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임상 보고와 그 너머의 이야기

치매 노인의 심상세계에 들어가 고통의 원인을 찾는다
치매는 세계와 연결(기억)이 끊어지는 과정이며, 여기서 발생하는 불안과 초조함이 우울증으로 나타나 본인과 주변을 고통스럽게 하는 망상, 환각, 거친 행동 등의 주변증상을 일으킨다. 치매 노인의 일상과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각종 증상의 원인을 밝힌다. 주변증상 없는 ‘순수치매’는 어떻게 가능할까? 치매 노인을 이해할 수 있으며, 환자와 가족 모두 위로 받을 수 있다.

치매는 병일까? 노화일까?
노인성 치매에는 뇌혈관 질환에 의한 ‘뇌혈관성 치매’와 뇌의 기질적 위축·기능 저하에 의한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있다. 두 가지 모두 불가역적인 질환이며, 치매의 의학적인 예방법이나 치료법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 약물에 의해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치매 자체를 완치시켜 지성과 인격을 되찾는 것은 현대의학으로도 불가능하다.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도 발견되지 않는다. ‘평소 읽고 쓰기를 하고 계산을 하거나 머리를 사용하면 치매가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대학교수, 의사, 엔지니어 등 고학력층도 저학력층과 발병률은 비슷하다. 로마 교황이나 미국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치매란 본인에게는 자신이 없어져버리는 무서운 질병이며, 가족에게는 보살피기 어려운 질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치매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인지능력이 저하되므로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치매이다.”라고 한다.
아기는 ‘오늘은 몇 월 며칠이다.’라는 시간에 대한 지남력이 없고, 돈 계산도 못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이해한다. 생후 3개월 아이가 ‘나이’의 표현으로 이런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면 피부에 검버섯과 주름이 생기고, 근력, 운동 기능, 대사 능력이 점점 저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뇌의 형태도 위축되어 이지러진 것처럼 보이고, 기억력이 나빠지고, 시간에 대한 지남력이 저하하는 것은, 시간(나이)의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177쪽)

치매 환자와 가족이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순수치매
치매에는 기억을 중심으로 하는 인지능력(지능)이 저하되는 중심증상과 피해망상, 야간 섬망, 환각, 공격적 인격 변화 등의 주변증상이 있다. 지능이 저하된 노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나쁜 인간관계’이다. 환각, 망상 등의 정신증상의 발현 빈도는 지능 저하에 따른 환경적응 능력 감소 정도와 나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크기에 비례한다.
인간관계가 ‘좋은 군’과 ‘나쁜 군’을 비교해보니, 지능저하의 각 단계에서 정신증상 발현율이 큰 차이를 보였다. ‘좋은 군’에서의 발현율은 가벼운 지능저하군에서 10%, 중등도 저하군에서는 20%에 불과했으나, ‘나쁜 군’에서는 각각 30%, 60%로 훨씬 높았다.
이런 수치는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노인의 정신증상 발현이 간병인과의 인간관계에 좌우된다고 해서, 그것을 간병인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관계가 ‘좋은’ 경우에도 10~20%에서 정신증상이 나타난다. 인지능력이 저하된 상태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괴로운 것임을 시사한다.(35쪽)
저자가 도쿄에서 실시한 ‘치매 노인’과 ‘정상 노인’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약 20%는 지능이 정상이거나 약간 저하되어 있을 뿐인데 ‘치매’로 간주하고, 반대로 ‘정상 노인’의 10% 정도가 중등도에서 중증 지능저하를 보인다. 지능저하가 없더라도 우울증 때문에 동작이 둔하고, 엉뚱한 반응을 하는 것인데 ‘치매’로 간주하고, 한편으로 당연히 ‘치매 노인’에 속해야 할 사람이 가정이나 병원에서 보통 어르신으로 대접받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왜 ‘치매’로 진단받아야 할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되고 있을까? 지능저하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관계에 따라 주위 사람들의 노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오키나와 현 사시키에서 조사한 보고서는, 환경만 좋다면 지능이 저하된 노인이 다른 사람에 폐를 끼치는 주변증상을 보이지 않고, 평온하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마을의 65세 이상 노인 708명(남 268명, 여 440명) 전원을 정신과적으로 평가했는데, 명백히 ‘노인성 치매’로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이 27명(전체의 4%)이었다. 이는 도쿄의 유병률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 증례를 통틀어 우울증, 망상, 환각, 야간 섬망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당시 도쿄의 조사결과와 비교해보면 믿기 힘든 사실이다. 도쿄에서는 ‘치매 노인’의 20%가 야간 섬망을 보이고, 절반 정도가 주변증상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는 우울증이 전혀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치매 환자의 1/4~1/2 정도에서 우울증이 동반된다는 보고가 있다.(43쪽)
사시키는 경로사상이 강하게 보존되어 있고, 실제로도 노인이 정성스러운 간호와 존중을 받는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노인은 정신적 갈등이 없고, 설령 뇌에 기질적 변화가 생겼더라도 우울증, 환각, 망상이 발생하지 않는 단순치매 상태에 그치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치매의 증상과 고통의 원인을 진단
저자는 오랜 임상 경험으로 관찰한 치매의 다양한 사례를 들고, 그 증상의 원인을 밝히고 있다. 주변증상 없이 가족과 함께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순수치매, ‘주의 장애’라고 불리는 가상현실의 세계, 환청·환시·환각을 일으키는 사례, 젊은 시절로 돌아간 ‘회귀 인격’, 이 세상과 저세상에 걸쳐 사는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 ‘회춘 현상’을 보이는 다중인격......
치매 노인의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연결’이라는 키워드이다. 자아를 형성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말과 기억이며, 그 기능이 쇠퇴하면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진다. 기억의 저하에 따라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주변 사람과 ‘연결’을 유지할 수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우울증 등의 정신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 뚜렷한 질병이 있어도 자신이 가족을 비롯한 주변 환경과 잘 연결되어 살아 있다는 감각이 있으면, 그 사람은 ‘건강’하다. 노년기는 ‘길게 늘어진 회색 지대’이며, 질병이라고 생각하면 질병, 건강하다고 생각하면 건강한 것이다.
치매 노인의 세계를 분석하면서 인간의 인지 메커니즘을 고찰하고, 의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나’란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치매 노인을 통해 보는 정상과 이상의 사이. 그 사이에 있는 문화와 윤리의 근원적 차이를 파악해, 인간은 어떻게 세계를 허구하는지를 풀어낸다.

[서평]

이 책을 두 번 세 번 읽고 있다. 이렇게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맛본 적은 별로 없다. 저자는 미국에서 첨단 의료연구에 종사했지만, 지금은 치매 말기의 완화의료에 전념하고 있다.

치매에는 인지능력 저하라는 중심증상과 피해망상, 야간 섬망, 환각, 공격적 인격 변화 등의 주변증상이 있다. 이러한 괴로운 주변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환자를 둘러싼 인간관계, 나아가 문화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같은 정도의 인지능력 저하가 있어도, 도시에서는 절반 정도에서 주변증상이 나타나는데, 경로의식이 강한 농촌에서는 온화한 치매 상태만 관찰된다고 한다.

개인에게 ‘자립’을 강요하고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구미형 근대사회에서는 치매 노인이 주변증상을 일으키기 쉽다. 이에 반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자기’가 중요한 전통적 동양 사회에서는 주변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오이 겐 씨는 본다. 저자의 임상체험과 함께 호쾌한 문명론을 담고 있는 이 명저를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 기다 겐(木田 元·철학자) 닛케이 비즈니스 서평

치매에 걸리면 본인은 편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환자는 고립감과 불안감 속에 살고 있습니다. 치매 노인의 심상 세계에 깊숙이 들어간 저자의 묘사와 통찰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노인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로서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의료·간호와 복지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 부모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분께 추천합니다.
-- 조비룡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과장·대한노인병학회 이사

노인이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고, 특히 치매에 걸린다는 것은 더욱 무섭기만 합니다. 원시인은 번개를 두려워하고, 고령화 사회에 사는 한국인은 치매를 두려워합니다. 이 책은 치매 노인과 눈높이를 같이 하면서 치매 노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나의 성장을 응원하는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가 인도하는 대로 치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연결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김지영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회장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