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더 무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개정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새로운 표지는 ‘2016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에서 최고영예상을 수상한 이정호 작가가 《온 더 무브》를 위해 특별히 그린 작품으로 꾸며졌다. 인간의 고독을 바라보며 수확한 통찰을 글로 담아낸 시대의 지성 올리버 색스. 그의 따스한 내면을 담은 자서전이 이정호 작가의 그림과 만나 쓸쓸하면서도 유려한 느낌의 통로로 형상화되어 독자들의 노크를 기다린다.


모험과 호기심으로 점철된 생기 넘치는 자화상

“나는 모든 신경학이, 세상 모든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성이자 의학계의 큰 별 올리버 색스. 그가 타계 직전 남긴 자서전 《온 더 무브》는 올리버 색스가 추구한 끝없는 모험, 중단 없이 나아가는 삶의 뜨겁고 생생한 기록이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 휴식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넘쳐난다. 오랜 세월 세상으로부터 잊힌 질환과 그 환자들을 만나 삶의 진로를 결정하고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결정한 이후,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면서 뇌, 의식, 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파란만장한 인생의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사람과 지적 탐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 성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죄의식, 환희와 절망, 유대감과 깨달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과 과학자들과의 우정 등, 더없는 솔직함과 유머로 써 내려간 《온 더 무브》는 무한한 호기심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인간과 세상을 읽고 이해하며 또 기록해나간 색스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걷잡을 수 없는 연상 정신을 지닌 터무니없는 모험가, 신경학의 모든 것과 세상의 모든 것을 일종의 모험으로 여기는 열정가의 생생한 자화상”은,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오히려 화성인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특별함이 유독 빛을 발하는, 그가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다.


결핍 가득한 삶 그리고 인간애의 기록

올리버 색스는 스스로를 수줍음 많은 성격에다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맹이며, 육체는 ‘몸짱’이지만 마음은 소심하고 불안 많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라고 평한다. 거기다 부모님에게 늘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지적으로도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모자람과 결함(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것들)은 민감한 지점에서 그를 옥죄고 힘겹게 한다. 예컨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가 던진 “가증스럽구나.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는 말은 그의 내면에 죄의식으로 주입되어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억압으로 작용한다. 또 우여곡절 끝에 출간한 《깨어남》에 대해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이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을 때도 “이것은 전적으로 ‘문학적인’ 평가일 텐데 《깨어남》에 일말이라도 ‘과학적’ 가치가 있을까? 그렇기를 바랄 따름이었다”라며 자신의 책과 글에 대해 미심쩍어하고 의학계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안해한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대중적인’ 작가였으며 마약중독자였다. 그러나 올리버 색스는 바로 이 존재의 연약함에서부터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가 맨 처음 의사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진짜 문제”를 지닌 “진짜 사람”들을 임상에서 만나면서였다. “옥스퍼드대학교 의예과에서 한 해부학과 생리학 공부는 실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들을 만나고, 환자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환자의 경험과 곤경 속으로 들어가려고(또는 최소한 상상하려고) 애쓰고, 환자들을 염려하고, 환자들을 책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그리고 종종 중대한 기로에 선),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는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마약에 의존하며 의사와 중독자로 살았던 4년간의 이중생활에서 빠져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상태가 호전되었고, 환자들에게 매료되어 최선을 다하면서 기쁨을, 무엇보다 주체성과 책임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마약중독에서 벗어났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의 결핍과 결함을 환자들의 고통과 동일시한 결과일지 모르며, 더 나아가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공통된 근원에 대한 자각에서 우러난 연민과 공감의 결과일지 모른다. “내게는 흥미롭지 않은 환자, 가치 없는 환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도처에, 생생하고 또렷이 존재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환자, 나도 모르던 내 감정을 일깨우고 새로운 흐름의 사고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환자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고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긍정을 발견했다.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거나, 기억이나 색을 잃어버리거나, 몸에 대한 지각을 상실하거나, 파킨슨증으로 몸이 얼어붙어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일상과 사회관계를 영위할 수 없는 이들에게 그는 최대한 삶다운 삶을 되돌려주고자 했다. 그는 그것이 의사와 의료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그들의 다름이 ‘이상’이 아니라 특별함이며, 이 남다름이 배제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할 인간 그 자체임을. 여기에서 우리 역시 색스에게서 깨우침을 얻는다. (환자를 포함하여) 나름의 “진짜” 문제를 가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개성과 열정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 독립적인 인간임을.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또 사랑받아야 할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의학계의 시인이 전하는 따뜻한 휴머니티

첫 책 《편두통》(1970)을 시작으로 《깨어남》(1973)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198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 《목소리를 보았네》(1989) 《화성의 인류학자》(1995) 《색맹의 섬》(1997) 《엉클 텅스텐》(2001) 《오악사카 저널》(2002) 《뮤지코필리아》(2007) 《마음의 눈》(2010) 《환각》(2012) 그리고 자서전 《온 더 무브》(2015)에 이르기까지 올리버 색스의 글쓰기는 ‘의학계의 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경이롭고 경탄스럽다.

‘세상 모든 것이 모험’이었기에 그는 언제나 무엇에든 호기심과 관심이 충만했고, 예리한 관찰자이자 진심으로 경청하는 청자였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상 능력을 지닌 창조적인 사람이었다. 어릴 적 매료된 화학과 생물학을 비롯하여 의학,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신경의학으로 이어지는 지적 탐구, 모터사이클과 수영과 스쿠버다이빙과 역도 같은 육체적 도전, 인간 사회와 자연계에 관한 질문과 이해에서 그는 타고난 여행가이자 모험가이며 탐험가였다. 이 모든 것들에서 색스는 흔히 극한까지 파고들었고,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


무엇보다 올리버 색스는 어떤 편견이나 경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이자 마약중독자라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이단자’로서 지탄과 비난, 죄의식과 자기 파괴에 직면했지만 거기에 매몰되거나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그런 점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하여 ‘예외성’을 ‘보편성’으로 승화시켜냄으로써, 인간과 세상에 대한 더욱 큰 이해와 긍정으로 나아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평을 쓴 한두 사람은 나를 ‘기이한’ 또는 ‘이국적인’ 질환을 전담하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 반대였다. 나는 내가 다룬 병례들이 ‘전형적인 사례’라고 보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애에 가닿았다. “나는 사랑에 빠져도 보았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내 환자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눈을 주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었으며, 어쩌면 이것이 인간애일지 모르겠다).”

올리버 색스의 글은 그의 삶과 꼭 닮아 대단히 투명하고 진솔하며, 또 소설만큼 드라마틱하면서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이는 신경심리학의 창시자 A. R. 루리아의 “소설식 구조에 극적인 힘과 감정이 모두 살아 있는 병례사”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아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루리아 스스로 ‘작은 책’이라고 칭하던 저서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어 《깨어남》만이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책의 원형이 되었다.” 여기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또는 영향받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기질과 능력이 더해졌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환자들의 인생사 전체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아버지를 환상적인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병원 이야기를 어린 우리 형제들은 넋을 잃고 들었고, 이것이 마커스 형과 데이비드 형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뒤를 이어 의학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올리버 색스에게 호기심은 곧 지적 탐구로 이어졌고 지적 탐구는 글과 책이 되었고 글과 책은 그의 삶 자체가 되었다. 이처럼 색스에게 글쓰기는 삶과 온전히 하나였다. 그의 글이 쉬우면서 깊이 있고, 흥미진진하면서 통찰력 넘치는 것은 이 ‘언행일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가 1,000권이 넘어갔고, 이 일기는 때때로 바로 책의 원고가 되었다. 또 부모님과 이모, 친구, 동료, 그리고 여러 작가나 과학자와 무수히 주고받은 편지는 삶의 동력이자 지적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예컨대 신경심리학자 A. R. 루리아,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생화학자 제럴드 에덜먼,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 시인 위스턴 휴 오든 등과의 서신 교환은 그의 지적 여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했다.

일기, 또는 자기 자신에 관한 병례사의 확장판이라 해도 무방할 이 자서전은 이러한 올리버 색스 글쓰기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명쾌하고 적나라하고 단도직입적이며, 거기에 유머와 자기 풍자라는 ‘균형 감각’까지 갖추어서 그야말로 빠져들게 만든다. 색스의 삶이 인습과 통념을 거부하고 우상파괴적이었던 만큼이나 그의 글쓰기 또한 파격이었다. 때문에 여러 차례 기고를 거절당했고, 전문적이지 않다는 비난이나 평가절하, 무시를 당했다. “그동안 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자처해왔고 또 그래 보였다. 만일 누군가가 대중적이라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런 풍토와 편견을 이겨냈고, 지금 우리가 익히 보고 인정하듯 그가 옳았음을 세상에 또렷이 증명해 보였다.

장대익 교수는 추천사에서 “색스의 따뜻한 의학”이라는 표현을 썼다. ‘단순한 사례연구case study’를 뛰어넘어 ‘병례사case history’를 지향하는 이야기들에서 색스는 휴머니티의 진수를 선보였다. “나는 의료적 오만과 기술이 철저하게 인간성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 그런 요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인 생활, 주체성, 존엄성, 자존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있는 의미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무시되거나 회피되었다. ‘간호’는 오로지 기술적이고 의료적인 차원의 행위일 뿐이었다.” 의학이 ‘의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색스만큼 뚜렷이 인식하고 보여준 사람은 드물다.

인습을 거부했던 탁월한 의사이자 인간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했던 작가 올리버 색스. 그는 인간에 대한 크나큰 긍정, 그리고 위대한 지성과 휴머니티의 지표를 제시한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인이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