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感應의 哲學 - 한의학과 연단술에서 읽어낸 동양의 시선

한의학의 철학에서 캐낸 동양의 뿌리 세계관

아프면 어느 병원으로 갑니까? 양의사에게 아니면 한의사에게. 개인적인 선호와 판단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패턴도 개입하는 게 우리 삶의 현장이다.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캐고 들어가다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관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두 세계는 과연 어떻게 다른가? 이것이 이 책의 화두다.
이 책은 한국 철학계의 앞날을 비출 역작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정우진(1972년생)은 순수 국내파 학자로 본격적으로 학문적 성과를 내기 시작한 연부역강의 신진 철학자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의학의 철학, 동양과학문화, 도가 수양론 등이다. 이번에 출간한 「感應의 哲學」은 대표적 연구 성과의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의 주제는 서양의 과학과 동양의 과학은 어떻게 다른가이다. 백여 년 넘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논의와 이론 제시가 있었다. 저자는 기존 이론인 ‘시스템론’, ‘상관적 사유 이론’ 등을 상세히 비판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관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기존 이론들이 동양의 몸을 서양이라는 옷에 맞춘 격이라며, 동양의 과학은 동양 고유의 세계 인식으로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 인식론이 객관성과 명증성에 치우쳐 대상으로 세계를 이해한 것인 반면에, 동양의 세계 인식은 자연과 합일(감응)하는 수양자의 마음으로 읽어낸 세계상이라는 것이다. 예로써 서양 의학이 맥박의 속도와 크기로 질병을 진단하려 했다면, 동양 의학은 그 떨림의 뉘앙스를 통해 고통의 진상에 도달하려 애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은 동서양 세계관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문명의 정초기에 서양은 존재와 인과에 기대어 세계를 규명하려 했고, 동양은 기(氣)와 감응(感應)에 주목하면서 이론화의 길을 걸었다고 분석한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세계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지평을 만들고 그 위에서 양쪽의 세계관을 대응시켜야 한다. 이쪽에서 보자면 그것은 동양세계관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재구성으로 인한 왜곡을 피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내밀한 소리를 들려줄 만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 중심에 있는 것들은 종종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세계관의 구체적 특성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의학을 포함하는 동양과학문화는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신체관처럼 주류 사유에는 부재한 내용이 풍부할 뿐더러, 사회윤리적 측면의 과장(誇張)이라는 주류 전통의 문제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의학 등의 동양과학문화에서 동양의 세계관을 재구성해내려는 시도가 지속되어왔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 책에서는 서양의 존재와 인과에 대해 기(氣)와 감응(感應)을 대응시킨 후, 구체적 내용을 한의학을 포함하는 동양의 문화전통에 토대해서 재구성해냈다.(6쪽)

서양 세계관 위에 직조된 현대는 더 이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극한 상황이다.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는 세계에 감응하는 동양의 세계관에서는 단절된 개체 사이로 생명이 흐르고, 세상은 봄철의 들녘처럼 화사하게 바뀐다. 동양의 세계관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묘사하는 듯하지만, 동양의 세계관이 심미적이라는 점은 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것이다. 욕망 외에 세상과 만나는 다른 방식을 알지 못했던 이가 동양의 세계관을 이해한다면, 그는 편린으로 존재하던 개체적 자아의 생명을 깨워서 세계와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배후에 세계관의 갈등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정신을 푸르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계관은 현실적 문제풀이의 방향과 미래의 행방을 제시한다. 동양적 시선의 재구성은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흥미롭고도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의 세계관을 인식하면서 나의 세계관을 구성하되, 타인의 시선으로 인한 왜곡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 타인의 것이 내게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 뿐 아니라, 나의 세계관이 타인의 정확히 반대쪽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왜곡일 수 있다. 서둘러서 타인의 반대쪽에 나를 가설하는 경우에 세계관은 빈약한 모습을 지니고, 동양은 불필요한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또 다른 문제는 동양의 주류 전통인 유학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사회적 책무의식이 강한 유학자들은 삶의 가치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그것을 포괄하는 세계관에 관한 논의에 소홀했다. 한의학을 포함하는 동양과학문화는 이런 주류 전통의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기존에도 이런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동양 세계관의 구성을 위한 질문을 회피하곤 했다. ‘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상기해보라. 결과는 자명했다. 동양의 세계관은 서양의 세계관과 다르고, 현실 문명의 대안은 동양에 있다고 선언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책은 한의학과 연단술이라는 동양의 전통과학을 통해 동양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