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의 원인은 머릿속에 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원제 It's All in Your Head: True Stories of Imaginary Illness, 2015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혹은 ‘원인을 잘못 알고 있는’ 병의 비밀
신경과 전문의이자 정신신체 장애 전문가인 수잔 오설리번 박사가 말하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의 비밀. 느닷없이 찾아온 통증, 발작, 경련, 마비 등으로 고통받으며 병원을 찾는 사람들. 치명적인 증상이나 장기화한 장애 때문에 삶이 파괴되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수없이 받아도 병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놀랍게도 이처럼 신체 기관에는 이상이 없으나 정신적 이유로 앓는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하는 환자들은 무수히 많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각의 사연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박진감 있게 펼쳐지는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마음이 몸에 끼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일반인뿐 아니라 동료 의사들에게도 정신신체 증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올바른 이해를 위해 노력할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병은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일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50%는 설명이 불가능한 증상에 시달린다. 류머티즘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의 30%는 의학이 설명할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린다. 부인과 전문의를 찾는 여성의 60%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증상을 호소한다. 정서적 건강이 신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1997년 세계보건기구는 미국, 일본, 칠레, 인도 등 전 세계 15개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앓는 환자들의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환자 열 명 중에서 두 명은 신체 기관에 이상이 없어도 정신적 이유로 신체적 증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정신신체증’을 앓는 사람들은 병으로 고통받고 생활에 큰 곤란을 겪으면서도 주변의 몰이해로 따돌림 당하는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게다가 국가 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병증으로 발생하는 의료 서비스 비용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정신신체 증상’은 심리적 원인으로 나타나는 신체 증상을 말한다. 슬퍼서 눈물이 흐른다거나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도 정신신체 증상으로, 이런 신체 반응은 때로 이로운 효과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에 대한 몸의 반응이 정상 범위를 넘으면 신체 기능을 훼손하거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려 병에 걸린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혈압을 상승시키고 위궤양에 일으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감정이 건강한 신체에도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책에서 저자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수없이 많은 검사와 진료를 받으면서도 끝내 병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해 고통받다가 결국 그것이 정신적인 문제였음을 발견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질병에 대한 진정한 이해
질병illness은 질환disease과 다르다. 질병은 질환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그것은 환자가 자기 몸 상태를 느끼는 주관적인 경험이며 거기에 병리학적 근거는 없다. 질병은 신체적일 수도 있고 심리적일 수도 있다. 어떤 환자에게 질환은 있지만 질병은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질을 앓는 소녀에게 질환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만약 발작을 일으키지 않거나 간질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소녀는 ‘병든 상태’가 아니다. 반면에 정신신체 장애 환자는 병든 상태지만 반드시 어떤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질병에 대한 경험은 당사자만의 것이며, 바로 그런 점에서 질병은 질환과 완전히 다르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은 증상이 너무나 심해서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질병을 앓고 있지만, 그들에게 질환은 없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도 무수히 많다.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질병인지 아니면 질환인지는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그 구분이 그들의 장애가 그들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의 예후도 바로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기술이 이처럼 발전했어도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우리 몸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검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고나 관념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우리는 아직 지극히 제한적으로밖에 알지 못한다. 상상을 설명하거나 상상의 영역에서 걸리는 병의 실체를 이해하거나 증명하는 데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렇게 모호한 방식으로밖에 내릴 수 없는 진단을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진료한 환자들이 앓고 있던 다양한 증상, 예를 들어 경련과 마비, 통증과 저림, 실신과 발작, 관절염과 손떨림, 만성 피로와 뇌척수염, 감각 이상과 근육 마비, 시력 상실과 안검 연축 같은 증상들의 특성과 그에 관련된 정신적·심리적 사실들을 분석하고, 환자들이 명백히 지각하고 있으나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런 증상들을 어떻게 치유했는지 각각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단순히 신체 증상에만 주목하기보다는 환자의 정신적·심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정신분석학 등 정신신경증과 관련한 풍부한 배경 지식
신경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히스테리, 전환 장애, 인위 장애, 꾀병, 만성 피로 증후군, 신경 쇠약,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 정신신체증과 관련된 다양한 증상을 설명하면서 특히 잠재의식의 역할에 주목하고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샤르코, 자네, 프로이트, 비어드 등 이 분야 대표적 학자들의 이론을 매우 흥미롭게 소개한다. 아울러 이런 정신신체성 질환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이유도 명쾌하게 분석한다.
예를 들어 해리성 발작과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 70% 이상이 여성이고, 신체 증상 장애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열 배나 더 많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젠더’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여성이 약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만, 남성은 무조건 강해야 한다. 연약한 여성,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성은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남성은 아무리 힘들어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가 겪는 증상을 주위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만, 남성은 그것을 묵살하고 어떻게든 자기가 해결하려는 문화가 정착됐다. 불안 장애나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훨씬 더 많이 생긴다고 해서 남성의 삶에 스트레스가 더 적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삶에 더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것철 보이지만, 남녀 간 다른 차이를 함께 고려한다면 남성과 여성 중 어느 편이 곤경에 더 잘 대처하느냐, 혹은 고통을 덜 호소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모두 고통받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동료 의사들, 고통받는 환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지혜를 담은 책
2011년 독일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1차 진료 기관을 찾은 환자의 22%에게 ‘감정적 원인으로 발병한’ 신체화 장애가 있었다. 영국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50%가 넘는 진료소도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진행된 연구는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서 40%가 스스로 심리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질병을 앓는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아직도 ‘정신신체 장애’라는 진단을 내릴 때 거북함을 느끼고, 환자들 역시 자신이 이런 질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심각한 질병의 심리적 원인을 고려하려면, 심리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과 정신신체증이 때로 극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신신체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몸을 지배하는 마음의 힘을 인정해야 한다. 마취 대신 사용하는 최면, 플라시보, 스포츠 심리학, 동종 요법과 대체의학, 명상과 항암 식이 요법 등의 효과를 인정하고,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이 신체 증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는 데는 왜 그토록 주저할까?
저자는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이 장애에 관해 가르쳐서 더 좋은 의사들을 배출해야 하고. 전문 의료진은 이제 정신신체 장애를 진단 목록의 맨 아래에 두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신신체 장애’라는 진단이 검사 결과들은 정상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어느 진단도 적합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진단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질병으로 생기는 신체 장애와 고통을 소홀히 취급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신신체증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바뀌려면, 우리 자신의 일부가 주변 세계에 신체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로지 내면적인 감정의 힘으로 몸이 제어 불능 상태가 되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더 극단적인 반응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신신체 장애는 이제 의학 교과서에 주석으로나 다룰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심각한 진단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회와 대중이 더는 이런 유형의 증상이 다른 질환의 증상보다 덜 ‘실제적’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으로 심각한 장애를 앓는 환자를 만날 때 우리는 다른 진단을 받은 환자를 대할 때와 똑같은 관심으로 그를 대해야 한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