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방과 의료, 그 사이 - 한방담론탐독

잘 만든 인문 다큐 프로그램을 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성오의 「한방(韓方) 담론탐독- 한방과 의료 그 사이」의 추적 대상은 ‘담론에 갇힌 우리’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대중적이지 못한 의학 이야기라는 단정이 먼저 지어질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이 불리함을 두 가지로 돌파해 낸다. 


하나는 그의 직업이다. 저자가 업으로 삼고 있는 치과의사가 지닌 의학에 대한 전문성에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아님을 예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박사학위까지 받은 문화인류학자로서의 통찰력이다. 의학을 지식과 정보로만 예단하지 않은, 우리 삶과 사회의 틀 안에서 해석해낸 흥미로움을 동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보면서 ‘사실’보다는 ‘잘 살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이 모든 걸 결정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출발이 이렇다 보니 이후 10년은 ‘사실’보다는 ‘그러하다’가 지배하는 형국으로 흘러갔다. 모든 힘의 원천이 ‘그러하다’였으며, 나는 ‘어떤 힘이 여기에 작용했나?’가 궁금해졌다. 여기에 평소 관심을 가졌던 한방(韓方)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본문 11쪽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치과의사가 들여다본 ‘한방(韓方)’의 세계. 이 책은 ‘한방(韓方)’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곧 다가올 우리 사회의 담론이 씨줄 날줄로 엮어 있다. 특히 여전히 세상을 흔드는 ‘신자유주의’라는 틀 속에서 한의학이 어떻게 ‘주변화’ 과정을 거쳐 우리 의학계와 의학 소비자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의사 그리고 문화인류학 박사의 시선으로 짚고 있다. 


기능성 한방 화장품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만, 한의학, 전통적인 한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왜 낮아졌는가? 

침과 보약으로 대변되는 한방은 과연 의료인가? 문화인가? 


의료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고민이 들고, 한 번쯤은 의문을 가졌을 법한 한방(韓方), 한의학과 양의학에 대한 의구심과 물음을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담론들에 의한 ‘주변화’ 과정으로 풀이한다. 


주변화, 다양한 해석과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핵심은 같다. 중심을 버리고, 부분으로 해석되고 취급되며 사용되어지는 것들을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 천 년을 이어온 전통의학이 주변화되어버린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누구나 ‘의료 시나리오’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한방과 한의학이 처한 상황을 낱낱이 들추어내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자칫 어렵고 지루해 질 수 있는 의료의 사회문화적 분석을 저자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저자는 가리어져 있던 신자유주의의 가면을 벗겨 버렸다.” 

 - 추천의 글 중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함한희 교수)


사회 담론을 중심으로 한 학술적 접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문화인류학이 지닌 삶과의 밀접성, 곧 대중적인 시선이 함께 따라간다. ‘한방의 아이러니’, ‘상상되고 발명되어 실행되는 의료’, ‘보이지 않는 커다란 그물망’ 등 책의 각 세션들은 한방의 주변화를 일으킨 사회적, 의식적 연원을 다양한 연구 자료와 사회적 흐름에 비추어 풀어내고 있다.


단순히 기능적, 전문지식을 들어 한의학의 주변화를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도 모르게 내밀어 놓은 전통의학 ‘한방(韓方)’의 자리에 사회학적 관점의 담론들을 들여놓았다. 절묘하게도 그것은 들어맞아,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신자유주의의 틀과 상징에 갇힌 전통의학 ‘한방(韓方)’이 과연 엇갈린 운명 속에서 의료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한방(韓方)’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국 이것들은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환자는 전문가의 권위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는다. 의학적 설명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질병 발생 시나리오를 구축한다.” 본문 245쪽


한방이 더 우월한 치료법인지, 아니면 양방인지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한방의 효능을 알고도 우리는 외면하게 되면서, 비만이나 성장치료 등에서만 의료성보다 기능성을 인정하며 보편적 진료에서는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양방은 더욱더 생의학적인 지식과 기계를 가지면서 과학기술의 우위성을 확보해 간다. 한방은 ‘모호’하고, 양방은 ‘확실’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 속에서 의료 행위와 실천 속의 신자유주의를 끄집어낸다. 과학화, 표준화, 상품성의 논리에 위축되어진 한방의 주변화 문제를 저자는 의료 소비자들의 상황과 일반적인 인식을 들어, 함께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보조 의료, 기능성 상품으로 치달은 한방(韓方)이 이 책의 주인공이지만, 비단 우리는 이것만을 들여다봐서도 한방(韓方)에 대한 저자의 연민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과학과 경제 영역, 가시적인 전문성으로 가득 찬 의료사회는 우리 사회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의료 현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자신의 전문성을 동원해 풀어낸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주류와 비주류의 문제까지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한방의 주변화’ 과정에 뛰어든 내 의료 시나리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작은 내 세계와 우리 사회의 문제일 수 있다.


‘한방(韓方), 먹겠습니까, 바르겠습니까 ’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