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를 의사로 만들기

‘복원력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의술’이라는 신념을 가진 한의사의 임상 에세이


이 책은 임상 22년차를 맞이한 한의사가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동안 배우고 익힌 곡진한 의술과 임상의 기록인 동시에 한 명의 의료인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지를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는 감동적인 에세이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간이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자생적인 ‘복원력’을 살려주는 것이 진정한 의술이라는 믿음 아래 진통제 같은 약물의 남용으로 쉽게 통증을 가라앉히는 대증요법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현대의학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난맥상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이와 같은 저자의 의도와 문제의식은 「서문」의 다음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질병으로 인한 여러 고통을 줄여주는 것도 의학이 맡아야 하는 역할임에 분명하나, 궁극의 만병통치약은 건전하고 행복한 삶과 올바른 섭생에 기초한 내 몸에 내재한 ‘복원력’이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레 돕는 것이 의료의 최선이라는 신념은 임상 초년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중략)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치유의 매개이기도 한 통증과 염증을 없애는 치료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이것은 고통을 싫어하고 회피하려는 다수 대중의 성급한 정서에 정확히 복무한다. 통증과 염증을 통해 인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복원력에 대한 이 뿌리 깊은 무지와 오해……”

저자는 자신이 처음부터 복원력을 살리는 데 진료의 초점을 둘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처음 한의원을 개원하면서 다른 선배나 동료들처럼 ‘비만클리닉’ 같은 것이나 하면서 호의호식할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의원을 내원하는 어시장 할머니들의 기질과 심각한 병태를 보면서 자연스레 난치병을 치료하는 근본적인 솔루션이 무엇일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때 생각해낸 것이 스승인 무위당 이원세 선생으로부터 배운 ‘부양론’이다. 부양론은 증상 위주도 체질 위주도 아닌, 인체를 현장에서 유기적으로 관찰하고 청상통중온하淸上通中溫下시켜서 생명력을 진작하는 가장 한의학다운 의론이다. 그리고 이 부양론의 실천적 각론으로 쑥뜸을 깊이 익히기 시작한다. 쑥뜸 임상 한의사가 거의 없던 시절, 당연히 참고할 치험례도 없던 환경에서 과감히 쑥뜸 임상을 시작한 것이다. 담배 냄새 못잖은 매캐한 냄새가 한의원 안에 가득 차고 돈도 안 되니 다들 외면하는 현실에서 저자에겐 부양론의 핵심인 복원력을 살려주는 길이 쑥뜸에 있을 것이라는 빛나는 직관과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환자를 의사로 만들며 성장하는 의사, 건강을 되찾은 환자


저자는 ‘복원력’과 ‘쑥뜸’이라는 키워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한다. 전체 3부와 부록으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와 2부는 저자가 운영하는 ‘클레오파트라 한의원’을 내원한 다양한 환자들과 벌인 저자의 눈물겨운 진료 분투기로 채워져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여러 환자들에 대한 임상 진료 기록 및 일화들을 읽다 보면 환자들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과 따뜻한 관심을 쉬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저자가 의술의 목적이 사람을 살리고 삶을 살리며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있다고 믿는 의료인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저자는 환자들의 개별적인 임상 경험을 꼼꼼하게 복기하면서 자신과 친모의 발병 사실, 친부의 진료 과정, 수두에 걸린 조카의 사례 등 사적인 형편들을 그 서사에 포개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 임상에세이는 진정성이 더해져 진솔한 수기처럼 아름답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저자가 22년 동안 겪은 환자들과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임상치험례는 따로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첫 개원지였던 마산 어시장 근처 한의원에 내원해 효과를 본 고마운 기억 때문에 22년 만에 진해의 현재 병원을 다시 찾은 아주머니 이야기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일화다. 또한 섬유근육통을 진통제 같은 대증약으로 다스리면서 리바운드 때문에 고생해온 20대 초반의 환자에게 쑥뜸 치료를 시행해 말끔히 낫게 한 일화, 등이 시린 증세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해온 유방암 수술력이 있는 60대 환자가 들려준 애틋한 가족사와 그녀에게 인간적 연민을 갖고 정성껏 완치시킨 일화,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으며 스테로이드제 복용으로 버텨온 할머니를 역시 쑥뜸으로 완치시키고 체질까지 바꾼 이야기 등은 실력과 인성을 갖춘 한 의료인이 옳은 신념과 사랑으로 진료를 펼칠 때 그 복이 온전히 환자들의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난치병 치료에 각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으며 수많은 완치 사례를 만들어냈는데, 책에는 그에 대한 상세한 보고도 들어 있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간암으로 전이되어 대장과 간을 절제한 뒤 항암치료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서 한의원을 찾은 환자는 거주지가 서울인데 진해에 방을 구해놓고 3개월 간 침과 뜸 등 저자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섭생에 대한 조언을 지킨 결과 5년이 지난 현재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궁 내막이 자궁근층 안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난치질환인 자궁선근증을 앓고 있는 여자 환자의 경우에도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과 신뢰, 긍정을 바탕으로 꾸준히 쑥뜸 치료를 한 결과 폐경과 함께 증상이 한꺼번에 사라져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대상포진 환자, 전정신경염 환자, 요실금 환자, 대장암 환자, 산후우울증 환자, 폐경 전후 갱년기증상 환자, 피부병 환자, 잇몸염증 환자, 망막혈관폐쇄증 환자 등 저자가 인내와 정성으로 치료해 효과를 본 진료의 미담이 1, 2부에 가득하다. 저자는 ‘자신이 어디가 아파서 온 환자를 어떻게 해서 고쳤다’처럼 성과를 과시하듯 과정과 결과만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임상의 행간마다 자신의 주도면밀한 의론과 확고한 철학을 개진하는 걸 잊지 않는다.

이 책의 3부는 쑥뜸 임상의 개요와 쑥뜸 체험기로 채워져 있다. 쑥뜸 임상 개요는 말 그대로 저자가 22년 동안 쌓은 내공으로 집적한 쑥뜸 임상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전문적으로 설파한 장이다. 쑥뜸 임상을 생각하고 있는 한의사들에게 매우 귀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쑥뜸 체험기는 저자의 한의원을 찾아 온전히 의사를 믿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진료를 받은 후 건강을 되찾은 열네 명의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쓴 체험의 기록인데 한 편 한 편이 진솔하고 감동스러운 수기로 읽힌다.


특별한 부록-한의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 책은 여타의 임상 에세이와 분명히 차별되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부록-한의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수록한 데 있다. 한 편의 드라마틱한 자전소설로 읽어도 큰 무리가 없는 부록은 저자가 솔직하게 고백하는 성장의 서사로 초등학교 시절,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반장선거에서 선생님의 노골적인 차별을 겪은 일화부터 시작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고투했던 중고등학교의 수학기, 한의대 입학 이후 참된 의료인이 되기 위해 동료 선후배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학습한 이야기 등이 기술되는데, 그 과정에서 20대의 애틋하면서도 풋풋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복원된다. 이를테면 엇갈린 짝사랑과 우정, 지적 깨달음에 대한 목마름과 어느 날 불같이 찾아온 열정적인 사랑, 그리고 이른 임신과 결혼 등 6~7년 사이 저자가 겪은 개인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처럼 자신의 사적 체험을 고백한 텍스트를 임상에세이로 분류되는 책에 부록으로 수록한 것은, 저자가 한 사람의 여전히 진화중인 의료인으로서 자신이 어떤 기원과 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독자에게 밝히면서 자신의 의론과 철학의 바탕을 연역적으로 설득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의술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일 터인데, 그 근본이 되는 개인의 인성과 감성이 어떤 시간과 경험을 통과하면서 완성되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의학적 담론의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