내경은 몸 안의 풍경을 뜻하는데, 오장육부를 비롯한 여러 장기의 모습을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내부의 기운은 외형과 연결되고 이런 연결체인 몸은 다시 외부와 상응하며, 결국 몸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득하는 것이 <동의보감>의 인체관이자 생리와 병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다.

저자는 <동의보감>을 몸과 병, 마음과 정신,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색다른 창구로서 제안한다. 한의학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양생이 치유의 근본이라고 했다. 양생은 병의 치료보다 병의 예방을 우선시하는 의학적 입장이며, 예방에 수양만 한 것이 없다 함은 일상을 잘 관리하라는 윤리적 입장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철학은 물론 우주론으로까지 확장되는 직관적 논리를 몸의 생리와 직결시킨다.

양생은 일상을 낯설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어제와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오늘을 만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치유는 그 부단한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열매다. 저자는 이러한 의철학적 입장이 오늘날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과 원인불명의 마음병, 관계의 고립 등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지혜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 책에 대한 상세 소개

임진왜란 이후 백성을 위한 관찬 예방 의학백과로 기획되었던 「동의보감」
500년 전 편찬 동기와 의학정신이 집대성한 동아시아 의학의 정수
지금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으로 우뚝 서다

「동의보감」을 제대로, 그리고 새롭게 읽다

누군가는 철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철학화를 이야기하고, 또 일군의 비전공 과학 애호가들은 어렵디어려운 현대물리학을 공부하는가 하면, 상대성이론이 수학적으로 유도되는 과정을 이해해보려고 애쓴다. 인문학의 시대, 배움에 장애물은 없다. 인문학은 자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자가탐구의 학문으로 재정의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동의보감」을 몸과 병, 마음과 정신,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색다른 창구로서 제안한다. 「동의보감」의 경우라면 ‘보편지식으로서의 (한)의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보편지식으로서의 (한)의학은 의술로서가 아니라, ‘양생술(養生術)’로서여야 한다. 양생은 입산수도하는 자들의 신선술이 아니다. 선조가 태의 허준을 불러 의서의 편찬을 명하면서 했던 말을 보자.

“근래 중국의 의학서적들을 보니, 모두 자질구레해서 보기에 탐탁치 못하다. 그러니 여러 의론과 처방들을 모아 한 책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 또한 사람의 질병은 모두 조섭(調攝)을 잘못하는 데서 생기므로 수양(修養)이 우선이고, 약과 침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 여러 의론과 처방들은 번다하니, 그 요점을 가리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궁벽한 마을에는 약이 없어 요절하는 사람이 많고, 우리나라에는 향약(鄕藥)이 많이 생산되나 사람들이 알지를 못한다. 그러니 향약의 이름을 분류하여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 「동의보감」 서문 (본문 17쪽)

양생은 병의 치료보다 병의 예방을 우선시하는 의학적 입장이며, 예방에 수양만 한 것이 없다 함은 일상을 잘 관리하라는 윤리적 입장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한의학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양생이 치유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러한 의학관은 ‘천인상응’과 ‘음양오행’이라는 사상적 원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양생은 자연철학은 물론 우주론으로까지 확장되는 직관적 논리를 몸의 생리와 직결시킨다. 저자는 바로 「동의보감」에 구현된 이러한 의철학적 입장이 오늘날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과 원인불명의 마음병, 관계의 고립 등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지혜라는 점에 주목했다.

몸에 대한 인식의 우선순위, 「내경편」

이 책은 두 권으로 기획된 「동의보감」 안내서 중 첫 번째 책이다. 독자들이 이 한 권의 책으로 원전의 원문을 충분히 접하게 하고, 저자의 해설을 덧붙여 의학고전인 원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완독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해서 「동의보감」을 구성하는 다섯 편(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 모두를 이 책 안에 다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섯 편 중 하나인 「내경편」만을 다루지만, 「내경편」이 「동의보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한 편 이상에 필적한다.

「동의보감」에서는 몸을 세 가지의 단계로 인식한다. 즉 ‘몸 안의 풍경’, ‘육체의 형상’, ‘관계 속의 존재’다. 허준은 이 세 단계를 순서대로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이라 이름 붙이고 「동의보
감」의 골격이 되는 큰 목차로 세웠다. 이외에도 「탕액편(湯液篇)」과 「침구편(鍼灸篇)」이 더 있지만, 이 두 편은 약의 종류와 침법을 설명해 놓은 부분으로 성격상 부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본문 24쪽)

「동의보감」의 체제의 우수성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동의보감」이 250여 권에 이르는 역대 의서들을 인용하여 편집한 편저임에도 저작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허준이 세운 편제는 그저 형식적인 순서가 아니라, 그의 의학관이 엄정하게 반영된 결과다. ‘내경(內景)’은 몸 안의 풍경을 뜻하는데, 오장육부를 비롯한 여러 장기의 모습을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해부학적 구조라기보다는 내부의 장기와 외형(「외형편」에서 다루는)이 관계하고 있는 기운의 회로라고 할 수 있다. 인체 내부(주로는 오장육부)의 기운과 외부의 형상은 서로 긴밀히 연락하는 관계라는 뜻이다. 또한 질병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잡병편」이 시작된다.

내부의 기운은 외형과 연결되고 이런 연결체인 몸은 다시 외부와 상응한다. 이런 식으로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을 배열하면 몸의 안쪽으로부터 바깥을 향하는 구도가 생긴다. 그러나 몸이 외부와 접속하면서 일어나는 감정, 음식 섭취, 외사의 침입 같은 사건은 다시 내경에서 다루는 정.기.신과 오장육부의 흐름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잡병편」은 「내경편」으로 연결된다. 결국 「동의보감」 안에서 몸을 인식한다는 것은 몸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득하는 것이다. (본문 25쪽)

“몸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득하는 것”이 「동의보감」의 인체관이자 생리와 병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다. 허준은 이러한 총체적 인식을 책 전체의 서두이자 「내경편」의 인트로라고 이를 수 있는 ‘신형문’에 집약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점에서 「내경편」은 「동의보감」은 말할 것도 없고 동아시아 의학의 사상적 지반과 의학정신의 핵심을 파악하게 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그만큼 「내경편」은 몸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기만의 삶과 치유의 기술인 수양법을 찾는 데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본문 26쪽)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의역동원(醫易同源)의 원리, 음양오행

앞서 먼저 읽어본 선조의 말처럼 왜란 이후 나라가 일일이 국민보건과 위생을 책임질 수 없었던 상황에서 백성이 참고할 수 있는 의서를 만드는 것은 시급하고 긴요한 사업이었다. 그랬던 만큼 「동의보감」은 이론과 실제가 매우 잘 구비된 책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론의 잠재적 원리로 작동하는 ‘역학’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우리에게 별도의 학습을 요구한다. 이 책의 저자가 원전에 없는 한 개의 장(4장 ‘「내경편」 계보의 단서를 찾아서’)을 별도로 마련하여 그 원리를 차근히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의 원리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태극-음양-사상-오행’의 과정으로 개념화한다. 천지인 삼재 사상과 다르지 않은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이치에 따르면 천지의 기가 잠시 모여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이루고, 또한 인간이 자연의 섭리대로 생로병사를 겪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역의 원리와 동일하다. 자연이란 ‘균형과 순환’, ‘접합과 관계’의 원리가 쉼없이 일어나는 장이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다. 이를 개념화한 용어가 ‘오행’이다. 오행은 무상한 변화의 양상을 추상한 개념이다. 저자는 태극으로부터 오행에까지 이르는 역학적 원리를 상수학적으로 깊이있게 탐구하고 종합했던 중국 유학자들의 이론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냈다.

양생과 치유, 사유의 모험이자 윤리의 혁신

대단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고전을 읽으면 잔뜩 실망만 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기가 쉽다. 「동의보감」은 여타의 동양고전과도 달라서 좀 더 느긋하고 느리게, 읽히는 만큼 읽는 것이 좋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동의보감」의 텍스트는 반드시 의술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학문 그리고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만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개념들의 변형과 치환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속도로써는 마주칠 수 없는 장면이다. 이 책의 부제로 삼은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이 뜻하는 바도 비슷하다. 양생은 일상을 낯설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어제와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오늘을 만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치유는 그 부단한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열매다. 몸은 삶의 현장이다. 그 현장을 괄목상대하게 하는 「동의보감」의 세계 안에는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이 감춰져 있다. 그러니, 저마다 자기의 병과 몸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으면서 이 책을 읽어 간다면 그것이 바로 진인(眞人)이 말하는 “도로써 병을 치료(以道療病)”하는 경지와 다름없을 것이다.

태백진인太白眞人이 말하였다. “질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 바로잡고 도에 근원을 두어야 한다.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의 의심과 걱정, 망념과 불평 그리고 경계를 없애고,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비워지고 삶과 우주가 하나가 되어, 결국 세상의 모든 일이 공(空)의 세계에 있으며 종일 하는 일이 망상이란 걸 알게 된다. 더불어 나의 육체도 환상일 뿐이고 화(禍)와 복(福)도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죽고 사는 것 역시 한낱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리고 마음이 자연히 청정해져 질병이 저절로 낫게 되는 바,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이미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스려 병을 치료하는 진인(眞人)의 도이다.” -신형(身形) (본문 145쪽)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